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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에서 귀천상혼은 절대적인가-예카테리나 1세의 맏딸 안나

아리에시아 2024. 8. 3. 21:15

귀천상혼에 대한 저번 포스팅과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

https://ariesia.tistory.com/337

 

신데렐라는 귀천상혼 규제를 받지 않았을 이유

신데렐라 이야기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요정이 여주인공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와 화려한 드레스를 선물해서, 신데렐라가 왕궁 무도회에 가게 되는 이야기는 낭만적이고 화려한 동화 같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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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설화에서 신데렐라는 귀천상혼 규제가 없는 나라의 설화라는 것을 다룬 저번 포스팅에서, 귀천상혼은 19세기 즈음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독일어권만의 법률에 가깝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독일어권이 아닌 나라에서는 국왕이 마음만 먹으면, 왕족보다 신분이 낮은 여인과 정식 결혼을 하는 것이 법률상으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지요.

 

그렇다면 독일어권에서는 귀천상혼이 무조건 절대적이었던 걸까요? 왕족이 왕족끼리 결혼해서, 결혼 후에 태어난 자녀가 아니면 왕족과 결혼할 자격이 절대 없다고 여겨졌을까요?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드물지만, 정치적인 이득이 있을 경우 예외가 있었습니다. 

 

우선 독일어권에서 귀천상혼해서 새로 만들어진 가문의 경우, 본가의 계승권은 없었지만,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군소 군주 정도의 신분을 인정받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이 경우 귀천상혼한 핏줄이어도, 명목상 군주 가문이라는 신분은 인정받아서 정식 결혼이 가능합니다.

 

영국의 조지 1세의 왕비였던 조피 도로테아가 저런 식으로, 부모가 귀천상혼했는데 어영부영 작은 땅의 통치 가문 자격은 얻는 데 성공해서, 독일어권의 주요 왕족과 정식 결혼할 수 있었던 사례입니다. 결혼은 그야말로 불행 그 자체였고, 조피 도로테아는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이혼당한 뒤, 죽을 때까지 성에 갇혀서 살아야만 했지만 말입니다.

 

귀천상혼에 엄격한 독일어권에서, 귀천상혼이 아닌 동등결혼에서 태어난 적자 신분이 아니어도, 왕족과 정식 결혼할 수 있었던 사례는 아주 드물지만 있기는 있습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의 딸인 안나 페트로브나가 특히 대표적인 사례일 것입니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1세의 맏딸, 안나 페트로브나의 초상화

 

표트르 대제는 신분이 아주 낮은 여성을 정부로 삼았고, 나중에는 정식 결혼해서 황후로 삼았습니다. 그 황후가 바로 러시아 역사에 예카테리나 1세로 이름을 남긴 여인입니다. 예카테리나 1세가 낳은 맏딸이 바로 안나 페트로브나로, 러시아에서는 정식 황녀 신분과 여대공 지위를 인정했기에 일반적으로 러시아식으로 안나 페트로브나 여대공이라고 불립니다. 

 

18세기 초에는 러시아에 귀천상혼 제도가 없었기에, 당시 러시아에서는 엄연히 정식 결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독일어권 기준에서는 귀천상혼 취급에,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신분이 낮다고 여길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안나는 무려 부모가 정식 결혼하기 전에 태어났습니다. 즉 사생아로 출생했던 것입니다!

 

 

동양권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뒤에 부모가 결혼하면, 아이는 적출이 됩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은 후궁이 나중에 왕비가 되면, 먼저 태어난 아이는 국왕의 적통 왕자 신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권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뒤 나중에 아무리 부모가 정식으로 결혼했어도, 태어날 때 사생아였다면 후계자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친형제라고 해도 첫째는 부모가 결혼하기 전에 태어났고, 둘째는 부모가 결혼한 뒤에 태어났다면, 둘째가 후계자 자격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히자, 안나 페트로브나는 귀천상혼이 엄격한 지역의 왕족과 결혼하게 됩니다. 홀슈타인 고토르프 공국을 다스리는 공작과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홀슈타인 고토르프 가문은 덴마크와 독일어권의 접경 지역에 속하는 땅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가문의 본가는 덴마크 쪽이지만 다스리는 영지는 독일어 문화 영향도 강했으며, 역사적 연원으로 따지면 독일 땅으로 여겨질 요소도 많은 곳이었습니다. 훗날 안나가 낳은 아들은 흔히 독일 출신 내지 독일인으로 불리게 되는데, 바로 그 이유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귀천상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홀슈타인 고토르프를 독일어권 땅으로 간주해야 할지, 통치 가문의 본가를 따라 덴마크 쪽 땅으로 간주해야 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됩니다. 덴마크 역시 귀천상혼 제도가 자리잡았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덴마크의 귀천상혼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일어권보다 더 엄격해서, 독일어권에서는 귀족끼리라면 공작 가문과 남작 가문의 남녀가 결혼해도 태어난 자녀가 후계자가 될 수 있었지만, 덴마크에서는 공작은 공작 가문 출신과 결혼해야만 태어난 자녀에게 공작 작위를 물려줄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안나의 결혼 당시 홀슈타인 고토르프 공작이었던 카를 프리드리히는 공작 영지를 사실상 빼앗긴 상태였고, 러시아의 힘을 빌려 공작 지위와 영지를 되찾기 위해서, 덴마크 및 독일 기준으로는 잘 쳐줘야 귀천상혼 출생에, 엄격히 따지면 사생아 대우를 받아야 할 안나와 결혼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안나를 러시아 황녀 신분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혼은 엄연한 정식 결혼으로 인정되었으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은 엄연한 후계자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 외아들이 바로 러시아 황제 표트르 3세입니다.

표트르 3세의 외아들인 파벨 1세는 여러 딸을 낳았으며, 파벨 1세의 딸들은 안나 페트로브나의 증손녀들입니다.

 

독일어권에서 귀천상혼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한 번 귀천상혼한 가문의 후손은 아무리 왕족과 결혼해서 대를 거듭해도 귀천상혼 출신 가문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서 영국의 메리 왕비, 테크의 메리는 어머니가 영국 공주였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귀천상혼 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귀천상혼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왕족과 결혼하기에는 신분이 애매하다고 여겨졌습니다. 테크의 메리가 영국 왕비 자리에 시집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시할머니가 되는 빅토리아 여왕이 메리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맏손자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빅토리아 여왕이 아니었다면, 메리는 영국 공주와 정식 결혼한 남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왕비는커녕 왕실 가문에 시집갈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할 신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 1세의 맏딸 안나의 후손이자 파벨 1세의 여러 딸들은 오스트리아 제국 등 귀천상혼 제도가 엄격한 독일어권으로 엄연히 러시아 황족 대우를 받으면서 시집갔으며, 아들을 낳은 경우 그 아들이 버젓이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안나 페트로브나의 사례는 귀천상혼이 아무리 엄격해도 일단 그 출생을 적당히 덮는 것이 여러 왕실에 동시에 이득일 경우에는, 귀천상혼 출신이나 나아가 사생아 출생조차도 엄연히 적통 황족 대우를 받으면서 결혼할 수 있으며, 그 후손들도 귀천상혼 문화권에서 황족 신분과 후계자 자격을 인정받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