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블로그 주제

고전소설 <인현왕후전>과 조선 궁중암투 창작물에 대한 생각

아리에시아 2022. 11. 5. 15:25

고전소설 <인현왕후전>은 <한중록>과 <계축일기>와 함께 3대 궁중문학 고전소설로 법칙처럼 꼽힐 정도로 오늘날에도 유명한 고전소설입니다. 장희빈 이야기가 사극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질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높았는데, 아마 <인현왕후전>의 인기와 지명도도 한 몫을 했을 겁니다.

 

<인현왕후전>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궁녀 장옥정은 중전이 되고 싶어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국왕 숙종의 총애를 얻어 아들을 낳고 희빈 자리에까지 올라 희빈 장씨가 됩니다. 현숙한 인현왕후를 악독한 후궁인 희빈 장씨가 모함해서 쫓아내고 희빈이 중전이 되지만, 사필귀정 권선징악 이야기처럼 모든 것이 밝혀지고 인현왕후는 다시 왕비로 복위하게 됩니다. 장씨는 다시 후궁 희빈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에게 원한을 가져 저주하자 인현왕후는 죽게 됩니다. 그리고 저주 사건이 밝혀지자 장씨는 사약을 받게 되지요. 이 모든 것이 사필귀정 그 자체로 묘사됩니다.

 

<인현왕후전>의 인물 묘사가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은 지금 상식처럼 꽤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장희빈도 마냥 악독한 모함꾼은 아니었고, 장희빈의 악행이라는 것이 교차검증 등으로 확인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인현왕후전>의 인현왕후가 이상적인 덕망의 화신처럼 그려진 것 때문에, 인현왕후가 장희빈을 경계했다는 것 정도의 기록으로도 성녀가 아니었다는 식의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현왕후전>의 묘사가 인현왕후는 서인 가문 출신이었고, 희빈 장씨는 남인 세력의 지지를 받았다는 이유로 당파싸움에서 서인 세력을 옹호하는 목적이 있다는 식의 해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통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사씨남정기 계열의 이야기에 실존인물을 끼워넣었을 뿐일 가능성도 꽤 높다고 생각하지만요.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실제로는 왕비마저 정치적 요소에 따라 바꿀 정도로 냉혹함 그 자체였던 숙종이 <인현왕후전>에서는 여자에 휘둘리고 여자에게 마구 속아넘어가는 캐릭터로 묘사된 것도 이해가 됩니다. 간악한 여자에게 속아서 본처를 쫓아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이야기에서, 남편 캐릭터는 대개 저렇기 때문인 거겠지요.

 

예를 들어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도,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만 보면 쫓겨날 만해서 쫓겨난 인물이었지만, 야사 등에서는 억울하게 모함받아 쫓겨났다는 식의 이야기가 꽤 많습니다. 그리고 그건 순전히 폐비 윤씨가 적장자를 낳은 본처였기 때문이지요. 하물며 쫓겨날 만한 잘못은 전혀 하지도 않은 인현왕후가 본처로서 억울하게 쫓겨났다면, <인현왕후전> 같은 이미지가 자생적으로 생기고도 남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본처가 쫓겨난 경우, 순전히 그 이유만으로 새 아내가 악녀 취급을 받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고요.

 

<인현왕후전>은 악독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를 대중적으로 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인기 고전소설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저 고전소설이 실제 조선 기록과는 다른 개념을 퍼뜨리는 역할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조선 시대 궁궐에서는 신분이 낮아도 국왕의 총애만 있으면 얼마든지 중전이 될 수 있으며, 아예 신분 낮은 여인이 그런 것을 꿈꾸기도 했다는 설정입니다.

 

실제 조선시대에는 저런 일은 말 그대로 어림도 없었습니다. 희빈 장씨 이전에도 후궁이 중전이 된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그 후궁들도 하나같이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여인들이었습니다. 양반 가문 출신이 아닌 중전은 희빈 장씨 한 명뿐이며, 그나마도 양반 신분만 아닐 뿐 신분으로 따지면 양반 가문 바로 다음의 중인이었고, 재산으로 따지면 조선에서 손꼽히는 거부 집안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중전의 자리란 국왕만큼이나 확고하고 권위 있는 자리였습니다. 숙종이 이례적으로 왕비를 여러 번 쫓아냈을 뿐, 폐비 윤씨처럼 국왕 근처에서 독약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된 정도의 사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신분 낮은 사람이 국왕의 총애만으로 멀쩡한 중전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조선 시대 기준으로는 역성혁명과 다름없는 망극하고 발칙한 발상으로 여겨졌을 겁니다.

 

또한 적자가 있다면 서자가 후계자가 되는 경우도 절대 있을 수 없습니다. 적자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제치고 왕이 된 것으로 유명한 광해군조차도 따져보면 여기에 해당됩니다. 광해군이 왕세자로 책봉될 당시 선조에게는 적자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창대군은 광해군이 왕세자가 되고도 한참 뒤에 태어났으며, 광해군은 왕세자 책봉 당시 중전에게 정식 입양되어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중전의 아들이자 적자 신분이었습니다.

 

후계자 암투란 극적으로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궁정을 창작물에서 왕비가 바뀔 수 있다거나, 왕비에게 적장자가 있어도 다른 왕자가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는 식의 묘사가 나온다면, 그게 왕비 자리와 후계자 자리가 확고부동하게 정해진 것보다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겁니다. 무조건 왕위계승서열대로만 후계자가 정해지는 유럽 왕실의 역사와, 군주가 적당한 명분이 있을 경우 마음만 먹으면 적장자가 아닌 다른 왕자를 후계자로 세울 수도 있었던 동양 왕실의 역사만 비교해도 저걸 느낄 수 있지요.

 

조선시대 궁궐 배경의 창작물에서 저런 묘사가 나온다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극적으로 재미를 끌어올릴 수는 있는 요소가 한 가지 더 추가되는 겁니다. 그리고 조선 궁궐에 대해 저럴 수도 있을 거라는 인식이 좀 있는데, 아마 <인현왕후전>의 인기도 한몫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현왕후전>이 유명해지면서 국왕이 신분 낮은 여인을 총애하면, 왕비를 내쫓고 그 여인을 얼마든지 새 중전으로 삼을 수 있는 것처렴 여겨지게 되었다고요. 이건 비단 숙종 시대 배경 창작물에만 일어나는 일만은 아닙니다. 월탄 박종화가 1959년 발표한 소설 <여인천하>는 중종 시대가 배경인데도 저런 식으로 묘사되는데, 독자들이 저런 묘사를 어색하게 느꼈다는 식의 말은 없다시피 합니다.

 

조선을 배경으로 삼은 창작물에서 저런 현상이 일어나게 하려면, 아마 신덕왕후가 낳은 이방석이 태조 이성계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되었다는 가상역사 설정이라도 넣어야 납득할 여지라도 생길 겁니다. 장성한 아들을 대여섯 낳은 본처의 아들을 서자 취급하면서, 다른 여자의 아들을 후계자로 세운 전례가 생겼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나마도 신덕왕후가 당시에는 경처로서 일부다처제의 정식 부인 대우를 받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궁색한 변명이 될 테고요.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저런 작위적인 설정의 가상역사라는 설정이라도 넣지 않는 한, 조선 시대에서 국왕의 총애 여부만으로 왕비를 쫓아내는 일도, 신분 낮은 여자를 함부로 왕비로 삼을 수 있다는 일도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