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예술/역사를 변형한 예술

붉은 장미와 흰 장미의 장미전쟁

아리에시아 2015. 2. 13. 12:03

헨리 8세, <왕자의 거지>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6세, 블러디 메리라는 별칭의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등으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튜더 왕조는 '장미 전쟁'을 종식시키고 잉글랜드의 왕좌에 오른 왕조입니다.

 

장미 전쟁은 1455~1485년의 30년 동안 잉글랜드 전역에서 일어난 내전입니다. 이 전쟁에 대한 통설은 대략 이렇습니다. 당시 잉글랜드의 국왕은 랭커스터 가문이었고, 친척 중에는 랭커스터 가문보다 왕위계승권이 원칙적으로 더 높은 요크 가문이 있었으며, 이 두 가문이 서로 왕위를 위해 싸웠다고요. 그리고 랭커스터 가문의 문장은 붉은 장미였고, 요크 가문의 문장은 흰 장미였기 때문에 이 전쟁이 장미 전쟁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장미 전쟁을 묘사한 후대의 글에서는 서로 다른 장미 문장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요. 30여년동안의 내전 끝에,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 출신인 헨리 튜더가 내전에서 승리해 헨리 7세로 왕이 되었고, 요크 가문 출신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두 가문의 화합을 도모하며 내전은 끝이 나지요.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결합한 "튜더 로즈"가 두 가문이 결합한 것을 상징하는 문장이 되면서요.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합쳐진 형태의 튜더 로즈입니다. 직관적이고 뚜렷한 상징을 담은 문장이지요.

 

이 이야기는 과연 얼마나 역사적 사료와 부합하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튜더 가문에서 튜더 로즈 문장을 사용했다는 것, 장미 전쟁이 두 가문의 싸움으로 촉발된 내전이었다는 것, 요크 가문에서 흰 장미 문장을 사용했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랭카스터 가문에서는 붉은 장미 문장을 쓰지 않았고, 당시에는 장미 전쟁이라는 용어도 없었습니다. 장미 전쟁이라는 용어는 <아이반호> 등 많은 역사소설을 쓴 소설가 월터 스콧이 처음 만들어낸 것입니다. 1829년 발표한 <가이어스타인의 앤>이라는 작품에서요.

 

그리고 스콧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장미 전쟁이라는 표현에 대한 영감을 얻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헨리 6세> 1부-3부, <리처드 3세> 등 장미전쟁 시기를 다루는 많은 역사극을 썼는데, 이 작품군에서는 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이 붉은 문장으로, 요크 가문의 상징이 흰 문장으로 등장하며, 내전이 끝나는 장면에서 헨리 7세가 흰 장미와 붉은 장미를 합치겠다고 선언합니다.

 

 

요크 가문의 상징인 흰 장미. "장미 전쟁" 당시 쓰인 문장이기도 합니다.

 

 

"장미 전쟁" 시기 랭카스터 가문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붉은 장미 문장입니다.

 

 

당대 사람들은 사용한 적도 없는 이름이 훨씬 후대에 고유명사처럼 정착한 것은 그렇다쳐도, 랭카스터 가문에서는 붉은 장미 문장을 사용한 적도 없는데 "붉은 장미 문장과 흰 장미 문장이 서로 대립해서, 장미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라는 이야기가 통념으로 자리잡은 것은 묘한 일입니다.

 

요크 가문의 이후 운명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왕비의 여동생들은 왕비의 동생에 걸맞지 않게 낮은 지체의 귀족과 혼인하는 정도로 끝났지만, 다른 요크 가문 사람들은 대부분 감금되거나 처형되었고, 심지어 엘리자베스 왕비의 어머니마저 왕궁이 아니라 수녀원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두 가문이 결혼하면서 평화가 온 것처럼 설명되는 것 자체는, 평면적이고 단편적으로 도식화하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왜곡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붉은 장미와 흰 장미의 장미전쟁"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만들어낸 수준이지요.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합쳐진 "튜더 로즈"의 인상이 강렬하기 때문이었을까요?

 

 

붉은 장미 문장 자체가 허구인 것은 아닙니다. 장미 전쟁의 승리자인 튜더 가문에서 이미 붉은 장미 문장을 사용한 적이 있기는 있거든요. 랭카스터 가문의 문장은 아니었고, 튜더 가문의 대표 문장도 아니었지만요. 장미 전쟁이 종식된 후, 이전에는 제대로 쓰인 적도 없던 붉은 장미 문장은 요크 가문의 흰 장미와 결합되어 대표적인 문장으로 자리매김합니다. 헨리 7세가 붉은 장미, 엘리자베스 왕비가 흰 장미를 들고 있는 초상화가 당대에 이미 등장하고, 튜더 로즈는 튜더 왕조 시대에 장식품 등에 많이 사용되었지요.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왕비가 각각 자신의 가문을 뜻하는 장미를 들고 있는 초상화입니다.

 

 

이처럼 붉은 장미와 흰 장미의 뚜렷한 대립 구도, 두 장미가 합쳐진 튜더 로즈로 대립이 끝나고 융화되었다는 구도는 여러 예술작품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당대의 초상화에서 이미 등장하며,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 왕비의 손녀인 엘리자베스 1세 때 활동한 셰익스피어의 사극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지요. 그리고 월터 스콧이 "장미 전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이 용어는 어느덧 역사학계에 고유명사처럼 자리잡게 됩니다. 붉은 장미의 랭카스터 가문과 흰 장미의 요크 가문이 서로 대립한 내전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고요.

 

 

여담이지만, <가이어스타인의 앤> 소설 자체는 세월이 지나면서 묻혔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저 소설 덕분에 "장미 전쟁"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는 것조차 잊혀졌을 정도예요. 요즘 저 소설이 언급되는 것은 세 가지 중의 하나라 보시면 됩니다. <아이반호> 작가에 대해 설명해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 제목을 줄줄 읊거나, 장미 전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시초라고 언급되거나, 아니면 작품 속에 주술에 걸린 오팔이 불길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장면 때문에 오팔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일화"를 소개할 때 언급되거나. 그나마 오팔 일화도 19세기에 <가이어스타인의 앤>과 무관하게 오팔에 불길한 이미지가 있었다는 사료가 여럿 발견되면서, 생명력을 잃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