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밖의 역사

<피가로의 결혼> 3막의 순서와 모차르트의 의도

아리에시아 2014. 6. 14. 11:52

<피가로의 결혼>은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 피가로와 하녀 수잔나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지만, 알마비바 백작은 수잔나를 욕심내는 데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해프닝을 다룬 작품입니다. 피가로, 수잔나, 알마비바 백작부인 로지나는 의기투합해 백작을 골탕먹이려고 계획을 짭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백작은 수잔나의 옷을 입은 백작부인을 수잔나로 알고 추파를 던지다가, 백작부인의 옷을 입은 수잔나와 피가로가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백작부인과 피가로를 한바탕 비난하다가, 피가로와 있던 사람이 수잔나라는 것이 알려지자 한바탕 창피를 당하지요. 게다가 바로 아까까지 추파를 던지던 하녀는 알고 보니 자기 아내고요. 백작은 백작부인에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하고, 백작부인은 용서해주겠다고 말하며, 등장인물 모두 밝은 합창을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피가로의 결혼> 3막은 슬슬 이야기가 고조되기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피가로의 결혼> 2막에서 백작부인과 수잔나는 하인 케루비노를 불러다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백작이 들어오자 케루비노는 도망칩니다. 그런데 케루비노가 도망가는 걸 정원사 안토니오가 목격했지요. 피가로는 자신이 수잔나와 이야기하다가 누가 들어오는 것 같아서 도망친 거라고 우기고, 안토니오는 자신이 목격한 사람은 피가로보다 훨씬 체형이 작았다고 말하지만, 피가로는 이러쿵저러쿵 착각할 법한 상황이었으니 착각한 거라고 우깁니다. 그 순간 하녀 마르첼리네가 들어와, 피가로가 옛날에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면 당장 자기와 결혼하자고 말하는군요. 마르첼리네의 연인인 바르톨로도 마르첼리네의 편을 들며 합세합니다. 바르톨로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로지나와 결혼하려던 사람인데, 피가로가 로지나와 사랑에 빠진 알마비바 백작을 맺어주자, 애꿎은 피가로에게 앙갚음하려는 것입니다. 졸지에 피가로가 수잔나 대신 다른 여자와 강제결혼하게 된 상황이 되었고, 재판에서 결정하기로 하면서 2막은 끝납니다.

 

3막에서 재판이 펼쳐지는데, 사실상 재판장 노릇을 하는 백작은 피가로가 당장 돈을 갚지 않으면 마르첼리네와 결혼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게 합니다. 그러자 피가로는 부모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말로 버팁니다. 피가로는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져 고아가 되었고, 그 부모를 찾아 결혼허락을 받아야만 판결대로 결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부모와 헤어졌는지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웬걸, 마르첼리네가 옛날에 잃어버렸던 마르첼리네의 아이와 특징이 일치한다네요! 피가로는 헤어졌던 부모와 재회했고, 마르첼리네와 피가로의 결혼 이야기는 당연히 취소되었습니다. 피가로, 마르첼리네, 마르첼리네의 연인이자 피가로의 친아버지인 바르톨로는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합니다. 그 시점에서 들어온 수잔나가 그새 마르첼리네와 결혼해 해로하는 사이가 되었냐면서 화를 내고, 그 장면을 본 마르첼리네와 바르톨로는 아들에게 손찌검했다고 화를 내기....는 커녕, "며느리가 우리 아들을 사랑하니, 다른 여자와 있는 걸 보고 질투도 하는구나~"라고 흐뭇해합니다. 백작이 피가로를 골탕먹이려던 계획은, 피가로의 가족을 찾아주고 수잔나와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면서 끝나지요.

 

그런데, 3막의 순서는 공연에 따라 바뀔 때가 많습니다.

 

 

3막에서 백작은 피가로를 골탕먹이고 수잔나를 차지하기 위해, 피가로가 마르첼리네와 결혼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릴 참입니다. 수잔나가 피가로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우리가 이긴 셈이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벌써 이긴 셈이라고? Hai già vinta la causa

? " 아리아를 부르며 미심쩍어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피가로를 곤란하게 만들리가 다짐하며 재판에 나가지요.

 

재판이 펼쳐지지만,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돈을 갚지 않았다는 핑계로 피가로와 결혼하려던 마르첼리네가, 알고 보니 피가로의 친어머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재판은 마무리됩니다.

 

한편으로 2막에서 도망쳤던 케루비노의 장면이 잠깐 나오지요. 케루비노와 친한 하녀인 바르바리나는 도망치다가 엉망이 된 케루비노를 돌봐주고 있습니다. 케루비노는 자기가 백작 눈에 띄면 경을 치게 될 거라고 말하지요. 바르바리나는 케루비노가 여장해 백작부인에게 꽃을 드리는 아가씨 무리에 섞이면 될 거라면서, 여장하자고 합니다. 3막 마지막에서 케루비노는 실제로 바르바리나의 말대로 여장해, 백작부인에게 꽃을 바치지요. 꽤 예쁘장한 여자아이의 얼굴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케루비노라는 걸 알게 되자, 다들 한바탕 웃고는 케루비노를 어영부영 용서해주게 됩니다.

