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의 작곡가인 베르디의 <돈 카를로>는 제가 오페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우울하고 묵직하기 그지없지만, 듣다 보면 자꾸 빠져들게 됩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무적함대로 유명한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2세가, 외아들 돈 카를로스의 약혼녀와 결혼하게 되면서, 다들 고통스러워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페라에서는 돈 카를로스와 동갑내기 약혼녀인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졸지에 새어머니와 새아들 관계가 되어 번민에 빠집니다. 둘 사이에 혹시 가족애 이상의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펠리페 2세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고요.
국립오페라단의 20103년 7월 12일 공연으로, KBS중계석 방영분입니다. 한글 자막이 달려 있으며, 5막 버전에서 1막이 통째로 삭제된 4막 버전입니다.
제가 이 오페라를 감상할 때마다, 저는 제가 에스파냐 역사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다행이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에스파냐 역사에 정통했다면, 절대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술적 각색도 정도가 있지, 이건 캐릭터를 실제 역사와 정반대로 바꿔놓은 수준입니다. 역사왜곡 정도가 아니라, 역사창조라는 표현이 차라리 어울릴 거예요. 작곡가 베르디도 이 오페라의 내용에 대해, 실제 역사에 없는 이야기는 넘쳐나도 실제 역사와 합치하는 이야기는 없다는 식으로 말한 적 있지요.
소재 자체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합니다. 등장인물 중 돈 카를로스를 구하고 대신 죽는 친구인 포사 후작 로드리고를 제외혐 모두 실존인물입니다. 펠리페 2세는 결혼을 네 번 했습니다. 첫째 부인은 돈 카를로스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둘째 부인은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언니이자 블러디 메리로 불리는 잉글랜드 여왕 메리 1세로, 아이 없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왕비로, 돈 카를로스의 약혼녀였던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를 맞아들입니다. 엘리자베트는 딸 둘을 낳고 세번째 임신을 했는데, 돈 카를로스가 유폐되었다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말을 듣자 충격으로 사산한 뒤 그 후유증으로 사망합니다. 펠리페 2세는 후계자를 위해 돈 카를로스의 두 번째 약혼녀였던 조카를 네 번째 왕비로 맞이하지만, 네 번쨰 왕비 역시 아이를 낳다가 죽고, 여섯 아이 중 아들 한 명만 살아남습니다. 펠리페 2세의 뒤를 이은 펠리페 3세입니다.
하지만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가 연인의 감정을 가졌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오페라에서는 약혼 시절 돈 카를로스가 시종이라고 신분을 숨기고 왔다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서로 사랑에 빠지는 대목이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둘은 펠리페 2세의 결혼 이전까지 서로 얼굴을 본 적도 없고, 오페라에서처럼 일국의 왕자이자 실질적 후계자가 함부로 몰래 다닐 수도 없습니다. 엘리자베트 왕비가 펠리페 2세와 결혼한 뒤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돈 카를로스와 가깝게 지내기는 했지만, 연인으로서의 애정이라기보다 낯선 궁정에서 거의 유일한 자기 또래에게 친밀감을 느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돈 카를로스도 궁정 사람 중 가깝게 지낸 사람이 막내고모와 엘리자베트 왕비밖에 없었다고 하고요. 펠리페 2세도 오페라에서처럼 잘못 없는 외아들을 잡아먹으려 안달하는 위인이 아니었습니다. 돈 카를로스는 정신병을 가지고 있었고, 펠리페 2세는 그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국사로 바쁜 와중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다정하게 대해주는 등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오페라와 희곡에서 '지고지순한 영혼 돈 카를로스와 악역 펠리페'의 구도는, 실제 역사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지요.
