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사랑의 묘약 때문에 금단의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결국 그 사랑 때문에 죽고 마는 이야기입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첫 장면은 배 위에서 여주인공 이졸데가 한탄하는 장면입니다. 콘월과 아일랜드는 서로 전쟁 중인데, 아일랜드 공주인 이졸데를 콘월을 다스리는 마르케 국왕과 결혼시키면서 전쟁이 끝났습니다. 마르케 국왕의 조카인 트리스탄은 새 왕비가 될 이졸데 공주를 모시러 왔고, 공주 일행과 함께 콘월로 항해합니다. 그리고 콘월로 거의 도착할 때가 되자, 이졸데는 한탄에 한탄을 거듭하고 있지요. 그 전쟁에서 자신의 약혼자 모롤트가 전사했는데, 약혼자를 죽인 나라의 군주의 아내가 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약혼자를 죽였던 바로 그 남자, 국왕의 조카이자 콘월 최고의 기사라는 트리스탄에 대해서요.
이졸데는 트리스탄에게 복수한답시고 죽이려고 하지만, 실수로 두 명 모두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말죠. 그리고 서로 격렬한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국왕의 새 왕비와 국왕의 조카 사이의 사랑이 허용될 리 없었고, 마르케 왕은 누구보다 아끼던 조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트리스탄은 결국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고 맙니다. 마르케 왕은 트리스탄을 용서할 생각으로 이졸데와 함께 트리스탄을 찾아왔지만, 이미 늦었죠. 그리고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시신 위에서 '사랑의 죽음 Liebestod'을 부르고 쓰러지며 죽습니다.
발트라우트 마이어가 '사랑의 죽음'을 부릅니다. 독일어 자막과 영어 자막이 같이 나옵니다.
연출이 대본과 약간 다릅니다. 대본에서는 이졸데가 이미 죽은 트리스탄의 몸 위로 쓰러지면서 죽고 끝납니다. 이 공연에서는 이졸데가 이미 죽은 트리스탄과 재회하고, 뒤로 관 두 개가 나란히 놓인 장면으로 두 주인공이 죽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랑의 죽음'의 독일어-한국어 번역 대역입니다. 번역 출처는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이며, 오타 몇 군데를 수정해 올렸습니다.
트리스탄은 국왕의 조카일뿐만 아니라, 후계자이기도 했습니다. 마르케 국왕에게는 자녀가 없어서 조카를 후계자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 자체는 꽤 흔한 일인데, 계보도를 보면 좀 희한한 점이 눈에 띕니다. 트리스탄은 마르케 국왕의 형제의 아들이 아니라, 국왕 누이의 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친조카가 아니라 외조카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집안에 시집간 누이의 아들을 데려와 후계자로 삼은 거지요. 남동생의 아이도 아니고 누이의 아이를 후계자로 삼다니, 결혼을 '여자가 남자의 집에 새로 종속되는' 것으로 여기는 문화권에서는 의외로 보입니다. 근대 이후 유럽에서도, 장남에게 아이가 없어 조카를 후계자로 삼을 경우, 남동생의 소생이 그 후계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요. 누이의 아이가 후계자가 되는 것은 남자 쪽 핏줄이 끊겼을 때에나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나마 여자 쪽 혈통은 상속권 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외조카가 후계자가 되다니요? 트리스탄이 훌륭한 기사기는 하지만, 그것과 상속권은 엄연히 별개고요. 별도의 작위와 영지를 내려준다면 몰라도요.
마르케 국왕은 외아들이었던 걸까요? 마르케 국왕에게 다른 형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작품에서 딱히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설사 마르케 국왕에게 형제가 있었다고 해도, 아들이 없으면 외조카가 후계자가 되는 건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무대가 되는 중세 유럽에서는, 아들이 여럿 있어도 장남만 결혼하는 것이 관례였으니까요.
중세 유럽에서는 장남에게 모든 작위와 재산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안과 집안끼리 정혼하고 연애결혼은 꿈도 못 꾸던 시대에, 재산과 작위가 없는 남자에게 딸을 내줄 부모는 없었습니다. 동시에 가문의 재산과 세력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결혼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장남에게 아이가 없을 경우, 남동생이 그 뒤를 잇는 경우는 있어도, 남동생의 아이를 후계자로 삼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었던 거지요.
대신 딸들은 대부분 결혼시켰습니다. 결혼동맹으로 딸을 내주는 것은 유용한 거래였으니까요. 중세 유럽에서는 부부 중에서 아내 쪽의 집안이 남자 쪽 집안보다 더 좋은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장남만 결혼하는데, 여자들은 무조건 짝을 찾아주려고 하면, 수급불균형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지요. 콘스탄트 브리텐 부셔의 <중세 프랑스의 귀족과 기사도>에서는 이런 중세 유럽의 결혼 풍토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지요. 공주는 고위 귀족 남자와 결혼하고, 고위 귀족의 딸들은 보다 신분이 낮은 귀족 자제와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남자는 대개 자신보다 좋은 집안 출신의 아내를 맞았고, 여자는 가장 좋은 혼처라고 해 봐야 동등한 집안 출신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었으며, 대개 낮은 집안 출신과 결혼했다고요.
그리고 시집간 딸의 남편이 죽었을 경우, 딸은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 형제에게 의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 외숙부는 조카에게 단순한 친척 어른이 아니라,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가 되지요. 중세 유럽에서 외숙부가 결혼한 누이와 그 아이들을 거두는 것은 친정 눈칫밥 먹는 일이 아니라, 가문의 일원을 위한 자연스러운 문화였습니다. 결혼하지 못한 차남 이하의 아들이 결혼한 누이의 아이들을 기르면서, 부모 노릇을 해 주는 일도 많았고요.
여기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 왜 그렇게 중세 유럽에서 파격적인 러브스토리로 여겨졌는지, 오늘날에는 감지하기 힘든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외숙모가 될 사람과 외조카가 사랑에 빠진 이야기가 되는데, 중세 문화에서는 새어머니가 될 사람과 의붓아들이 사랑에 빠진 거나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던 겁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측면이 희석되어서, 오히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적국의 남녀가 사랑의 묘약으로 인해 사랑에 빠지게 된 이야기처럼 소개되는 일도 종종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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