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속의 역사

베르디의 <돈 카를로>, 에스파냐 종교재판소와 플랑드르 봉기

아리에시아 2014. 4. 12. 10:40

<돈 카를로> 3막에서는 종교재판 장면이 나옵니다. 종교재판소에서 불신자, 혹은 죄인이라고 판결난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화형시키지요. <돈 카를로>의 종교재판 장면은 광신적인 인민재판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3막의 야외행사 장면을 처음 보면 무슨 공식 연회라도 벌이는 것 같은데, 국왕, 왕비, 중신들이 종교재판에서 화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처벌받는 것을 태연히 관람하도록 연출됩니다.

 

 

에스파냐 종교재판소의 악명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종교단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고문하고 처형했다는 식의 이미지가 많이 퍼져 있지요. 일반적인 종교재판, 마녀재판의 이미지는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중세가 암흑의 시대였다는 통념이 있는데, 이 시대 에스파냐는 그런 중세의 폐습을 답습한 곳으로 여겨지고, 종교재판소가 그 정점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오페라 <돈 카를로>에서 종교재판소의 화형이 황실 공식행사의 일부분처럼 묘사되는 것은, 그런 인식에 기반합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소>에 따르면, 연구 결과 실제의 에스파냐 종교재판소는 알려진 것만큼 극악무도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에스파냐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종교재판이 벌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나라에서 일어났던 해악까지 원조 되는 에스파냐 종교재판소에 모두 뒤집어씌워진 거지요. 막상 에스파냐 종교재판소에서는 어지간히 뚜렷한 증거가 없으면 기소되거나 조사받지도 않거나, 종교재판소의 논리에 따르는 시늉만 하면 방면될 때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에스파냐 종교재판소를 본뜬 다른 나라에서, 트집잡아 고문실로 데려가고는 다짜고짜 처형해버리는 식의 일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났지요. 물론 에스파냐 종교재판소가 억울하기만 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알려진 것보다 덜할 뿐이지, 이단자 심판과 화형 등이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그것을 "신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일이고요.

 

<돈 카를로> 4막은 펠리페 2세가 자신은 고독하다는 아리아를 부른 뒤, 종교재판장과 독대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종교재판장은 국왕이자 황제인 펠리페 2세를 압도하는 것처럼 그려지지요. 펠리페 2세는 결국 종교재판장의 주장에 따르기로 한 뒤, 국왕도 종교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라는 내용의 독백까지 하지요. 실제 당시 에스파냐에서도, 종교적 권위가 국왕의 권위를 앞섰으며, 종교가 반대하는 일이라면 국왕도 공식적으로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원칙이고 법도였어요. 오페라에서처럼 종교가 왕권을 압도했다기보다, 왕권이 종교적 명분이 될 만한 구실을 내세워 정당화에 활용했다는 쪽에 더 가깝기는 했지만요.

 

 

종교재판소로 대표되는 에스파냐 카톨릭은 종교개혁 및 개신교 세력과 전면적으로 맞붙게 됩니다. 특히 플랑드르 지역에서 이런 움직임이 두드러졌지요. 플랑드르는 <플랜더스의 개>의 그 플랜더스 지방으로, 플랑드르는 프랑스어 발음이고 플랜더스는 영어 발음입니다. 당시 플랑드르는 에스파냐 제국이 과중한 세금을 물리는 등 플랑드르를 속국으로 다스리는 데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종교 문제까지 겹쳐서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나지요.

 

막상 플랑드르 지역에서도 대다수는 에스파냐의 카톨릭교를 믿고 있었고, 신교도는 극소수였습니다.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몇몇 사람들의 종교를 빌미로 가혹하게 탄압하자, 종교를 떠나 플랑드르인끼리 연대하며 에스파냐에 맞서게 되지요. <돈 카를로>에서 돈 카를로 왕자와 친우 로드리고는 플랑드르가 에스파냐 제국에 봉기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탄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며 에스파냐가 아닌 플랑드르 편을 듭니다. 여기서의 플랑드르 봉기가 바로 이 사건입니다. 오페라에서는 압제에 들고 일어난 민중봉기로만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종교문제까지 얽힌 복잡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돈 카를로>에서 황제의 외아들은 종교개혁을 인정해야 한다고 왕실 공식 행사에서 주장한 격이 되었던 거지요.

 

<돈 카를로>에서는 돈 카를로가 압제받는 신민들을 구한답시고 플랑드르 사절들을 편들어 주는 대목이 나오는데, 실제 역사의 돈 카를로스 왕자도 플랑드르 봉기에서 에스파냐가 아닌 플랑드르 편을 들었습니다. 덕분에 펠리페 2세에게 더욱 큰 분노를 샀지요. 오페라에서는 휴머니즘 정신에서 그런 것처렴 묘사되었고, 실러의 원작 희곡에서는 에스파냐 종교재판소 등에 염증을 품고 새로운 신교도 신앙에 매력을 느껴 그런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셈 치고 플랑드르 편을 들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각색한 쪽이, 작품상으로는 훨씬 흥미진진한 구도를 만들어냈지만, 작품의 묘사를 실제 역사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