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 작품인 <나부코 Njabucco>는 베르디의 출세작이자, 작품 외적으로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3막 2장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의 합창;에 얽힌 이야기는, 웬만한 오페라 작품에 관련된 이야기보다 훨씬 많은 에피소드를 간직하고 있지요.
2013년 11월 17일, 이탈리아 모데나 시립극장 초청공연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었던 <나부코>입니다.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베르디의 첫번째 작품과 두 번째 작품은 각각 <산 보나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와 <하루 동안의 임금님>입니다. 첫번째 오페라 <오베르토>에, 당시 관객들은 데뷔작으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베르디는 이례적으로 곧바로 독점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고, 계약에 따라 배정된 <하루 동안의 임금님> 작곡에 착수했는데, 작곡하는 도중 아내와 아이가 모두 죽고 맙니다.
<하루 동안의 임금님>은 어쩌다보니 하루 동안 국왕 노릇을 하게 된 해프닝을 다룬 희극 오페라였습니다. 베르디는 가족이 모두 죽은 상황에서, 계약에 따라 희극 음악을 작곡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작품은 완성되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폐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처참한 결과였지요. 베르디는 이후 반세기가 흘러 마지막 오페라 작품 <팔스타프> 이전까지 희극 오페라를 다시는 작곡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하루 동안의 임금님>의 참담한 기억 때문에 의도적으로 희극 오페라를 피했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저는 베르디의 오페라 전곡 시리즈인 <투토 베르디 Tutto Verdi>의 영상으로 저 작품을 감상한 적이 있습니다. 제 감상을 정리하면, 진지한 장면에서는 꽤 괜찮을 선율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희극 오페라로서 좋은 평은 아니겠지요. 노래 가사와 내용으로 보면 모두들 쾌활하게 춤추는 장면인데, 음악은 무게감 있고 왠지 모르게 장중해서 춤추는 장면에서 축축 늘어지는 느낌을 준다던가, 이런 식의 장면이 속출합니다.
가족이 죽어서 슬픈데다가, 작품까지 참패한 베르디는 칩거합니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에서는 베르디와 세 작품을 계약한 상태였고, 극장에서는 또다른 오페라 대본을 보냅니다. 베르디의 재능을 아까워한 담당자가, 그 재능을 사장시킬 수는 없다면서 베르디를 격려했다는 이야기와 함께요. 그 대본이 바로 <나부코>였습니다.
베르디가 후일 회고한 바에 따르면, 베르디는 대본을 정독할 정신조차도 없어서 대본을 대충 넘겨보고 있었는데, 한 대목에서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 작품을 작곡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올랐다고 합니다. 작곡되지도 않은 노래의 가사가 가족이 모두 죽고 작품 공연마저도 참담하게 실패한 젊은 작곡가의 창작혼을 불타오르게 한 것이지요. 그 대목이 바로 일명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불리는,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입니다.
<나부코>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합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이탈리아식으로 나부코라고 불리는 바빌로니아의 왕은 히브리를 점령하고, 히브리인들은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히브리를 점령한 나부코 왕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장녀 아비가일레와 차녀 페네나였습니다. 장녀 아비가일레는 잔혹할 정도로 야심만만하고, 차녀 페네나는 선량한 아가씨로 묘사됩니다. 페네나는 히브리왕의 조카인 이스마엘레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아비가일레는 이스마엘레에게 구애하다가 이스마엘레가 페네나를 택하자 이스마엘레와 페네나를 파멸시킬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나부코> 중반에 아비가일레는 자신이 원래 노예 혈통이라는 것과, 나부코가 페네나를 후계자로 삼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나부코를 쳐서 나부코의 왕위를 빼앗습니다. 왕위를 잃은 나부코는 무력한 노인에 지나지 않았고, 아비가일레가 페네나에게 사형 명령을 내리고 페네나가 사형장에 끌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됩니다. 나부코는 이것이 히브리를 점령하고 히브리 신전을 파괴한 데 대한 벌이라고 생각해, 히브리의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신전을 다시 세우겠다고 맹세합니다. 그 순간 나부코의 부하와 함께 달려와 나부코를 복권하고, 복권된 나부코는 페나나를 구하고 히브리의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릅니다. 히브리인들도 히브리 신을 찬양하며 막을 내립니다. 아비가일레는 독약을 마신 뒤 자신의 악행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죽어가면서, 역시 히브리 신께 용서를 구하는 노래를 부르지요. 악인은 잘못을 뉘우치거나 스스로 파멸하고, 핍박받던 사람들은 보답받는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이 이야기는 실제 바빌로니아의 역사와는 딴판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베르디의 <나부코>를 감상하다 보면 그런 위화감은 어느새 멀리 날아가버립니다. 베르디의 극적인 음악이 너무나도 인상적이니까요. 베르디의 세 번째 작품이지만, 17번째 작품인 <리골레토> 이전의 열여섯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는 <나부코> 3막 2장의 첫장면에 나오는 합창곡입니다. 졸지에 타국의 노예 신세가 된 히브리인들이 "서러운 타향살이, 넋이라도 고향땅에 닿았으면' 이라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세 번째 동영상의 17분 30초경부터 시작되는 합창입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히브리 노예들이 합창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지만, 이 합창곡을 따로 떼어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고 부를 정도로 유명하지요.
