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작품 자체의 평가와 인기도 괜찮은 수준이면서도,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더 유명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우선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등을 작곡한 푸치니의 출세작으로, 푸치니는 <마농 레스코>를 시작으로 비로소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명한 프랑스 소설인 <마농 레스코>를 원작으로 한다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소설 <마농 레스코>를 원작으로 한 또다른 오페라인 마스네의 <마농>과 종종 비교되기도 합니다. 오페라 자체의 극적인 구성이나 원숙미는 마스네의 <마농> 쪽이 더 높은 편입니다만,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도 수작 이상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요.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여주인공 마농이 4막에서 부르는 "홀로 외로이 버려져 Sola, perduta, abbandonata"입니다. 이 아리아는 오지로 추방된 마농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남주인공 데 그리외는 마농을 위해서 같이 추방되는 길을 택하지만, 종국에는 두 명만 황야에서 방랑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마농이 갈증을 호소하자 데 그리외가 물을 구하러 간 사이, 마농이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아리아이지요.
소프라노 오희진이 '홀로 외로이 버러져'를 부릅니다. 영상에는 '나 홀로 쓸쓸히 버려지고'로 번역되었습니다. 자막은 없습니다.
'홀로 외로이 버려져' 아리아의 프랑스어 원어-한국어 번역 대역 대본입니다. 클릭하면 새창으로 뜹니다. 번역 출처는 네이버캐스트의 안동림 번역입니다.
이 아리아의 작품 내 위치는 꽤 미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서 4막은 생략하면 극적 구성이 보다 유기적이고 짜임새있게 될 거라고 평했고, 줄거리로만 보면 좀 사족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3막 마지막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과 함께 할 수 있게 되면서 기껏 희망적이고 감동적으로 마무리되는가 했는데, 4막에서는 둘이서 황야에서 내내 고생하기만 하다가 여주인공이 죽는 내용이 전부거든요. 하지만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가 바로 4막에 있지요. 소설 <마농 레스코>를 푸치니보다 먼저 오페라로 작곡한 마스네는 아예 여주인공이 추방선고를 받고 제대로 출발하기도 전에 남주인공의 품에서 죽는 것으로 각색했는데, 이 쪽이 오페라 결말로서는 더 좋은 평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소설 <마농 레스코>는 분방하고 부박한 여주인공에게 반한 남주인공이 생고생을 자처하고, 결국 여주인공도 남주인공의 순정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둘이서 처음에는 나름대로 잘 살지만, 돈이 떨어지자 현실이 이 커플을 덮친데다가, 여주인공의 가벼운 성격이 화를 불러옵니다. 여주인공이 돈이 필요하답시고 도박을 하는 등, 여기저기서 감정적이고 즉흥적으로 행동한 것이 트집잡히고 부풀려져, 외국 오지에 추방당하는 선고받은 것입니다. 남주인공은 자신도 같이 추방해달라고 애원하여 여주인공과 동행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데 기어코 성공하지만, 여주인공은 오지에서 쓸쓸히 죽고 남주인공 홀로 남아 귀국합니다.
소설 <마농 레스코>는 극히 드물게 한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가 두 편 이상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마스네의 <마농>과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 두 작품 모두 오늘날까지 공연되고 있지요. 그런데 두 작품의 내용이 상당히 다릅니다. 마스네의 <마농>은 소설의 전반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소설의 전반부는 거의 통째로 생략하고 후반부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지요. 이것은 푸치니가 먼저 작곡되었고 인기를 끌고 있던 마스네의 <마농>을 의식해서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 정설인데, 결과적으로는 마스네가 중요하다고 여긴 부분은 생략하고 덜 중요하거나 산만하다고 여긴 부분만 작곡하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마농 레스코>의 극적 구성은 <마농>에 비하면 느슨한 편이지요.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원작소설에서 여주인공 마농이 남주인공 데 그리외와 일단 사랑의 도피를 떠나서 나름대로 알콩달콩하게 살다가, 돈이 떨어지니 마농은 돈 많은 남자를 찾아 데 그리외에게서 떠나가버리고, 데 그리외는 환멸을 느껴 수도사가 되기로 하며, 이 소식을 듣자 마농이 여전히 데 그리외를 사랑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는 장면 등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스네의 <마농>에서는 이 부분이 밀도 있게 묘사되며, 유명한 아리아도 여럿 있지요. 하지만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이 장면을 통째로 생략한 뒤에, 마농이 데 그리외와 도망치면서 1막이 끝나고, 2막은 마농이 다짜고짜 다른 부유한 남자의 애인 노릇을 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 중간의 이야기는 마농의 오빠가 "내가 널 데려오지 않았다면, 넌 아직도 그 가난한 남자와 돈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었을 거야."라는 식의 대사를 하는 것으로 모두 때워버립니다. 푸치니의 작품에서 마농이 오지로 추방된 이후의 원작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여겼거나 감명깊게 읽어서가 아니라, 마스네의 작품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이니 집어넣었다는 것이 정설일 정도지요. 그런 것치고는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막상 이 대목에 있지만요. 마농이 오지에서 쓸쓸히 처량하게 부르는 '홀로 외로이 버려져' 말이예요.
