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작품 중에서는 중세가 낭만적으로 묘사된 작품이 많지요. 아리따운 숙녀들, 용감하고 신사적인 기사들이 우아한 궁정을 무대로 등장하는 이야기가요. 그 정점에 있는 것은 아서왕 전설입니다. 아서왕 전설이 아니었다면, 중세 기사도 이야기가 오늘날 이렇게 대중적으로 널리 퍼지지 않았을 거예요.
중세 시대 아서왕 이야기는 많은 인기를 끌었고, 아서왕 이야기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 수없이 쏟아져나왔습니다. 현재 아서왕 이야기의 결정판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말로리가 쓴 <아서 왕의 죽음>이라는 저술인데, 이 작품은 말로리가 최소한 수십 편은 훌쩍 넘는 다른 작가들의 아서왕 문학작품을 읽고 종합해낸 것입니다.
아서왕 이야기는 중세가 끝난 후 몇백 년간 잊혀졌지만, 19세기 말 예술계에 중세풍이 유행하고 자국 고전작품 열풍이 불면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아서왕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동화책, 소설책, 영화와 드라마, 그림이 그야말로 쏟아져나왔지요. 반짝이는 은빛 갑옷으로 무장하고, 신사적으로 행동하며 기사도를 지킨다는 이미지도 널리 퍼졌습니다. 아서왕 이야기 자체의 열풍은 수그러든 뒤에도 옛날 이야기 소재로서의 영향력은 여전하며, 신사적인 기사도라는 이미지는 통념처럼 자리잡았지요.
그런데, 아서왕 이야기는 실제 중세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 걸까요?
중세에는 아서왕이라는 왕이 없었다는 것이 오늘날 정설입니다. 그리고 기사도라는 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요.
아서왕 이야기의 출발은 단순합니다. 몬머스의 제프리라는 사람이 '브리튼 열왕기'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이 책은 옛날 잉글랜드의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표방은 했지만, 실상은 역사는커녕 기껏해야 전설 모음집 이상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적 전거가 전무한 건 둘째치고, 제프리 이전에 그런 전설이 있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아요. 제프리 개인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겁니다. 제프리가 지어낸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이야기를 채록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근거라고는 개인이 지어내기에는 분량이 방대하다는 것 정도가 고작입니다.
'브리튼 열왕기'는 여러 국왕들이 옛날 시대를 배경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야기를 잔뜩 담고 있었는데, 이 이야기가 중세 시대 문학의 원전으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일전에 중세 시대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 죄악처럼 여겨졌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지요.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려면, 비슷한 행적의 다른 기존 캐릭터를 가져오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하를 거느린 아서왕 이야기가, 중세 시대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인기 있는 작품은 그 시대를 반영하거나, 그 시대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얻어야만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법이니까요. 오늘날 아서왕 전설을 접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서왕 전설은 전자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세 시대는 정말 아서왕 전설 세계 같았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실상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아서왕 궁정 같은 낭만적이고 평온한 곳은 중세 시대에 없었고, 그렇기에 그런 궁정을 그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입니다. 기사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는 기사도 같은 것은 없었기에, 신사적인 전사 캐릭터가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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