나의 생각 67

여덟 인생을 살아야 했던 이야기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부터 한 사람이 여덟 가지 인생을 살았다고 대놓고 말해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입부에서 묵미란 할머니를 보면서 그 할머니가 여덟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곧바로 생각이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묵미란 할머니는 그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계획을 철저하고 복잡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묵미란 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무려 여덟 가지의 인생을 살았던 그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놀라게 됩니다. 그토록 평범해 보이던 묵미란 할머니, 인적사항을 여럿 만들여서 동시에 여러 인물로 행세하면서 들키지 않는 일 같은 걸 해내지는 못할 것 같던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니. 혹시 평범해 ..

독일어권에서 귀천상혼은 절대적인가-예카테리나 1세의 맏딸 안나

귀천상혼에 대한 저번 포스팅과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https://ariesia.tistory.com/337 신데렐라는 귀천상혼 규제를 받지 않았을 이유신데렐라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요정이 여주인공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와 화려한 드레스를 선물해서, 신데렐라가 왕궁 무도회에 가게 되는 이야기는 낭만적이고 화려한 동화 같은 이ariesia.tistory.com 신데렐라 설화에서 신데렐라는 귀천상혼 규제가 없는 나라의 설화라는 것을 다룬 저번 포스팅에서, 귀천상혼은 19세기 즈음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독일어권만의 법률에 가깝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독일어권이 아닌 나라에서는 국왕이 마음만 먹으면, 왕족보다 신분이 낮은 여인과 정식 결혼을 하는 것이 법률상으로 가능하다는 ..

신데렐라는 귀천상혼 규제를 받지 않았을 이유

신데렐라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요정이 여주인공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와 화려한 드레스를 선물해서, 신데렐라가 왕궁 무도회에 가게 되는 이야기는 낭만적이고 화려한 동화 같은 이미지에 딱 들어맞습니다.개인적으로 어릴 때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제가 본 적 없는 동화전집 등이 있다면 신데렐라 이야기부터 찾아보고는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드레스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손꼽을 정도의 예외를 제외하면, 동화전집의 그림 중 신데렐라의 무도회 드레스가 가장 화려하고 예쁘게 그려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여자가 왕자 등 신분 높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는 내용 자체를 일반명사처럼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막상 원전의 신데렐라는 이른바 신데렐라 스토리와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

마리차 백작부인, 백작의 딸의 호칭은?

이번 포스트에서는 블로그에서 처음으로, 제가 작품 전체를 감상한 적 없는 오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겠습니다. 엄밀하게는 오페레타로 분류되지만, 오페레타는 넓은 의미에서 오페라로 분류되면서, 오페라 극장에서 상연될 때가 종종 있으니, 이럴 때는 뭉뚱그려 이야기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작품 자체는 거의 잊혀졌지만, 콘서트 등에서는 간혹 일부분이 연주되는 작품은 종종 있습니다. 칼만의 오페레타인 Grafin Mariza도 제가 그렇게 접하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한국어로는 일반적으로 마리차 백작부인으로 번역됩니다. 2024년인 현재까지, 은 한국어 자막이 첨부된 영상물이 만들어진 적도, 대본의 한국어 번역 완역본이 만들어진 적이 없는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5년 빈 국립 폭스오퍼 신년음악회에서, ..

번역 이야기-정부와 애첩, 그리고 정부와 후궁의 의무와 권리 사이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다루는 책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해도 될 정도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루이 16세가 루이 15세의 맏손자이자 후계자이던 시절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시집왔을 때, 루이 15세의 애인이던 뒤바리 부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뒤바리 부인은 루이 15세와 결혼하지는 않았고 왕비도 아니었지만, 루이 15세의 애인으로 궁정의 실세였습니다. 하지만 루이 15세의 딸이자 공주들은 뒤바리 부인을 싫어했고, 마리 앙투아네트 왕세손비에게 뒤바리 부인을 싫어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공식 행사에서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한 마디도 걸지 않았습니다.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는 신분이 낮은 사람은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기에, 더욱 무게감 있는 일이었지요. 그리고..

