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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브랭 뤼카의 프랑스어 편지 위조 사건

아리에시아 2016. 2. 27. 11:43

예전에 미마라 미술관에 대한 글을 쓰면서, http://blog.daum.net/ariesia/37 맹목적 국수주의가 명백한 위조품을 세계적으로 귀중한 진품처럼 여기게 만든 패턴에 대해서 언급한 적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도 있을 생길 수 있겠지요. 이런 식으로 맹목적 국수주의 정서가 개입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기에도 국가적으로 속아넘어갈 수 있을지, 그 한계선이 궁금해진다고요.

 

그 '한계선'을 보여주는 사건을 하나만 들라면, 전 데니 브랭 뤼카의 편지 사건을 꼽겠습니다. 얼마나 황당무계한 거짓말에 단체로 속아넘어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지요.

 

 

19세기 중순인 1861년, 프랑스에서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이 쓴 편지가 잇달아 "발견"되었습니다. 잔 다르크 등 근대 프랑스의 역사적 인물이 쓴 편지도 있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쓴 편지나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주고받은 편지와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가 주고받은 편지 등, 2천여년 전의 인물들이 쓴 편지도 연달아 공개됩니다. 이 때 "발견"된 편지들은 알려진 것만 2만 7천점에 달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는 이렇게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 대거 프랑스 내에 있다는 것에 고무되었고, 열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들의 출처는 모두 단 한 명이었으니, 바로 데니 브랭 뤼카(Denis Vrain-Lucas 1818~1882)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데니 브랭 뤼카의 초상입니다.

 

 

너무나도 미심쩍은 이 정황을 보면 삼척동자라도 예측할 수 있듯이, 이 편지들은 모두 위조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이때까지 알려진 적도 없는 수천 점 수만 점의 귀중한 역사적 편지를 소유하고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수상한 기색이 풀풀 풍기지요. 하지만 이 위조 편지를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사기극에 나라 전체가 속아넘어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데니 브랭 뤼카가 위조한 편지들은 모두 종이 위에 19세기 문법의 프랑스어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데니 브랭 뤼카가 위조한 편지 중 하나로, 베르킨게토릭스가 폼페이우스에게 썼다는 편지입니다. 베르킨게토릭스는 카이사르가 주도한 갈리아 원정에서 갈리아 지역의 부족을 결집시켜 카이사르에게 치열하게 대항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와 로마에서 내전을 벌였다가 결국 패한 장군입니다. 베르킨게토릭스와 폼페이우스가 서신을 교환했다는 기록도 없고, 둘의 입장이나 관계 상 그럴 정황도 희박합니다만, 무엇보다 기원전 고대 로마와 그 주변국가에서 살았던 이 두 명이 19세기 문법의 프랑스어로 종이 위에 편지를 썼을 확률은 0%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겁니다.

 

 

 

라틴어로 위조했다면 속아넘어간 것을 이해할 여지가 조금은 있겠는데, 프랑스어, 그것도 19세기 문법의 프랑스어로 고대 인물들의 편지를 위조했다는 겁니다. 프랑스어가 출현한 것은 아무리 연대를 올려도 중세 이전으로는 소급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종이 위에 편지를 쓴 것은 또 어떻고요. 유럽 지역에 종이가 출현한 것은 중세 말기였고, 그 전에는 양피지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차라리 고대 이집트 때부터 쓰였던 파피루스라면 모를까, 중세 이전 유럽에서 종이를 사용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이 일을 한국 역사로 치환해 보면, A4 용지 위에 한글로 글을 써 놓고는 광개토대왕의 친필이라고 사기를 친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광개토대왕 때에는 A4용지와 한글이 없었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런데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한동안 이게 통했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인물들의 편지랍시고 프랑스어로 쓰여진 글이 나왔는데, 그걸 믿었다는 겁니다. 2만 점이 넘는 역사적 인물의 편지가 갑자기 출현했는데, 수상하다고 의심하기에 앞서 일단 믿은 것까지는 납득 못할 것은 없습니다. 진품이라면 세계적 유물일 귀중한 문헌이 자국에서 발견되었다는데, 진짜라고 믿고 싶은 것 정도는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런데 수천년 전 사람들이 종이에 프랑스어로 편지를 썼다고 믿다니요?

 

그런데 이렇게 터무니없는 가짜를 믿는 건,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되지요. 이 사건을 설명할 때, 당시 프랑스 사회가 프랑스어 제일주의와 국수주의에 젖어 있을 때라서, 유명인이 프랑스어를 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했기에 프랑스어 편지에 속아넘어갔다고 부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만으로 그런 사기극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프랑스어는 그렇다치고 종이는 어떻게들 납득한 건가요. 유럽 지역에서 섬유질 종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중세 말기이고,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종이가 만들어진 것도 기원후 105년 경인데, 그 전의 인물들이 종이를 쓰고 있었다니,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기극이 무려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국가적으로 통했다는 거예요. 속아넘어간 사람이 그토록 많았다는 거지요.

 

 

브랭 뤼카의 편지 위조 이야기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이 출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사기극에 사람들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조금만 알아봐도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으니, 이걸 정말 속으라고 만든 건지 사람들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를 터뜨리라고 일부러 어설프게 만든 건지 의문이 갈 정도인데, 정말로 속은 사람이 속출했다는 거지요. 국수주의와 결합해서 이 사기극을 믿었다는 설명에 이르면, 더더욱 아연해지고요. 2천년 전 역사적 인물들이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것을 믿다니? 도대체 프랑스어가 생긴 것이 언제인지, 유럽에 종이가 전래된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냐고요? 광개토대왕이 A4 용지에 한글로 글을 썼다는 편지를 진짜라고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그런데 역사적 인물의 프랑스어 편지가 프랑스에 있으면 프랑스의 위상이 높아질 것 같아서, 그냥 믿어버리다니!

 

진짜이면 자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명백한 가짜를 믿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브랭 뤼카의 편지보단 덜 황당하지만, 이런 일 자체는 오늘날에도 종종 일어나지요. 위조품으로 밝혀진 가짜 유물을, 진품이라면 자국 역사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믿어버리는 일 자체는 자주 일어나고, "설화"의 차원에 이르면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집니다. 역사적 사서의 내용과 설화의 내용이 충돌할 때, 설화 쪽이 더 스케일 커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설화 쪽을 믿는 일은 드물지 않지요. 설화는 그나마 전래된 것이기라도 하지, 아예 지어낸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믿어버리기도 합니다. 그걸 믿는 것이 자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이라는 식으로 믿으면서요. 브랭 뤼카의 위조편지는 기원전 유럽에서는 프랑스어를 쓰지 않았고 종이가 없었다는 것만 알아도 금세 가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 정도의 기본적 상식만 있어도 속지 않을 허풍이나 가짜에 속아넘어가는 일이 현재에도 나타나는 겁니다. 브랭 뤼카의 위조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진짜라면 나라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믿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가짜를 진짜로 믿는 일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읽는 것도, 이 연장선에 있는 일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