앞서 말했듯이, 이 곡은 실의에 빠져 있던 베르디가 다시 펜을 들게 했던 곡입니다. 이 곡은 <나부코>가 발표되던 당시 이탈리아 정세와 맞물리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탈리아에서 이 장면이 공연될 때면, 청중들이 애국가라도 부르듯이 엄숙하게 제창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지요.
당시 이탈리아는 천 년 넘게 작은 도시국가로 갈라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희박한 정도가 아니라, 서로 적대하는 타국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라이벌전은 유명했는데, 이 도시는 서로를 치기 위해 유럽에서는 종교 이데올로기가 뿌리깊던 시절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 투르크 세력과 적극적으로 친교를 맺기까지 합니다. 상업 국가의 특성상 종교 이념보다 현실적 이익을 우선하는 문화도 있었지만, 그만큼 적대적 라이벌 의식이 강하기도 했지요. 베네치아와 제노바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도시국가가 저러했습니다.
유럽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지만, 막상 르네상스 시대를 다루는 글에 '이탈리아'라는 지명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피렌체, 로마, 만토바 등 문화예술을 후원하기로 유명한 도시는 많지만, 이탈리아라는 단어는 거의 안 나오지요. 도시국가 시대였고, 서로 다른 나라로 인식하던 시대였으니까요. 게다가 갖가지 경쟁도 엄청나게 치열했지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태동한 이유 중의 하나가, 각 도시들이 라이벌 의식 때문에 멋진 문화예술품을 갖추는 것을 과시하려고 경쟁이 붙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도시마다 잘해봐야 타국 취급이요, 못하면 적대적 라이벌로 여기며 지내다가, 19세기 들어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는 열망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이탈리아를 쪼개 통치하고 있는 외부국가 세력에서 독립하고, 통일된 이탈리아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을 일컬어 '리소르지멘토' 라고 합니다. 베르디의 초기 작품 중에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는 합창이 나오는 작품이 여럿 있는데, 이 경향이 리소르지멘토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타향살이 신세는 아니었지만, 이탈리아 통일을 꿈꾸던 이탈리아인들에게 있어 당시 이탈리아는 조국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중들은 조국 없는 신세를 슬퍼하는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에 감정이입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합창곡을 부르면서 이탈리아 통일의 열망을 표현하는 풍조까지 생겨나게 됩니다. 이 노래는 현재도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엄숙하기까지 할 정도로 의미 깊은 노래이며, 리소르지멘토를 표상하는 노래로 남아있습니다.
'오페라와 역사의 만남 > 오페라 밖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차르트의 징슈필과 요제프 2세의 국민극장 정책 (0) | 2014.07.19 |
---|---|
<피가로의 결혼> 3막의 순서와 모차르트의 의도 (0) | 2014.06.14 |
베르디의 <아이다> 초연이 연기된 진짜 이유, 19세기의 이집트와 보불전쟁 (0) | 2014.04.19 |
고난받다 구원받는 희생자의 이미지가 필요할 때, 베토벤의 <피델리오> (0) | 2014.03.29 |
바그너의 오페라와 나치 정권 (0) | 2014.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