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속의 문화사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코르티잔 문화

아리에시아 2015. 4. 3. 20:03

수많은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인기 많은 작품은 무엇일까요? 기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가장 무난한 대답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축배의 노래'를 비롯해 유명한 노래가 여럿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이라 할 수 있지요.

 

kbs중계석에서 방영된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사교계의 꽃으로, 진실한 사랑 같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홀연히 나타난 남주인공 알프레도가 사랑을 고백하자, 둘만의 생활을 시작하여 행복에 젖게 되지요. 하지만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비올레타에게 나타나,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와 동거하는 것 때문에 평판이 나빠졌고, 덩달아 그 여동생도 연인과 결혼을 못하게 되었다면서, 아들을 위해서 헤어져달라고 합니다. 비올레타는 그 부탁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변한 것처럼 꾸며서 알프레도를 떠납니다. 비올레타의 거짓말을 액면 그대로 믿은 알프레도는 배신감에 불타서, 비올레타를 찾아가 공개적으로 돈다발을 집어던지며 모욕해버립니다. 시간이 흐른 후, 비올레타는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고, 뒤늦게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알프레도가 나타나 비올레타에게 사과하면서 다시 같이 합치자고 합니다. 비올레타는 그 말을 듣고 행복해하지만, 폐병으로 알프레도의 품에서 숨을 거두게 되지요.

 

<라 트라비아타>의 배경은 19세기 파리입니다. 그런데 별다른 배경 설명을 찾아보지 않고 그냥 오페라만 보면, 이해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비올레타는 사교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이자, 자신의 집에서 연회를 열어 명사들을 초대할 수 있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사교계에서 인기 있는 여성과 커플이 되었다고, 오히려 평판이 떨어지다니?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코르티잔'입니다. 사교계에서 인기 있는 여성이라고 하면, 남성이 그렇듯이 상류층 출신의 교양 있고 인기 많은 아가씨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코르티잔은 미모를 갖추고 상류층이나 부유층이 원할 법한 교양을 쌓은 고급 창녀입니다. 조선시대의 황진이처럼 재색을 겸비하기로 이름높은 기생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남주인공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와 커플이 되었을 때, 순애보로 여겨지기는커녕 평판이 떨어진 것은, 코르티잔을 유흥의 상대로만 생각하던 인식이 깔려 있지요. 2막 2장에서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모욕할 때, 돈다발을 집어던지는 것은, 이때까지 지냈던 시간에 대해 '화대'를 지불하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토록 지독한 모욕으로 여겨진 것이고요.

 

오페라에서 비올레타는 매일같이 파티로 밤을 새는 생활을 했고, 그런 생활 때문에 몸이 쇠약해져 폐병을 얻은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리고 이런 생활 패턴은 당시에는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인기 있는 코르티잔에게도, 그리고 이른바 사교계 명사들에게도요.

 

 

'라 트라비아타' 여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 마리 뒤플레시 Marie Duplessis 가 극장에 있는 모습을 그린 당대의 그림입니다. 혼자서 전용 좌석을 마련해 앉아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 실제로도 코르티잔은 일반석이 아닌 박스석 등에 앉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유명'하고 '인기'있었으니까요. 그것이 비록 본질적으로는공허하고 덧없는 것이라 해도, 그 순간에만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