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어린이들에게 널리 권장되는 서양 단편소설로, 교과서에까지 실린 작품입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알자스의 학교에 다니는 프란츠는 학교 수업을 빼먹기 좋아하는 말썽꾸러기 소년입니다. 어느 날도 언제나처럼 수업에 늦은 시간에 설렁설렁 가는데, 이상하게 선생님은 지각했다고 혼내지도 않고, 마을 어른들이 교실 뒤쪽에 엄숙하게 앉아있기까지 합니다. 그리고는 아멜 선생님은 이제 다음날부터는 우리의 모국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다면서, 오늘이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라고 말하지요. 그 이야기를 듣자 프란츠를 비롯해 이래저래 학교 공부를 소홀히했던 많은 아이들은 반성하고, '마지막 수업'에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리고 수업을 끝내야만 할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프랑스 만세'를 마지막으로 칠판에 쓰고는, 수업은 끝났다는 말로 아이들을 돌려보내죠.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이며, 초등학생도 충분히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직설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저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저 작품을 보고, 슬픔에 가까운 감동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저 이야기에서 일제시대 조선어 교육이 금지되고 일본어만을 써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겹쳐 봤던 거죠. 얼마 후 알자스 로렌이 독일 땅이 되었다가 나중에 다시 프랑스 땅이 되었다는 걸 알고, 전 "다행이야, 프란츠"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두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사치해서 일어난 사건이다'라고만 알고 있던 초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알자스 지역에서는 저런 '마지막 수업'의 풍경이 펼쳐질 수 없었습니다. 알자스 지역은 원래 독일 쪽 땅이었고, 프랑스 영토가 된 뒤에도 계속 독일어를 썼으니까요.
하얀 땅이 프랑스, 붉은 색으로 칠해진 땅이 알자스 지역입니다.
원래 독일 땅이던 알자스 지역이 프랑스 영토가 된 것은 30년 전쟁(1618~1648) 때입니다. 당시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이라 불렸는데, 독립된 군주를 모시는 영지가 350여 곳에 달했으며, 그 영지의 군주들 중 가장 유력한 7명이 투표로 자신들을 대표할 황제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투표라고는 하지만, 30년 전쟁 당시에는 당대 유럽 최고의 명문가였던 합스부르크 가의 사람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뽑히는 것이 거의 관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스부르크 가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여기에다 종교개혁이 맞물려 구교 세력과 신교 세력이 서로 대립하게 되면서, 결국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외국까지 참전했고, 전쟁에도 큰 영향을 끼쳤지요.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인데, 스웨덴은 독일 땅에 별다른 연고도 이해관계도 없는 상태였지만, '북방의 사자'로 불리는 구스타프 아돌프 왕은 신교를 믿던 나라로서 구교 세력을 견제하고 신교 세력을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30년 전쟁에 뛰어들어, 여러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이 30년 전쟁에서 가장 독특한 행보를 보여준 나라는 바로 프랑스였습니다. 프랑스는 합스부르크 가처럼 구교인 카톨릭교를 믿고 있었으나, 합스부르크 세력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신교 세력을 적극 후원했습니다. 알자스 지역이 프랑스 영토로 편입된 계기가 바로 이 30년 전쟁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30년 전쟁 시기 프랑스가 후원하던 독일계 장수가 알자스 지역의 일부를 차지했고, 후계자 없이 죽으면서 자신이 다스리는 땅은 프랑스에 복속시킨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기반으로, 1697년 프랑스는 현재의 알자스 지역 전체를 군사점령하게 됩니다. 이것이 프랑스땅이라는 알자스 지역에서 독일어를 쓰고 있던 이유입니다. 독일 땅이던 알자스가 프랑스 땅이 된 이유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알퐁스 도데가 프랑스어를 강조하기 위해 <마지막 수업>에서 실제와 정반대로 상황을 묘사하면서, 오히려 알자스인의 민족의식은 묻혀버린 감도 있습니다. 그 지역이 원래 독일어를 써왔다는 것을 알면, 알자스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에 흡사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던 작품 묘사도 거짓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니까요. 알자스 지역에서 독일어를 썼다고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쓰던 말을 계속 썼을 뿐, 본인들이 프랑스인이라는 인식은 뚜렷했습니다. 훗날 세계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알자스 지역은 강제징집 등에 대해 더한층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했고요.
알자스 지역은 '민족과 언어의 상관성'에 대한 학술적 논쟁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알자스 지역은 원래 독일 지역이었고, 주민들도 독일어를 쓰지만, 주민들은 스스로 프랑스에 속한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곳을 독일 쪽으로 분류해야 할까요, 프랑스 쪽으로 분류해야 할까요? 이를 두고 지금부터 백여년 전, 19000년 전후해 한바탕 논쟁이 일어납니다.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라는 책의 첫 챕터인 '민족주의를 넘어서'에서도 다루고 있는, 테오도르 몸젠과 퓌스텔 드 쿨랑주의 논쟁입니다. 이 논쟁을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테오도르 몸젠은 그 사람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가 그 사람이 어떤 민족에 속하는지를 결정한다고 여겼고, 퓌스텔 드 쿨랑주는 본인이 어떤 민족이라고 인식하는지에 달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민족국가란 중요한 화두였고, 민족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독일과 프랑스라는 라이벌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알자스가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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