요약하면, 이 오페라의 역사성은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대립하는 이야기를 쓰면서, 명성황후를 청순가련하고 지고지순한 희생자로, 흥선대원군을 탐욕이 가득하고 며느리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 악당으로 묘사"한 데 비견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그 작품이 '지고지순 선녀=음흉한 악당'의 도식을 정말 잘 구현해서, 작품 자체는 정말 재미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에서라면 역사적 상식이 있는 사람은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겠지만, 작품을 너무나도 잘 만들어서, 외국에서는 인기를 끌었다면요? 그럼 외국인은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과 그 시대의 조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게 될까요? <돈 카를로>는 바로 그런 상황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오페라는 <빌헬름 텔>을 쓴 프리드리히 실러의 희곡 <돈 카를로스>를 원작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오페라를 워낙 감명깊게 봐서, 원작을 봤다가 기겁했습니다. 작품성이 형편없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종교관에 도저히 몰입할 수가 없었어요. 카톨릭을 믿던 나라를 배경으로, 카톨릭교는 만악의 근원이니 신교를 도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거든요.
아무리 신교국가인 독일작가여도 그렇지, 대표적인 카톨릭교 국가를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를 쓰다니, 너무 심해서 집중이 안 될 정도였습니다. 펠리페 2세 시대 에스파냐 궁정에서 저게 말이 되나요. 게다가 엘리자베트 왕비는 "세련되고 품위있는 프랑스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카톨릭 에스파냐 궁정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다니." 라고 한탄하는 투의 대사도 여러 번 하고요. 초고보다 종교적, 사상적 표현이 옅어지고 인간드라마가 강조되었다다는데도 이 정도라니, 초고는 대체 어느 정도였던 걸까요.
오페라에서는 이런 종교사상적 면모를 대폭 희석시켰습니다. 원작에서 카톨릭을 공격하는 부문도, 오페라에서는 종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권력을 가진 종교의 문제점인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두고, 역사적으로 터무니없는 묘사로 가득하다고 쓴소리를 한 전적도 있고요. 고백하자면, 전 오페라만 봤을 때는 플랑드르 봉기가 종교개혁인 줄 몰랐습니다. 펠리페 2세 시대 플랑드르의 봉기라면 신교와 종교개혁밖에 없는 게 뻔한데도, 오페라만 볼 때는 '제국의 압제에 대항하는 민중봉기' 쯤으로만 알았어요. 에스파냐 역사에 정통한 분이라면, 오페라를 봐도 역사적 묘사에 위화감을 느껴 도저히 몰입을 못할 지도 모릅니다. 전 그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는지라, 오페라 정도의 묘사라면 몰입할 수는 있지만요.
역사적 묘사의 근거가 희박하거나 실상은 정반대였지만, <돈 카를로>는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원작 희곡도 '변질된 낡은 사상과 새로운 신념'의 대립으로만 받아들이면, 몰입감 넘치게 잘 짜여 있고요. 다만 오페라와 희곡을 보고, 실제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겠지요. 펠리페 2세가 역사적으로 덜 유명한 왕이었으면, 오페라의 묘사가 진실인 것처럼 알려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담 하나. 전 실제 역사에서 대체 왜 왕의 외아들 약혼녀를 왕의 새 왕비로 변경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나이가 아버지뻘이라는 걸 제외하면 정신건강, 성품 등을 보면 펠리페 2세가 돈 카를로스보다 훨씬 좋은 남편감이기는 한데, 그 시대 정략결혼에서 어디 그런 걸 따지던가요. 왕의 외아들의 아이를 낳을 때와, 아들 있는 왕의 후처가 되어 아이를 낳았을 때의 손익을 따지겠지요. '손익'으로 따졌을 때 전자가 여러 모로 유리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왕의 외아들과 약혼했다가 외아들이 죽은 후 왕과 결혼한 공주는 여럿 있지만, 왕의 외아들과 약혼했다가 그 외아들이 살아있는데 왕과 결혼한 사례는, 펠리페 2세와 엘리자베트 이외에는 전무합니다. 카토-캉브레지 조약으로 그리 되었다는데, 무슨 평화협상을 어떻게 했기에 다음 왕의 왕비로 내정된거나 다름없던 공주를 아들 딸린 홀아비의 후처로 만들어버렸던 것인지. 대체 이유가 뭐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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