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 '여자의 마음'으로 유명한 오페라 <리골레토>의 무대는 15세기 이탈리아의 만토바 공작의 궁정입니다. 이탈리아 역사나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여기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실 겁니다. 15세기 만토바의 군주는 공작이 아니라 후작이었습니다. 안드레아 만테냐 등 많은 예술가를 후원했던 나라이며, 티치아노가 초상화를 그렸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초상화 스케치를 남긴 적 있는 '이사벨라 데스테 후작부인'이 다스린 곳이 바로 만토바지요.
http://www.ktv.go.kr/program/contents.jsp?pcode=100961&cid=342204&item=&keyword=&gotoPage=6
위 링크는 ktv 공연초대석에서 80분 분량으로 편집된 <리골레토> 공연입니다. 2010년 공연으로,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http://tv.seoul.go.kr/seoul_2011/vod/vod.asp?mCode=030200&no=14691
위 링크는 서울시인터넷tv에서 vod로 시청할 수 있는 <리골레토> 공연 영상입니다. 서울시오페라단이 2007년 4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영상입니다. 리골레토 역에 고성현, 질다 역에 김수진, 만토바 공작 역에 나승서, 청부살인자 스파라푸칠레 역에 김민석입니다.
어째서 후작이 졸지에 공작이 된 걸까요? 이탈리아인이었으며, 이탈리아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베르디가, 왜 조금만 확인해보면 금세 알 수 있는 것을 엉뚱하게 설정한 걸까요?
바로 검열 떄문에, 원래 배경을 무리하게 변경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리골레토>의 원작은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의 <왕의 환락>입니다. <왕의 환락>에서 여주인공을 희롱하는 권력자는 바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로 묘사됩니다. 왕을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왕의 환락>은 사실상 상연금지처분을 받았고, 이탈리아에서도 원작 그대로 상연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버버리지요.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가공의 무대를 설정해, 있지도 않은 '만토바 공작'이라는 직함을 지어냅니다. 논란이 많은 실존인물을 극화할 때, 모티브와 행적만 따와 재창조한 가공인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은데, 그것과 비슷한 발상이었던 셈이지요. 그래서 국왕, 그것도 실존했던 군주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죄목'은 피해서,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리골레토>는 배경 외에도 당시 검열 때문에 많은 간섭을 받아야 했습니다. <리골레토>의 내용을 여주인공 입장에서 서술해보면, 대강 이렇습니다. 나름대로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납치범에게 납치당했더니 그 남자의 집이었습니다. 그 남자가 알고 보니 바로 '만토바 공작'이었던 거지요. 그리고 얼마 후, 속옷차림으로 그 방에서 뛰쳐나오는 신세가 되지요. 분노한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그 남자를 죽이려고 하지만, 여주인공은 그를 여전히 사랑한다며 대신 죽습니다.
왜 이런 결말이 나왔을까요? 당시 검열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낮은 신분의 여주인공은 능욕당하고도, 군주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넣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 외에도 검열당국은 이러저러한 장면은 넣으면 안 된다고 세세하게 지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이 침실에서 뛰쳐나오는 장면은 넣어도 되지만, 침실에서 만토바 공작과 단 둘이 있는 장면은 넣으면 안 된다고 했지요. 베르디는 이를 두고, 정말 멋진 이중창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했다고 안타까워하는 말을 남겼고, 그 외에도 검열에 대해 여러 번 분통을 떠뜨렸지요.
베르디의 또다른 작품인 <가면 무도회>는 배결성정을 바꾸는 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던 오페라입니다. <가면 무도회>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가 암살당한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암살 실화를 바탕으로 구스타프 3세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신뢰하는 신하의 아내를 사랑해서, 분노한 신하가 국왕을 암살했다는 연극이 만들어졌으며, 그 연극을 원작으로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지요.
국왕이 암살되는 결말이었기 때문에, 군주제였던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소재만으로도 검열을 통과하는 것이 요원했지요. 검열당국이 베르디에게 처음 내렸던 지시는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유럽 귀족이 국왕이 아내를 탐한다고 생각해서 국왕을 암살하는 게 아니라, 바이킹 시대를 배경으로 바이킹 전사가 자기 누이를 지키기 위해서 족장을 암살하라는 내용으로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베르디는 종교적 묘사에는 엄격하지만, 세속 권력을 묘사하는 데에서는 검열이 느슨한 편이었던 로마에서 이 작품을 작곡하기로 합니다. 로마 검열당국도 국왕 암살을 직접 다루는 것은 검열을 통과시키지 않았지만, 스웨덴 국왕을 포메른 대공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타협해주기로 합니다. 그렇게 포메른 대공이라는 직함으로는 그럭저럭 검열을 통과해서 상연할 수 있게 되는가 싶었는데....
