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예술/역사를 변형한 예술

1347년 칼레 함락,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와 로댕의 <칼레의 시민>

아리에시아 2016. 3. 19. 11:52

1347년,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백년전쟁을 벌이던 와중에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이끌던 잉글랜드군이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를 점령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칼레는 1558년 헨리 8세와 첫째 왕비 아라곤의 카탈리나의 외동딸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언니인 메리 1세가, 남편 펠리페 2세를 도운답시고 국제 전쟁에 참여하는 와중에 프랑스가 재점령하기까지, 2백여년 동안 잉글랜드 땅이 됩니다.

 

칼레가 잉글랜드 땅이 된 지 반 세기 가량 흐른 1408년경, 프랑스의 작가인 장 프루아사르 Jean Froissart 는 백년전쟁 시기를 다룬 <연대기 Chroniques>를 씁니다.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로 불리는 이 책은 백년전쟁 동안 일어난 여러 역사적 사건을 다채로운 필치로 써낸 작품으로, 기사도적 이상 등 중세 말기의 문화적 정서를 잘 드러낸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이 책에서는 많은 미담과 영웅담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도 1347년 칼레 함락 때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영웅적인 미담으로 수백 년 동안 두고두고 회자되며 전해지게 됩니다.

 

 

 

<프루아사르 연대기>의 저자인 프루아사르의 초상입니다.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 나오는 칼레 함락 일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칼레를 포위하며 함락하기 직전에, 칼레의 유지 여섯 명이 자신에게 목숨을 맡긴다면 남은 칼레 사람들의 목숨은 보전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도시와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여섯 명이 대표자로 나서 죽는 운명을 자처했습니다. 이 여섯 명은 목에 밧줄을 감고 에드워드 3세 앞으로 나아가, 자신들이 대신 죽을 것이니 칼레를 파괴하지도 칼레 시민들을 죽이지도 말 것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에드워드 3세 일행은 그 의기에 감명받았고, 자애로운 성품으로 유명했던 에드워드 3세의 왕비였던 에노의 필리파가 자비를 베풀 것을 탄원하자,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여섯 명의 목숨도 빼앗지 않고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자신이 죽음을 맞겠다고 나선 사람이 여섯 명이 아니라 일곱 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남은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릴까봐 일부러 미리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지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이야기는 근대 이래 수백 년 동안 프랑스에서 아름다운 전설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1895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칼레의 시민들> 조각을 완성하면서, 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됩니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은 로댕의 대표작이자 근대 조각 걸작 중 하나로 꼽히며, 로댕의 작품 세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을 만큼 유명한 작품입니다.

 

오귀스트의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입니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당시에는 영웅적인 애국자들을 난데없이 처량한 몰골로 묘사했다는 식의 혹평을 받았고, 로댕에게 이 작품을 주문한 의뢰자 측에서도 사실상 작품의 인수를 거부해서, 외진 곳에 방치되듯이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간미를 처절하게 표현한 걸작으로 높이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이 미담은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 걸까요?

 

칼레 함락을 다룬 동시대의 사료는 현존하는 것만 20여 종으로, 이 사료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칼레의 유지 여섯 명이 칼레를 대표해 사형수 같은 행색으로 에드워드 3세 앞에서 항복하러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항복 의식으로, 도시를 대표해 죽겠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도시를 파괴하겠다고 말한 적도, 도시를 대표하여 나온 여섯 명의 목숨을 빼앗는 대신 칼레를 보존시키겠다고 제의한 적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살벌한 제의가 언급되는 최초의 문헌은 다름아닌 반세기 후의 저술인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입니다. 이 상황에서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만 나오는 이야기를,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는 역사서라기보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은 서사문학에 훨씬 더 가까웠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엄밀하게 고증하는 것보다 기사도적 이상 등의 미덕을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중평입니다. 프루아사르가 칼레의 시민들 이야기를 창작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비슷한 소문이나 창작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프루아사르가 그 이야기를 저술의 근거로 삼은 것인지는 불명확합니다. 확실한 것은 프루아사르가 쓴 <연대기>가 이 이야기를 언급한 최초의 책이자, 이 이야기가 훗날 수백 년 동안 유명해진 계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이 처음 쓰이고 5백여년 후, 로댕의 걸작에 소재를 제공하게 됩니다. <프루아사르의 연대기>에서 칼레의 시민들 미담을 지어내지 않았다면, 그 미담을 표현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로댕이 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는 로댕의 명작 한 점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