헬레네, 왕비와 여왕 사이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헬레네는 신화에서부터 인간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었으며, 트로이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헬레네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묘사에 따르면 헬레네는 스파르타의 왕비였으며,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헬레네가 스파르타의 왕비 자리를 포기하고, 트로이 왕자인 파리스를 따라서 트로이에 가면서, 메넬라오스 및 메넬라오스와 동맹 관계라도 할 수 있을 여러 그리스 국가들이 트로이를 공격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이 저렇게 묘사된 것을 보고, 이런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꽤 많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왕비인데, 국왕이라면 그냥 다른 여자를 새 왕비로 들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신화에서는 그만큼 헬레네가 ..

<적과 흑>의 공작부인의 의자, 타부레 이야기

스탕달의 은 1830년대 왕정복고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국왕 루이 16세가 처형당하고 프랑스 왕정이 폐지된 이후, 나폴레옹이 집권해서 황제가 되었다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해서 황제 자리에서 최종적으로 물러난 이후, 루이 16세의 남동생이 프랑스의 새 왕이 된 시기입니다. 에는 여러 귀족이 등장하며 그 중에는 후작인 귀족과 그 딸도 있습니다. 소설 속 묘사에 의하면 그 딸은 이른바 조건 좋은 혼담이 많이 들어왔을 정도로 인기 있는 아가씨로 그려집니다. 후작은 딸이 공작부인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서 공작보다 훨씬 신분이 낮은 남자와 그 딸이 연애결혼할 상황이 되자, 후작은 딸이 공작부인이 될 거라는 전망을 접어야 하게 됩니다. ..

만들어진 전통 3 - 티아라

유럽 왕족들이 참여하는 행사에서, 의상에 대해서는 격을 따지는 드레스 코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가장 격이 높은 단계는 일명 화이트 타이라고 불리며, 부부 동반 행사에서 남성들은 연미복을 입고 여성들은 드레스를 입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티아라라는 왕관 같은 머리 장식을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티아라는 공식 행사 등에서, 유서 깊은 가문이나 왕실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연출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왕족이 참여할 때에는 왕실에서 전해지는 티아라를 쓰는 것이 온당한 예법처럼 여겨지기도 하지요. 특히 영국에서는 귀족 가문들이 가문마다 가문을 상징하는 티아라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그 가문의 티아라는 결혼식이나 화이트 타이 행사 등에서 착용하는 것이지요. 이에 따른 예법도 있습니다. 가문 티아라..

데뷔 무도회 등의 현대 사교계 귀족문화

개인적으로 사교계 데뷔 무도회, 즉 데뷔탕트 무도회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게도 오페라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것이었지요. 오페라 극장 티켓 중 가장 비싼 티켓이 바로 빈 슈타츠오퍼, 즉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사교계 데뷔 무도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 그 때에만 해도 데뷔 무도회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귀족이 있던 시대에 귀족들이 사교계 데뷔 무도회라는 행사를 가졌고, 귀족 신분제가 사라진 뒤에도 전통 행사처럼 이어진 것 정도로 생각했지요. 사교계 데뷔 무도회가 빈 국립 오페라극장만의 전통 행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훨씬 뒤였습니다. 사교계 데뷔 무도회 문화가 처음 생긴 것은 영국입니다. 사교계 문화는 나라마다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국왕의 정부가..

살리카법에 대해서

살리카법은 흔히 동양식 남계 상속처럼, 남자 후손만 가문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법처럼 여겨지고는 합니다. 이른바 왕위계승의 살리카법은 대개 그런 의미로만 통용되었기에, 결과적으로는 대충 들어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살리카법을 남녀차별처럼, 여성이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제도로만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살리카법은 딸이 후계자가 될 수 없는 것이기에, 우회적으로 딸의 후손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가능하기는 했습니다. 외손자가 물려받거나, 아예 사위를 공식적인 후계자로 삼아서 딸과 사위의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지요. 딸이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법률 조항이 처음 기록된 것은 중세 초기입니다. 그 떄에는 땅을 가진 영주는 직접 전투에 나서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성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