그런데 소설 속에서 마농이 추방된 오지가... 다름 아닌 미국입니다. 현재의 뉴올리언스 지역이지요. 그러니까 <마농 레스코> 안에서 미국이란 추방되는 처벌을 받은 사람을 수용하는 오지이며, 그것도 프랑스 죄수가 추방되는 곳이었다는 겁니다.
<마농 레스코>의 원작소설은 1731년에 출판되었고, 이 원작소설은 전체적으로 예전에 일어났던 일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컨대 <마농 레스코>의 시대적 배경은 18세기 초반입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을 계기로 독립국가가 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식'에 비추어 보면, 프랑스에서 18세기 초에 자기 나라 죄수들을 추방하는 땅으로 여긴 것은 알쏭달쏭하게 여겨지게 됩니다. 영국 식민지에 프랑스 죄수를 추방하는 격이 되어버리니까요. 미국을 황무지처럼 묘사한 것도 좀 이상합니다. 18세기 미국은 영국 본토보다 오히려 서민 평균 생활수준이 더 나았고, 이게 독립전쟁의 원인 중 하나이자 독립전쟁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했었으니까요.
미국 독립전쟁과 미국-영국 사이의 전쟁이 워낙 유명해서 상대적으로 묻힌 사실인데, 18세기 초반 미국에는 프랑스도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식민지 지역은 영국 식민지 지역과 달리, 18세기 초중반 시점에는 황량한 황무지같은 곳이었습니다. 18세기 초중반 기준에서는 자원도 없고, 농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항구도시조차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에서 연주황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현재의 미국 영토이며, 그 중에서 상아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18세기 프랑스가 식민지로 삼았던 지역입니다. 지도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마농 레스코> 후반부의 무대가 되는 뉴올리언스 지역으로, <마농 레스코>의 배경이던 18세기 초반에는 프랑스식 이름인 '누벨 오를레앙'으로 불렸던 항구입니다. 누벨 오를레앙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이름이 바로 뉴올리언스지요.
18세기 미국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지역, 영국의 식민지였던 지역, 아직 미개척지였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영국 식민지였던 지역은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을 계기로 스스로 독립을 쟁취했고, 프랑스 식민지였던 지역은 독립한 미국에서 1803년 프랑스 측에게 돈을 주고 구입하면서 최종적으로 미국 영토가 됩니다.
<마농 레스코>에서는 18세기 초반 미국의 뉴올리언스가 프랑스로부터 오지 취급을 받으며 프랑스가 조수들을 유형보내는 장소로 등장하는데, 이것도 실제로 프랑스에서 실시되었던 제도입니다. 죄수들을 황무지로 추방해 '개척'하게 하는 것은 근대 유럽에서 흔한 처벌이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식민지가 추방 및 개발노동 장소로 애용되었던 것이지요. 18세기 초반에는 미국이 그 장소 중 하나였고요. 이렇듯 추방 형무소쯤으로 활용하던 것에서 보듯, 18세기 프랑스 관점에서 미국의 프랑스 식민지 땅은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계륵같은 곳이었고, 훗날 1803년 나폴레옹이 아예 미국에게 이 땅을 사지 않겠냐고 제의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미국이 이 협상을 받아들이면서, 현재 미국 중부 지방은 공식적으로 평온하게 미국 땅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유형수 추방장소로나 쓰이던 유럽의 오지 식민지가 아니라, 한 나라의 땅으로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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