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속의 역사

로시니의 <오리 백작>과 십자군 전쟁

아리에시아 2015. 9. 11. 19:20

로시니의 <오리 백작 Le comte Ory>은 한바탕 유쾌한 희극 오페라입니다. 오리 백작이라는 난봉꾼이 아델레 백작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을 코미디로 버무려낸 작품이지요. 오리 백작의 오리란 프랑스어 원제에서의 표기가 Ory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동물 오리가 아니라, 백작 작위의 고유명사입니다.

 

<오리 백작>의 무대는 1200년경 프랑스입니다. 아델레 백작부인은 포르무티에 백작의 누이로서, 포르무티에 백작이 전쟁터에 나가자 성에 남아서 무운을 빌며 기도만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부유한 과부라서 많은 혼담이 들어오고 있지만, 결혼이나 남자에는 일절 관심을 끊겠다네요. 그러자 오리 백작은 경건한 수도사로 변장해서 아델레에게 접근하려는 계획을 꾸밉니다. 오리 백작은 시종 이졸리에를 대동하고 수도사로 변장해 아델레의 성에 들어오는 데 성공하고, 아델레는 새롭게 나타난 수도사를 믿게 됩니다. 수도사로 변장한 오리 백작은 아델레에게 신의 말씀이라도 되는 것처럼 꾸며서 새로운 사랑을 찾으라고 이야기하는 등 갖가지 시도를 해보는데, 이 시도들이 한바탕 유쾌한 희극처럼 묘사됩니다. 그 와중에, 아델레는 오히려 시종 이졸리에게 조금씩 마음이 가고 있습니다. 한편 새롭게 나타나 신망을 얻은 수도사가 사실은 수도사가 아니라 오리 백작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고, 오리 백작은 쫓기듯이 아델레의 성에서 퇴장합니다. 그 동안 성에는 포르무티에 백작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성에 귀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성 사람들은 백작 일행을 맞이하느라 분주하며. 오리 백작 사건은 웬 남자가 되도 않은 수작을 부리다가 들켜서 망신당하고 쫓겨난 해프닝으로만 기억에 남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리 백작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습니다. 한 술 더 떠서, 부하들과 함께 수녀로 변장해서 아델레의 성에 들어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합니다. 갑자기 날씨가 험악해진 어느 날, 아델레는 지나가던 여러 수녀들이 비바람을 피할 곳을 찾는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 수녀들을 성에 모셔와 손님 대우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덕분에 그 수녀들은 성에 머무르게 되는데, 사실 그 수녀들은 바로 오리 백작과 그 일행이었지요. 하지만 이졸리에 덕택에 수녀로 변장한 오리 백작의 정체가 밝혀지게 되고, 오리 백작은 또다시 한바탕 망신을 당합니다. 마지막에는 좀 뜬금없이 이졸리에가 귀족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아델레와 이졸리에가 커플이 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오리 백작>에서 유명한 아리아 중의 하나인 "슬픔의 포로가 되어 En proie a la tristesse"입니다. 수도사로 변장한 오리 백작이 아델레에게 신의 말씀을 빙자해, 다른 남자와 사랑하라고 등떠미는 장면이지요. 오리 백작은 아델레가 자신과 연결되기를 기대하며 저런 말을 한 것인데, 아델레는 엉뚱한 이졸리에게 애정을 품게 됩니다. 동영상은 2011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된 영상으로, 오리 백작 역에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 아델레 백작부인 역에 디아나 담라우, 이졸리에 역에 조이스 디토나토입니다. 조연들은 중세풍 의상을 입고 있고, 주역들은 18세기 말의 의상을 입고 있는 공연입니다. 프랑스어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위 아리아의 프랑스어 원어-한국어 번역 대역 대본입니다. 대본 부분은 1분 40초 경부터 시작합니다. 프랑스어 원어 대본 출처는 http://www1.cpdl.org/wiki/index.php/En_proie_%C3%A0_la_Tristesse_(from_'Le_Comte_Ory')_(Gioachino_Rossini) , 한국어 번역은 http://blog.naver.com/kwhsla/150171430743에서 말투 등을 수정한 것입니다.

 

 

 

오페라 <오리 백작>에서 아델레 백작부인은 포르무티에 백작을 비롯한 집안의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바람에, 졸지에 성에는 여자들만 있는 처지가 되니까, 남자들이 대놓고 들러붙거나 이런저런 수작을 부리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남주인공 오리 백작도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아델레에게 덜컥 속임수를 써서 접근하려고 했고요.

 

 

오페라 설정상 포르무티에 백작이 참전한 전쟁은 십자군 전쟁입니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 시대 기독교를 믿던 유럽 여러 나라가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슬람 세계를 침공한 전쟁으로 정의됩니다. 1095년 최초로 결성되어, 200여년 동안 간헐적으로 계속된 전쟁이었지요. 십자군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난 것은 처음 시작된 지 200년 가까이 지난 1291년이었고, 그 동안 무려 아홉 차례의 원정군이 편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세 종교의 성지입니다. 이슬람교의 성지인 동시에 기독교도의 성지인 곳이라 오늘날에도 많은 분쟁에 휩싸여 있는데, 천년 전 중세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중세 내내 이슬람 세력의 세력권에 있었는데, 유럽 쪽에서 기독교의 성지를 탈환하자는 명분으로 군대가 결성되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합니다.

