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예술/역사를 변형한 예술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아리에시아 2014. 11. 29. 22:03

프랑스의 전쟁영웅 나폴레옹은 1804년, 프랑스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의 황제로 등극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3년에 걸쳐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으로 길이길이 기억되게 되지요. 설사 나폴레옹이 아무런 업적을 남긴 적이 없는 위인이라 해도, 이 그림만으로도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은 길이길이 기억했을 것이며, 그만큼 훌륭하고 압도적인 작품입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7년 완성한 <나폴레옹의 대관식>입니다.

 

 

1800년을 전후해 수십 년간 유럽 예술은 신고전주의의 시대였다고 분류됩니다. 신고전주의는 엄숙하고 위엄 있는 화풍이 특징입니다. 엄격한 분위기는 자칫 딱딱하고 뻣뻣하고 경직된 분위기로 굳어지기 쉬웠지만, 드물게 위풍당당한 화풍을 성공적으로 연출하는 경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위엄있는 권력을 이토록 압도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과연 또 있을 수 있을까요?

 

마치 대관식의 한 장면을 그대로 그려놓은 듯한 생생한 사실적 표현이 일품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이며, 당대 사람과 참석자들은 대관식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대관식의 한 장면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닙니다. 실제 상황과 세부적인 표현이 조금씩 다른 부분이 여럿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실제 모습에서 약간 변형하는 것이 훨씬 좋은 효과를 낼 수도 있는 법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실제 상황과 다른 디테일을 지니게 된 데에는, 훨씬 세속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역사를 상기시킨 예술'이 아니라 '역사를 변형시킨 예술'로 분류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 이유였지요.

 

 

<나폴레옹의 대관식>의 중심 부분 모습입니다. 실제 대관식에서 일어났던 일과 다른 묘사는 이 부분에 거의 집중되어 있지요. 실제 역사와 다른 디테일 묘사가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작은 변형이 하나같이 나폴레옹의 권력과 정당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수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대관식이 가장 잘 보이는 발코니에서, 위엄 있게 차려입고 대관식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귀부인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시나요? 이 귀부인은 나폴레옹의 어머니인 레티치아입니다.

 

레티치아는 나폴레옹이 황제에 등극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나폴레옹의 실책이라 생각했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나폴레옹이 권유한 정략결혼도 거부했다가 쫓겨나다시피 했던 남동생 뤼시앵 쪽을 편들었지요. 레티치아가 나폴레옹에게 돌아온 것은 나폴레옹이 폐위된 뒤였습니다. 이를 두고, 레티치아의 전기인 <나폴레옹 어머니 레티치아>에서는 레티치아가 무조건 가장 고난에 처한 아이의 편을 든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습니다.

 

레티치아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비드의 그림에서, 황제의 모후는 황제의 대관식에 기쁘게 참여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요. 이것은 궁극적으로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에 모친조차 동의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묻어버리는 효과를 가져오는데, 실제로 레티치아를 그려넣기로 결심했던 이유도 그것이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 뒤쪽에 흰 법의를 착용하고 앉아있는 인물은 교황 피우스 7세입니다. 교황이 대관식을 치르기 위해 친히 파리까지 왔지만, 나폴레옹은 결국 스스로 관을 써버렸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한 그 인물입니다. 이런 일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인지, 피우스 7세는 대관식 내내 소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대관식>에서, 교황은 손을 들어 친히 나폴레옹을 축복하는 손짓을 취하고 있지요. 실제 역사기록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림의 스케치 단계에서도 교황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습니다만, 도중에 일부러 수정한 것입니다. 레티치아 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훨씬 노골적으로 나폴레옹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쪽으로 그림을 수정한 것이지요.

 

 

이 그림을 보게 된 사람들은, 나폴레옹에게 찬탄하든 그림에 찬탄하든 일단 위엄 있는 모습에 우선 찬탄하고, 나폴레옹의 위풍당당한 이미지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교황의 적극적인 축복 하에, 대관식이 치러졌다고 인식하게 되어버리지요. 이쯤 되면 참석자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그리면서도 교묘하게 미화했다거나, 조제핀 황후가 41세였는데 실제보다 훨씬 젊게 그렸다거나 하는 건 사소한 해프닝 수준이 됩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묘사한 부분이 있다고, 그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그 반대에 가깝게 생각합니다. 저토록 노골적으로 이해관계를 따지는 주문조건을 충족하면서, 이토록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다니, 얼마나 대단한 예술적 성취인지 찬탄이 저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작품성과는 별도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그리면서 아주 교묘하게 디테일을 수정해, 보다 권력을 정당화하는 묘사가 되었다는 점은 흥미롭고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