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속의 역사

푸치니의 <토스카>와 나폴레옹 전쟁의 마렝고 전투

아리에시아 2014. 5. 24. 11:49

푸치니의 <토스카>는 '별은 빛나건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의 아리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유명한 아리아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로도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요.

 

 

2014년 8월 23일 솔오페라단에서 공연한 <토스카> 공연 영상입니다. 출연진은 카바라도시 역에 테너 김지호, 토스카 역에 소프라노 한예진, 스카르피아 역에 바리톤 엘리야 파비앙입니다.

 

(이 글을 처음 썼을 때는 토스카 역에 소프라노 키아라 타이지, 카바라도시 역에 테너 유시프 이바조브, 스카르피아 역에 바리톤 고성현이 출현한 2013년 글로리아 오페라단 공연 영상을 올렸었습니다만, 그 영상이 나중에 삭제되어서 교체했습니다.)

 

 

<토스카>의 여주인공 토스카는 인기 가수로서, 화가 카바라도시와 연인 사이입니다. 카바라도시는 '오묘한 조화 Recondita armonia'를 부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스카>의 배경은 두 연인이 예술활동을 하면서 알콩달콩 즐기기에는 너무나도 험난한 시대였지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벌이던 시기의 이탈리아였던 것입니다. 악덕경찰은 카바라도시의 친구를 쫓았고, 카바라도시는 친구를 도우며 도피시킵니다. 그 일을 빌미로 경시총감인 스카르피아 남작은 카바라도시를 잡아들입니다. 경시총감은 나폴레옹 반대파였고, 카바라도시와 친구 안젤로티는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쪽이었지요.

 

나폴레옹이 마렝고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스카르피아는 희희낙락해 카바라도시를 잡아들입니다. 하지만 얼마 후, 마렝고에서 나폴레옹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오지요. 하루만 지나면 세상이 바뀌고, 스카르피아 남작 겸 경시총감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스카르피아는 하루밖에 남지 않은 권력마저 이용하며, 토스카더러 자신에게 몸을 바치지 않으면 카바라도시를 처형하겠다고 합니다. 대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사형집행하는 흉내만 낸 뒤 풀어주겠다면서요. 토스카는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vissi d'amore'를 애절하게 부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스카르피아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토스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 하면서 스카르피아가 사형방법을 변경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고 2명분 통행증까지 받은 뒤, 식사용 나이프를 집어들고 스카르피아를 찌릅니다.

 

카바라도시는 '별은 빛나건만 E lucevan le stelle ' 을 부르며, 별은 저토록 빛나고 있는데 자신은 죽게 되었다는 것을 한탄합니다. 자신이 죽는 것보다도, 토스카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고 토스카를 남겨두게 되었다는 것에 더 슬퍼하지요. 그 순간 토스카가 나타나, 스카르피아에게 사형집행하는 시늉만 하면 풀려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스카르피아가 내린 진짜 명령은 사형을 집행하라는 것이었고, 카바라도시는 죽고 맙니다. 토스카는 뒤늦게야 알고 슬퍼하다가, 스카르피아의 부하들이 쫓아오는 것을 보고 성벽 위에서 몸을 던집니다.

 

<토스카>의 초연 포스터입니다. <토스카>를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싱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로도 유명합니다.

 

 

<토스카>는 몇년 몇월 며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하루 단위로 추적할 수 있는 드문 작품입니다. 작품 도중에 나폴레옹이 마렝고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가, 조금 뒤에는 역전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까요. 나폴레옹이 패배한 소식을 듣고 스카르피아는 더한층 기세등등하고, 나폴레옹이 역전승했다는 소식을 듣고 카바라도시는 기뻐하다가 괘씸죄까지 추가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승리하면서, 스카르피아는 당장 내일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게 되지요. 스카르피아는 나폴레옹 반대파가 임명한 인물이었으니까요. 이 소식이 <토스카>의 배경이 된 산탄젤로 성 인근에 전해진 것은 1800년 6월 17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토스카>의 시대적 배경은 1800년 6월 17일 하루, 마지막 장면은 그 다음날 새벽이 됩니다.

 

1800년 6월 14일,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마렝고에서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막상 이탈리아 마렝고에서 벌어진 전투에 이탈리아군은 없고,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이 격돌하는 전투였지요.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을 막기 위해 먼 이탈리아까지 병력을 파견했던 것입니다.

 

루이 프랑수아 르죈 남작이 마렝고 전투를 주제로 그린 그림입니다. 마렝고 전투가 일어나고 2년 뒤인 1802년 작품입니다.

 

 

1차 격돌에서,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을 전멸시키기 직전까지 몰아붙입니다. 그 순간 프랑스군의 드제 장군이 휘하 병력을 이끌고 마렝고에 도착합니다. 드제는 나폴레옹에게 "이번 전투는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승리할 시간이 남아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오스트리아군에 반격합니다. 2차 격돌에서는 오스트리아군이 와해되고 드제가 지휘하던 프랑스군이 승리합니다. 이 전투에서 드제는 전사했지만, 프랑스군은 패배하기 직전의 전투에서 역전승을 일궈내는 개가를 올리게 됩니다. 마렝고 전투로 오스트리아의 입지는 크게 위축되었고, 나폴레옹은 더욱 승승장구하게 되지요.

 

 

<토스카>에서 마렝고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나폴레옹 편을 드느냐 그 반대편이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이 나오지요. 승리했다는 소식이 재차 들리자 처지가 정반대가 되면서, 경시총감은 전전긍긍하고 경시총감에게 잡혀온 사람들이 대놓고 만세를 부르는 상황에 펼쳐지고요. 실제로도 비슷한 일이 속출했다는 기록이 여럿 전합니다. 마렝고에서 나폴레옹이 대패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프랑스 안팎의 나폴레옹 반대파가 기세등등하고, 나폴레옹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피난할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몇 시간 후 역전소식에 극적으로 처지가 뒤바뀌었던 것입니다. <토스카>처럼 극적인 상황은 없었을지라도, 덜 극적일 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는 기록은 여럿 전하고 있으며, 아마 기록에 남지 않았던 사례도 수없이 많았겠지요.

 

<토스카> 시점에서 토스카 세계의 기득권층은 나폴레옹 반대파에 속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을 이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급히 승전 기념 연회를 계획합니다. 토스카는 그 연회에 불려가게 되어, 원래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카바라도시에게 알리러 오지요. 이것이 <토스카>에서 본격적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발점이 되고요. 마렝고에서 나폴레옹군이 역전승한 이후, 그 축제는 당연히 원래 계획대로 열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취소되거나 내용이 정반대로 바뀌었겠지요. 비단 <토스카>의 승전연회뿐만 아니라,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로 일어나는 일은 많았을 것입니다. 전투 소식에서 으레 그렇듯이, 그리고 극적인 역전만큼 더욱 극적인 모습으로요.

 

 

 

<토스카>에 등장하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사건이 일어났던 시간대에 맞춰 공연했던 1976년 기획공연의 영상물입니다. 작중에서 오후에 일어난 장면은 오후에 공연하고, 새벽에 일어난 장면은 다음날 새벽에 공연하는 식으로 공연되었지요. 시간과 장소가 모두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는 작품이기에 가능했던 기획공연입니다. 토스카 역에 소프라노 라이나 카바이반스카, 카바라도시 역에 테너 플라치도 도밍고, 스카르피아 역에 셰릴 밀른즈입니다. 영어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