 

명분은 일단 이랬기는 한데.... 실상은 세 유럽에서 별다른 재산도 없고 입지도 빈약하던 사람들이 한탕주의로 일단 쳐들어갔다는 게 정설입니다. 1차 십자군은 아무리 봐도 저것 말고는 도저히 목적의식을 찾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고, 2차 십자군 이후도 태반은 저랬지요. 1차 십자군 전쟁에서는 유럽 세력이 예루살렘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고, 예루살렘 왕국도 세웠는데, 그 뒤로는 패전한 사례가 훨씬 많지요. 3차 십자군의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 등 유능한 전사가 용감하게 싸워 승리한 사례가 여럿 있기는 한데, 승리한 것이 오히려 소수 사례에 속할 지경이었습니다. 1차 십자군 이후에도 여덟 차례의 십자군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 십자군이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은 없습니다. 리처드 1세의 무훈으로 유명한 3차 십자군은 이슬람 세계의 대영웅 살라딘에게 유럽 세력이 패한 전쟁이었고, 다른 십자군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과는 엇비슷했습니다. 2차 이후의 십자군 중 목표를 이루었다는 평을 들을 만한 십자군은 4차 십자군과 6차 십자군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그런데 6차 십자군은 사실상 협상단이나 다름없어서 별다른 전투도 치르지 않았고, 4차 십자군의 상대는 이슬람 세력이 아닌 또다른 세력이었지요.

 

 

대본에서 <오리 백작>의 설정상 배경은 1200년 즈음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이 시기를 전후한 십자군은 3차 십자군과 4차 십자군입니다. 3차 십자군은 1189년-1192년, 4차 십자군은 1202-1204년 동안 지속되었지요. 1217년-1221년 동안 진행되었던 5차 십자군도 시기가 대략 들어맞기는 하네요.

 

<오리 백작> 오페라를 실제 십자군 역사에 대입해보면, 어느 시기가 될까요? 오페라 내에서 십자군 관련 묘사는 빈약하기 그지없고, 백작부인의 남자 보호자가 성을 떠나있을 구실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습니다. 가사나 관련 묘사를 보면, 대본 작가도 1200년 즈음 프랑스를 무대로 설정하다 보니, 그냥 그 시대에 유명한 전쟁 이름을 적당히 골라 넣은 기색이 짙습니다. 관련 묘사가 너무나도 얄팍하고 빈약하거든요. 십자군이 아니라 해적 소탕전 등으로 바꿔도, 오페라 내용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입니다.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1202년-1204년의 4차 십자군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1200년이라는 연대와 가장 근접한데다, 3차와 5차 십자군은 프랑스 전사가 공훈을 쌓을 수 있을 법한 무대와는 거리가 멀거든요. 국지전에서 유럽세력이 승리한 적이야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는 십자군이 패한 전쟁이니까요. 4차 십자군은 2차 이후 십자군 중 거의 유일하게, 십자군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십자군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오히려 일단은 승리를 거둔 이 4차 십자군이, 오히려 십자군 역사 사상 최악의 순간으로 손꼽힙니다. 왜냐하면, 4차 십자군이 공격한 상대는 바로 고대 로마 제국의 후신이자 같은 기독교를 믿는 또다른 국가였던 비잔티움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동로마 제국, 혹은 비잔틴이라고도 불리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점령한 것이지요.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이슬람 세력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었고, 1차 십자군의 시초도 비잔티움 제국이 이슬람 세력과 싸우는 데 도와달라고 유럽 나라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4차 십자군 때, 십자군은 오히려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합니다. 부유하고 퐁요로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겠다는 것 외에, 다른 목표의식이나 명분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4차 십자군은 1204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고, 비잔티움 제국을 축출해 일명 라틴 제국을 세웁니다. 이 때 콘스탄티노플의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당하거나 약탈당했지요.

 

라틴 제국은 반 세기 후인 1261년 맥없이 멸망해버렸고, 그렇지 않아도 국력이 쇠퇴하고 있던 비잔티움 제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영향력을 잃습니다. 1차 십자군 이후 사실상 유일한 군사적 승리가 이것이라니, 정말 어이없지요. 이게 당대에는 군사적 승리로 칭송받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황망해지고요.

 

하지만 오페라에서 포르무티에 백작의 무훈을 칭송하는 장면이 나올 때,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침략을 떠올릴 이유는 딱히 없을 듯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애초에 대본 작가도 4차 십자군처럼 세세한 디테일까지는 계산하지 않고, 그냥 중세가 무대이니 중세에서 유명한 전쟁을 적당히 집어넣은 수준으로만 십자군이라는 단어를 다루었으니까요. 포르무티에 백작이 십자군 시기의 실존인물인 것도 아니고요. 오페라 시놉시스에서는 아무래도 배경 설명을 해야 하니 십자군 시기라는 말이 들어가기는 하는데, 오페라 내에서는 십자군이라는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오리 백작>은 십자군을 직접적이거나 구체적으로 다룬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십자군 시기에 남자들이 십자군에 참전한 뒤, 집에 남은 여성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나름대로 중요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전장에 나간 남성들의 무훈을 빌면서 집에서 기도하는 데 주력하거나, 마음의 지주 삼아 종교인을 초청해 대접하고 설교를 들으려 한다거나, 집안에 남자가 없으니 보호자가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 다른 남자들에게 만만하게 보인다거나, 이런 모습들이요. 십자군 전쟁 시기 십자군 참전자의 아내와 딸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비슷한 기록이 다수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단 중세 십자군 시기뿐만 아니라, 어쩌면 근대 이전 수천년 동안은 항상 그래왔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