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속의 역사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프랑스의 '피의 세금'

아리에시아 2014. 6. 21. 11:55

로시니 작품은 한 막이 끝나는 피날레 장면에서, 처음에는 한두 명이 노래부르다가 한 명씩 더해져서 점차 합창이 되어가는 곡을 많이 썼습니다. 나중에는 로시니 작품의 특징이 되어, '로시니 크레셴도'라는 별칭까지 붙었을 정도입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1막은 이런 로시니 크레셴도의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마을 이발사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 아가씨가 서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두 사람이 만날 기회를 만들기 위해 계획을 짭니다. 그러고는 알마비바 백작이 군대 장교로 변장해서, 로지나 아가씨의 집을 군 숙사로 징발하게 되었다고 둘러대어, 그 집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지요.

 

알마비바 백작은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고, 그 게획을 따릅니다. 로지나와 결혼해 로지나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후견인 바르톨로는 이 집은 징발 대상에서 면제된다는 증서가 있다고 반발하지만, 장교로 변장한 백작은 술에 취한 척 가장하며 못 들은 척합니다. 그 와중에 진짜 군 부대가 이 집에 들어오면서, 한바탕 난리가 생겨나지요. 군 장교는 장교로 가장한 사람이 알마비바 백작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대충 봉합하려고 하지만, 이미 난리가 난 것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습니다. 한바탕 난리 속에 1막이 끝나지요. 2막에서도 스케일은 작지만 비슷한 난리가 일어나고, 우여곡절 끝에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가 결혼하게 됩니다만, 1막의 마지막 합창 장면은 대체 수습될 수 있을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난리통에 끝납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1막 피날레 장면입니다. 허버드 오페라 홀에서의 2013년 공연으로, 자막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보일 구석이 있습니다. 태연하고 평화로운 걸 보니 전쟁터인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외국군에 점령당한 건 더더욱 아닌 모양인데, 군대가 함부로 민가에 들어가 그 집을 쓰겠다고 선포하는 게 가능하다니요! 게다가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지, 마을의 유지인 바르톨로 집에는 이런 징발대상에서 면제된다는 증서를 따로 발급받기도 했다는군요. 하기야 그런 핑계라면, 집주인과 일면식 없는 외부인이 남의 집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는 데에서, 얼마나 일상다반사인지를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요.

 

 

<세빌리아의 이발사> 원작은 프랑스 작품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 전기에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도 유명한 보마르셰의 작품이지요.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군대가 다짜고짜 민간의 저택을 징발하여 의식주를 충당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타국에 쳐들어가 점령군으로서 횡포를 부린 것도 아니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그렇게 했어요.

 

루이 14세대 시절을 일컬어 흔히 절대왕정이라 하는데, 루이 14세와 다음 왕인 루이 15세는 외화내빈의 극치였습니다. 프랑스의 영광 운운하면서 수시로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돈 먹는 하마입니다. 그 호화롭고 웅장하다는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비를 탈탈 털어도, 당시 기준으로 전쟁 두세 번 수행할 비용밖에 안 됩니다. 그런 전쟁을 몇 년 단위로 해댔으니, 국고가 남아날 리가 없지요. 이렇게 쌓인 적자는 결국 해결을 보지 못하고, 프랑스 대혁명 시기 국고 상태의 원인이 됩니다. 숙련공이 많으면 일당 2리브르를 벌던 시대, 나라가 50억 리브르의 빚을 지고는, 세금을 늘리려고 했다가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지요.

 

전쟁에 돈 쓸 곳이 많아지자, 오히려 병사의 복지는 우선순위가 밀려났습니다. 병사들은 결국 총칼응 앞세워 민간에서 먹을 것을 약탈하고, 민간에 쳐들어가 잠잘 곳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두려움에 벌벌 떨며 속절없이 가진 것을 내놓아야 했고요. 상대가 총칼을 가졌다는 건 둘째치고,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나라에서는 무조건 병사의 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로서는 국고에서 지출되지 않는 곳에서 병사의 수요를 충당하는 것이, 국고 지출을 줄인다는 인식밖에 없었거든요. 이런 일은 전쟁 중이건 아니건 그야말로 일상다반사였고, 이를 일러 '피의 세금'이라는 이름까지 붙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군대의 민간 횡포에 대한 불만은 조금씩, 꾸준히 쌓여갔습니다. 이 불만이 누적된 것이, 후일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지요.

 

프랑스보다는 정도가 덜했지만, 다른 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시에 군대가 민가에 함부로 쳐들어가 행패를 부리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잡힌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았으면, 그런 핑계로 남의 집에 그럴싸하게 들어간다는 아이디어가 코미디 요소로 쓰이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을까요. 저 오페라를 작곡한 로시니는 이탈리아인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그의 작품이 상연되었지만, 저 장면에서 "군대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기록은, 현재까지는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폐습을 코미디 요소로 승화해낸 솜씨는 대단해서, 저런 역사적 배경을 알면서도 저 장면을 감상할 떄면 유쾌한 선율에 웃음이 지어지곤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