 

백작이 하녀를 빼앗겠다고 하인을 골탕먹이려 할 동안, 백작부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방에서 하염없이 소박맞은 신세를 한탄하고만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절은 가고 Dove sono" 를 부르면서요. 알마비바 백작이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행복하게 결혼하던 옛 시절을 떠올리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변해버렸지요.

 

한편 정원사 안토니오는 백작을 만나, 2막에서 자신이 봤던 사람은 케루비노가 분명하다고 다시금 말합니다. 백작은 케루비노를 찾아 처분을 내려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지요. 이 다음에 <쇼생크 탈출>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하고, <편지의 이중창>이라고 불리는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Che soave zeffiretto>가 나옵니다. 수잔나가 백작에게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써서 백작을 불러낸 뒤, 수잔나의 옷을 입고 수잔나로 변장한 백작부인이 그 자리에 나가려고 준비하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영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백작부인에게 꽃을 가져다주는 행사를 합니다. 여장한 케루비노도 섞여서 백작부인에게 꽃을 바치지요. 백작은 케루비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케루비노를 당장 잡아들이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여장한 모습을 보고 유쾌하게 웃은 덕에 어영부영 넘어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바탕 합창을 부르면서 3막이 끝납니다. 4막에서는 수잔나로 변장한 백작부인과 백작부인으로 변장한 수잔나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면서, 수잔나를 빼앗으려던 백작의 계획이 실패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요. <피가로의 결혼>이 처음으로 공연된 이후, 2백여 년이 흐르는 동안 항상 이 순서대로 공연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백작이 '벌써 이긴 셈이라고'를 부른 뒤 바르바리나와 케루비노의 장면이 나오고, 백작부인이 남편의 사랑을 잃은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이 나온 뒤에야, 재판 장면이 나오도록 배치한 공연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백작이 등장하자마자 재판이 벌어졌는데, 바뀐 버전에 따르면 이런저런 일이 한참 일어난 뒤에야 재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재판이 끝난 뒤부터는 안토니오와 백작이 대화를 하고, 편지의 이중창이 나오는 등 현재와 동일한 순서대로 공연하고요.

 


https://youtu.be/hQ9iCQWfXik

2016년 10월 1일 추가: <피가로의 결혼> 공연 동영상으로,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1차 영산오페라페스티벌 상연작입니다. 이 공연에서는 3막을 모차르트 시절 초연의 장면 순서대로 상연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 3막 순서가 이렇게 바뀐 것은, 시대연주가 선을 보인 이후입니다. 시대연주는 옛 악기로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관습을 복원해 연주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시대연주자들은 <피가로의 결혼>이 초연 직전 모차르트의 의도와 무관하게 순서 배열이 바뀌었다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초연 때 정원사인 안토니오와 피가로의 친아버지 되는 바르톨로를 한 사람이 맡아 1인 1역을 했는데, 때문에 두 명이 나오는 장면을 연달아 배치할 수 없어서, 분장을 교체할 시간을 벌기 위해 막판에 순서를 바꿨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명 "바뀐 순서"가 극적 흐름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이 하나입니다. 다른 사건이 한참 벌어지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고조시킨 뒤에, 재판이 벌어지며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측면도 있고요. 특히 통상적인 버전에서는 이미 재판이 끝나 피가로가 승리(?)한 뒤에 백작부인이 난데없이 신세한탄을 하게 되는데, 바뀐 버전에서는 백작부인이 신세한탄을 하면서 나중에 백작이 재판에서 어떻게 나올지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차르트 당시의 공연문화에서는 저런 이유 때문에 작품의 순서를 바꾸는 일이 굉장히 흔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중시하고, 원래 형태를 변형하지 않고 공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현대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인데, 모차르트 시대에는 저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정해진 순서대로 공연하면 번거롭답시고, 순서를 멋대로 바꿔서 공연하는 일이 상당히 흔했습니다. 하기야 그 시대에는 인기있는 가수가 기교음을 잔뜩 넣어 원곡과 다른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은 부지기수요, 다른 작곡가의 음악으로 멋대로 바꿔 무대에서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 중에서는 부인 콘스탄체의 언니가 저렇게 자의로 바꿔 부를 노래를 작곡해달라고 해서 작곡한 음악도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첫 정식계약 오페라 작품인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가수들이 모차르트가 작곡한 음악만을 공연한 것을 굉장히 감격해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는데, 저런 환경에서 연유하지요.

 

만약 시대연주자의 견해가 사실이라면, 1인 2역을 맡은 배역이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작곡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줄거리 순서가 뒤바뀌고, 그것이 자리잡아 수백년간 이어져온 셈이 됩니다. 오페라 밖의 상황이 오페라 작품에 오랫동안, 어쩌면 언제까지나 영향을 미쳤을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되살린 것 역시 시대연주라는, 오페라 외적인 풍조 떄문이 되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