작곡 도중 나폴레옹 3세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집니다. 이탈리아인이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당시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를 암살하려던 사건이었지요. 이 뒤로 군주 암살과 관련된 검열 조건이 엄혹할 정도로 강화되고, 포메른 대공이 암살당한다는 설정마저도 검열에 걸리게 되고 맙니다. 오페라 작곡을 강제로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결론부터 말하면, 우여곡절 끝에 스웨덴 국왕을 '보스턴 총독'이라는 가공의 직함으로 바꿔치기하는 조건으로, 검열을 통과하는 데에는 성공합니다. 머리를 맞대 이 아이디어를 짜내고, 이 아이디어라면 문제의 소지가 없다면서 검열관을 설득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어찌 되었건 검열을 통과해, 마침내 <가면 무도회>가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게 됩니다.
<가면 무도회>에는 남주인공 이름이 구스타보로 표기된 버전과, 리카르도로 표기된 버전이 혼재합니다. 전자가 원안대로 스웨덴 국왕이 등장하는 버전이고, 후자가 무대를 보스턴으로, 남주인공을 스웨덴 국왕에서 보스턴 총독으로 변경시킨 버전입니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가 등장하는 버전이 주로 공연되었지만, 근래에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보가 등장하는 버전도 많이 공연되고 있습니다.
http://tv.seoul.go.kr/seoul_2011/cmn/srhrtn.asp?nodeNum=507&cntid=14985
위 링크는 서울시인터넷tv에서 vod로 시청할 수 있는 <가면 무도회> 스웨덴 버전 공연 영상입니다. 서울시오페라단이 2007년 11월 3일 세종대극장에 올린 공연으로, 한국에서는 최초로 미국을 무대로 한 개정판이 아닌 스웨덴을 무대로 한 원작 버전으로 공연한 것입니다.
출연진은 구스타보 왕 역시 최성수, 아멜리아 역에 김은주, 레나토 역에 박경종, 점쟁이 울리카 역에 추희명, 시동 오스카 역에 조윤조, 암살을 획책하는 두 신하인 혼과 리빙 역에 각각 남완과 안균형, 크리스티아노 역에 임경택, 재판관 역에 차정철, 아멜리아의 하연 역에 한규원입니다.
베르디의 저 두 작품이 특히 유명합니다만, 그 외에도 검열 당국의 간섭으로 고난을 겪은 오페라는 많습니다. 유명한 오페라만 꼽아봐도-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도 검열 때문에 초연을 망쳤습니다.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메리 스튜어트 여왕을 소재로 한 오페라로 나폴리에서 초연될 예정이었는데, 당시 나폴리 왕비가 메리 스튜어트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재조차 나폴리 검열당국을 통과하지 못하지요. 문제는 상연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 무대배경, 의상, 가발 등이 모두 준비된 상황에서 총연습을 하고 있는 시점이었다는 겁니다. 극장에서는 배경을 바꿔서 검열을 통과하기로 하고,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 두 여왕의 대립이 아니라, <보온델몬테>라는 제목으로 14세기 이탈리아에서 황제파와 교황파가 대립하는 이야기로 바꿔치기해서 검열을 통과하는 데 성공해 초연합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변경된 설정으로 공연된 초연은 엉망이었습니다.
<라 트라비아타>도 비슷한 운명을 겪은 적 있지요. <라 트라비아타>는 19세기 중반에 초연된 작품으로, 당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는 옛 의상을 입고 오페라를 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지라, 가수들이 일상복을 입고 오페라에 등장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로 여겨졌습니다. 게다가 <라 트라비아타>는 당시 부유층의 위선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인지라, 관객이 불쾌해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고요. 그래서 극장에서는 <라 트라비아타> 출연진에게,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사교계의 의상이 아닌, 18세기 프랑스 귀족사교계의 의상을 입혀서 공연하게 합니다. 일단 한 번 정착되자 쭈욱 그 버전대로 공연하게 되었고, 20세기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베르디의 의도대로 19세기 중반을 무대로 한 공연이 연주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 본의아니게 실제 역사를 변형시켜야만 했던 오페라는 여럿 있습니다. 어떻게든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온갖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지요. 그 극악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원래 메시지를 담아낸 타협안을 구상해낸 것을 보면, 감탄스러우면서도 안타깝습니다. 그런 곳에 쏟을 저력을 온전히 작품에 쏟아부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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