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투란도트>는 일단 중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만, 기본 설정을 들여다보면 중국과는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지요. <나비부인>, <라 보엠>의 작곡가인 푸치니의 유작으로도 유명합니다. 결말 부분을 작곡하기도 전에 죽었지요.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황제의 외동딸 투란도트 공주는 결혼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낸 수수께끼를 맞히는 사람과 결혼하며, 맞히지 못하는 구혼자는 죽이겠다고 천명합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맞힌 사람이 없어서 구혼자는 무수히 죽어갔지요. 한편 남주인공 칼라프는 왕자였지만 나라가 멸망해 떠돌아다니는 처지였는데, 투란도트 공주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칼라프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서 투란도트와 결혼할 수 있게 되고, 만약 투란도트 공주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낸다면 자신은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한 것으로 치겠다고 하지요. 하지만 바로 방금 떠돌이 행색으로 굴러들어온 자기 이름은 알아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은 승리했다는 아리아를 부릅니다. 그 유명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이 때 남주인공 칼라프가 부르는 노래지요.
한글 자막 있는 공연 영상입니다. 2013년 3월 4일 KBS교향악단 특별연주회 공연입니다. 테너 강무림, 김남두, 신동호가 번갈아 부릅니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의역에 가까운데, 제목을 직역하면 '아무도 잠들지 말라'입니다. 노래 제목이 길어서인지, 어느 쪽 번역제로 할지도 고민이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아예 이탈리아어 제목 음역인 '네순 도르마'로도 많이 부르고 있고요.
하지만 칼라프와 같이 있던 노예 류가 투란도트 공주에게 붙잡힙니다. 투란도트 공주는 남주인공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류를 고문하지만, 류는 남주인공을 사랑한다며 오히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여기까지가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이지요.
그 뒷이야기는... 류가 죽어도 눈썹 하나 깜짝 안 하던 투란도트 공주가, 칼라프가 투란도트를 책망하다 우격다침처럼 키스하니까 마음이 풀어져서 둘이 커플이 되어서 맺어집니다. 정말 내용이 저렇습니다. 작곡가가 죽고 다른 사람이 작곡해서 스토리가 저렇다는 말도 있지만, 저 부분 대본은 푸치니가 죽기 전부터 저랬습니다. 푸치니가 결말 부분 대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번 수정하다가, 죽기 전까지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요.
중국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있어도, 황당한 부분이 많지요. 애초에 황제에게 아들이 없다고 딸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동양문화권, 특히 중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입니다. 황제의 딸이 있고 먼 남자친척이 있으면, 당연히 남자친척이 후계자가 되는 세계관이니까요. 공주가 무려 황제의 의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결혼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는 것도 황제 중심에 가부장적 사고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엄한 일이고요. 황제가 공주를 사랑해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황제가 결혼할 수 없겠냐고 투란도트에게 애원하다시피 하는 장면이 나와서 그렇게도 못 합니다. 왕자가 없으면 공주가 후계자가 될 수 있거나, 못해도 공주와 결혼한 사람이 후계자가 될 수는 있었던 유럽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그나마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의 역사에서는 아들이 없을 경우 공주가 군주가 된 사례가 있기는 있지만, 중국에서는 공주가 중국의 제위에 앉은 사례는 없습니다. 유일한 여황제는 황후였다가 황제가 된 측천무후였지요. 그런데 이런 나라를 배경으로 하면서, 아들이 없다고 공주가 확고부동한 후계자로 인정받다니, 황당할 정도로 상식과 동떨어진 설정이지요.
게다가 이름은 어떻고요! 공주의 이름은 투란도트, 이름이 나오는 세 대신의 이름은 핑, 팡 퐁, 게다가 황제의 이름은 알툼입니다. 이게 중국 이름처럼 들리나요? 작곡가 푸치니가 아시아 문화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투란도트> 훨씬 전에 <나비부인>을 발표했는데, <나비부인>에서는 실제 일본어나 일본선율을 변주한 멜로디가 등장하는 등 일본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지요. 그런데 왜 유난히 중국에 대에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렇게 현실과 붕 뜨게 묘사했을까요? <투란도트>의 음악 중에도 중국 선율에서 모티브를 따 온 부분이 많은 걸 보면, 적어도 중국에 대해 무관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도요.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동양을 막연히 신비로운 세계로 환상을 가지는 풍조가 유럽에 있었습니다. 동양 문물, 특히 중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중국에 대한 환상을 갖게 했고, 막연한 먼 세계를 동경하기 무렵인 풍조까지 겹쳤지요. <투란도트>에서 중국은 내내 신비롭고 호화로운 곳으로 묘사되는데, 이런 이미지가 십분 반영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중국을 환상적인 곳으로 비현실적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인 배경을 만들고 싶어서 널리 알려진 중국 이미지를 대충 차용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 되지요.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의 <투란도트> 무대 모습입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지요. 당시에는 중국을 막연히 이런 곳일 거라고 상상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연히' 환상을 가지다 보니,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습으로 만들어집니다. 게다가 동양권의 이미지가 중국 이미지에 흡수되기도 했지요. <투란도트>의 이야기가 대표적인데, 원래는 페르시아 지역을 무대로 전해지던 이야기였습니다. '투란도트'의 투란이란 현재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을 일컫는 페르시아 쪽 지명이여, 페르시아의 권역이었던 곳입니다. 페르시아의 중세 서사시인 <샤나메>에서는 국왕이 아들들에게 땅을 나눠 상속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투르라는 이름의 둘째 아들에게 투란과 투르키스탄 지역을 주었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투란도트라는 이름은 페르시아어로 투란의 딸을 뜻하는 표현에서 따온 것입니다. 현지어 발음 버전으로는 '투란도흐트'에 더 가깝다고는 하지만요.
페르시아의 이야기로 전해지던 걸, 유럽에서 보기에는 같은 동양권이라는 이유로 중국을 무대로 그냥 가져다붙인 겁니다. 등장인물의 이름 같은 건 중국풍으로 고치지도 않고요. 하기야 18세기까지는 무려 유럽 이외의 지역을 통틀어 '인도'리고 통칭해 부르기도 했으니, 그에 비하면 페르시아와 중국을 구별할 수는 있게 된 건 나름대로 장족의 발전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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