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초선은 희대의 미녀로 유명한 여성입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성 중 가장 유명하며, 웬만한 삼국지 등장인물보다도 훨씬 더 유명하지요. 삼국지에 대해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었고 조조와 대결구도를 형성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아마 대부분 초선은 알 겁니다. 초선은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초선은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는 가공인물입니다. 요즈음 사극에 등장하는 가공인물을 실제 인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에피소드가 종종 들리는데,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에 등장하는 가공인물이 어느 정도로 유명해질 수 있느냐에 대한 가장 극단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 삼국지의 초선일 겁니다. 가공인물이라는 이유로 초선 대신 항우의 아내였던 우미인을 중국 4대 미녀로 꼽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초선이 워낙 유명해서 아직까지 중국 4대 미인은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가 세워지기도 한침 이전, 동탁이 한나라를 휘두를 때의 이야기입니다. 동탁은 갖가지 학정을 펼쳤지만, 당대 최고의 무인인 여포를 양자로 삼았기에 사람들은 맞서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이를 근심하던 사도 왕윤은 아름다운 양녀 초선을 이용해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이간질할 미인계를 세웁니다. 초선을 여포에게 먼저 소개해 여포에게 시집갈 것처럼 말해두고는, 아무 말 없이 동탁에게 초선을 바쳐 동탁이 일부러 여포의 정인을 빼앗은 것처럼 꾸밉니다. 동탁 입장에서는 여포가 새로 데려온 동탁의 총희를 탐내는 것 같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꾸미고요. 초선은 초선대로 여포 앞에서는 억울하게 권력자에게 끌려간 가련한 아가씨 역을, 동탁 앞에서는 새 주인을 모시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겁박을 받고 있는 가련한 아가씨 역을 연기합니다. 둘의 사이가 갈라지자, 왕윤은 동탁이 역적이니 동탁을 치는 것이 더없이 정당한 일이라고 여포에게 이야기하고, 가뜩이나 동탁과의 사이도 좋지 않던 여포는 앞장서서 동탁을 칩니다. 이렇게 심지 굳은 절세미녀 한 명이, 폭군 같던 권력자를 제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야기가 되지요.
현대 화가가 상상하여 그린 초선의 초상화입니다. 이 그림은 단독초상화라 초선 혼자 그려져 있지만, 초선 삽화에서는 동탁이나 여포와 함께 있는 그림도 많습니다.
위의 초선 초상화와 함께 그려진 다른 중국 4대 미녀 초상화입니다. 왼쪽부터 서시, 왕소군, 양귀비입니다.
서시는 와신상담 고사로 유명한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왕 부차와 월나라왕 구천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미녀입니다. 적국 국왕을 여색에 빠지게 하려고 작정하고 보낸 미녀로, 그 임무를 너무나도 훌륭히 수행하지요.
왕소군은 한나라 때의 궁녀입니다. 흉노와 화친하면서 궁녀 한 명을 흉노 수장의 아내로 보내기로 했는데, 그 때 시집간 여인입니다. 왕소군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궁녀의 초상화를 그려 가장 못생긴 궁녀를 흉노 수장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는데, 왕소군은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화공이 왕소군을 천하의 추녀로 그렸고, 그래서 왕소군이 뽑혔습니다. 왕소군이 혼례 사절단에 모습을 드러내자, 황제는 왕소군의 미모를 보고 한탄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니 보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양귀비는 당나라 현종의 후궁이었습니다. 서양 미인의 대명사가 클레오파트라라면, 동양 미인의 대명사는 양귀비입니다. 경국지색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역사책에서 초선의 원형으로 추측되는 인물이 있기는 한데, 이름조차 없고 등장도 단 한번 뿐입니다. 여포와 동탁은 가뜩이나 종종 살벌해질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였는데, 그 와중에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정을 통하다가 그것이 들킬까봐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한 줄을 기반으로 미인계를 쓰는 미녀 캐릭터가 만들어졌고, 중국 4대 미녀의 서시나 왕소군보다도 훨씬 유명한 절세미녀 캐릭터가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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