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12월 27일, 한 척의 영국 배가 지구를 일주할 항해계획을 세우고 영국을 출발했습니다. 이 배의 선장은 로버트 피츠로이라는 해군 대위로, 창조론과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해 동안 창조론과 노아의 방주를 연구하기 위해 여러 학자도 항해에 동행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배의 항해는 훗날 과학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는 대사건이 됩니다. 이 배의 이름은 비글호, 배에 탄 학자 중에는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있었던 것입니다.
비글호의 모습. 비글호 항해기> 1890년 판본에 실린 삽화입니다.
다윈이 동승했던 비글호 항해의 항로입니다.
찰스 다윈은 당시 학구열에 불타는 과학도로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생물 생태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싶어했지만, 그럴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세계를 일주하고 곳곳에서 과학연구를 한다는 비글호가 출항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글호에 승선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뒤에 펼쳐진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대로입니다. 비글호는 항해의 일환으로 남아메리카의 갈라파고스에 정박했고, 다윈은 갈라파고스의 생태를 관찰했으며, 이 관찰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진화론을 창시하고 <종의 기원>을 쓰게 되지요. 비글호 항해는 창조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계획된 항해가 진화론을 태동시킨, 역설적인 사례가 되었고요.
1868년, 찰스 다윈이 59세 되던 해 찍은 초상사진입니다.
비글호는 5년 동안 항해한 뒤 영국으로 돌아왔고, 다윈은 5년 동안 비글호에서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비글호 항해기>를 씁니다. <비글호 항해기>는 다윈의 명철한 관찰과 유려한 글솜씨가 결합된 명저로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어 번역본도 여럿 출간되었습니다.
갈라파고스 섬 이야기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마치 다윈이 갈라파고스섬에 가자마자 없던 영감이 갑자기 생겨 진화론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비글호 항해기>를 읽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뿐만 아니라 비글호가 들렀던 거의 모든 지역의 생태를 관찰했고, 기록을 남기고 연구했습니다. 이런 자세가 갖춰진 상황에서 갈라파고스 섬을 보고는, 훗날 진화론으로 이어진 톨찰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다윈이 이처럼 항상 연구하는 태도를 가지지 않았다면, 갈라파고스 섬은 희한하게 생긴 동물이 많은 지역 정도로만 남았을 것입니다.
<비글호 항해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을 하나만 꼽으라면, 전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의 생태에 주목하게 된 일화를 택할 것입니다. 이 대목을 읽고, 저는 그야말로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장순근 번역, 리젬 출판사에서 출간된 <비글호 항해기> 번역본의 652페이지, 653페이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제도(갈라파고스 섬)에서 가장 뚜렷한 현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즉 각 섬마다 어느 정도 다른 생물들이 산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 사실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부총독인 로슨 씨가, 거북이 섬에 따라 달라서, 모양만 보고도 어느 섬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을 하고 난 뒤였다. (중략) 주민들은 내가 벌써 말했듯이, 거북이 어느 섬에서 왔는지 구별할 줄 안다. 크기뿐만 아니라 그 외의 특징들도 다르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생물들은 같은 종이어도 조금씩 다른 형태를 지닌다는 것은, 진화론의 토대가 된 것이었지요. 그런데 그것을 처음 간파한 사람은 다윈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주민과 부총독은 이미 그 사실을 관찰해서 알고 있었고, 어느 섬에 사는 특정 동물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도 파악하고 있었고, 거북을 보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어떤 섬에서 살던 거북이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민들과 부총독은 그 단계 이상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퍼즐 맞추기처럼 거북을 보고 어느 섬에서 온 거북인지 알아차리는 단계에서 그쳤지요. 어째서 그런 차이가 발생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처음으로 생각한 사람은 다윈이었고,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을 처음으로 관찰한 사람도 아니었고,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태가 섬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파악한 것도 아니었지만, 갈라파고스 섬을 연구해 새로운 과학이론을 창시한 불멸의 위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원석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내다버린 원석을 갈고 닦아 빛나는 보석으로 세공했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때를 뜻하는 것이겠지요.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관찰한 것에서 새로운 사실을 이끌어내는 것도, 관찰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일이지요. 갈라파고스 섬에 살던 사람들은 거북을 비롯한 동물들을 관찰했고, 섬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는 것도 알았으며, 동물을 보고 어떤 섬에서 살던 동물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갈라파고스 섬의 생태를 파악했지만, 그 이상은 나가지 못하고 멈춰버렸지요.
저는 비글호 이야기, 특히 갈라파고스 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다윈의 통찰력이 있었기에, 남들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무심하게 넘겼던 것의 의미를 알아차렸고, 그것을 토대로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요. 다윈의 진화론 외에도, 남들이 무가치하다 여기던 자료에서 새로운 연구의 단초를 얻은 사례는 많습니다. 보는 것과 관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성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의 일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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