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오는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작품이자, 베토벤이 왜 오페라 분야에서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취향이란 다양한 것이니, 오페라 중 <피델리오>를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피델리오>가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겠다는 쪽에 더 가깝겠네요. 독일어 오페라의 초창기 수작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는 꽤 높은 편이지만요.
<피델리오>는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플로레스탄이 돈 피차로라는 악당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오히려 쥐도 새도 모르게 억울하게 투옥당하자, 플로레스탄의 아내인 레오노레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편이 갇힌 감옥에 잠입합니다. 제목의 <피델리오>는 바로 레오노레가 남장할 때 쓰는 이름으로, 레오노레는 남장해 피델리오라는 가명으로 감옥의 간수 조수로 취직했습니다. 간수는 성실한 청년 피델리오를 신뢰하고, 간수의 딸 마르첼리네가 피델리오를 연모하는 것을 비롯해, 피델리오/레오노레는 감옥의 사람들의 호의를 얻고 있지요.
한편 플로레스탄을 가두었던 악역 피차로는 암행어사와 비슷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는 특사가 파견된다는 말을 듣자, 자신의 악행이 드러날까봐 플로레스탄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고는 간수장 로코를 플로레스탄 살해에 끌어들이려 하고, 레오노레/피델리오는 적당히 구실을 만들어 그 자리에 동참하게 되지요. 그리고 피차로가 플로레스탄을 죽이려 하는 순간, 자신이 그의 아내라고 밝힙니다. 피차로가 "여자였어? 게다가 이 자의 아내였다고?" 라며 황망해서 멍하니 있는 사이, 특사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특사가 피차로를 체포하고, 플로레스탄은 풀려나며 끝납니다.
줄거리가 정말로 이렇습니다. 그냥 이렇게 끝이예요. 갈등을 빚거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대목이 전무합니다. 웬만한 경향극도 이보다는 재미있을 거예요. 심지어 피차로의 악행이 무엇이었는지도 정확히 안 나옵니다. 피차로가 악당으로서 아리아를 부르는 대목이 있기는 한데, 가사를 보면 "난 악당이니까 플로레스탄을 죽이러 가야지~" 쯤 되는 내용입니다. 평면적 악당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음악도 좋지만, 극음악으로서의 배분은 영 어정쩡합니다. 줄거리로 놓고 보면 통째로 빼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부분에 손꼽히는 훌륭한 음악이 들어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상황도 속출해요. 대사 몇 줄로 처리하거나 통째로 삭제해도 무방한 대목에, 정작 극적으로 중요한 대목보다 훨씬 좋은 음악이 들어가 있는 거지요. 그래서 음악에 집중해 감상하다 보면,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장면에 집중하고, 막상 극적으로 중요한 장면은 설렁설렁 넘어가게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캐릭터의 조합에서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전형적 캐릭터를 서로 엮어 드라마를 만드는데, 따로 떼어놓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캐릭터인데 합쳐 놓으면 전체적인 조망에서 삐끗하는 부분이 여럿 보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간수의 딸인 마르첼리네입니다. 마르첼리네는 피델리오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피델리오'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는 아리아까지 부르지요. 마르첼리네의 아리아는 청순하고 순수한 아가씨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청순하게 묘사될수록, 피델리오/레오노레의 결벽한 캐릭터성에 흠집이 가게 됩니다. "순수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는 청순한 아가씨에게, 결혼할 수도 없으면서 희망고문하는 캐릭터'가 되어버리거든요. 그나마 피델리오/레오노레가 먼저 유혹한 것은 아닙니다만, 자길 사랑하는 걸 뻔히 알면서 아무 이야기도 안 했다는 게 바뀌지는 않아요. 여자라는 걸 밝힐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여자라고 고백할 것까지도 없이, 이미 결혼했다고만 해도 마르첼리네가 피델리오와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은 접었을 테니까요. 이미 결혼했다는 건 거짓말도 아니니까, 결벽한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고요.
마르첼리네가 차라리 경박하고 남자 유혹할 생각만 하는 캐릭터였다면, 마르첼리네가 자기가 일방적으로 반한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헛꿈 꾸는 대목이 별 문제가 안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악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덕적으로는 흠결 없는 인간으로 묘사되는 <피델리오>에서는 그럴 수도 없었겠지요. 음악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마르첼리네에게 작곡된 음악은 순진무구하고 청순한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좋은 음악이라서, 그 음악을 버리기도 아까웠겠지만요.
마르첼리네의 아리아, "당신과 결혼했다면, 당신을 남편이라 부를 텐데 O wär ich schon mit dir vereint"입니다. 피델리오를 사랑하는 마르첼리네가 피델리오와 행복하고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을 하기를 꿈꾸는, 순박한 노래이지요. 노래는 청순하고 아리따워서 좋은데.... 이 노래가 아무 것도 모르고, 남자 행세하는 여주인공과 결혼을 열망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걸 상기하면 감상이 미묘해집니다. 이런 순박하고 지고지순한 아가씨에게, 여주인공이 본의 아니게 희망고문을 하는 구도가 되어버리니까요. 오페라 마지막 장면에서 다들 레오노레/피델리오가 훌륭한 아내라고 칭송하는 합창을 부를 때, 마르첼리네 혼자 절망하는 장면도 있는데, 정말 안쓰럽습니다.
영상의 가수는 루치아 포프입니다. 자막은 없습니다.
위 아리아의 독일어-한국어 가사 대역입니다. 대본 출처는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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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개정을 거듭하면서 오페라 측면을 보강한 것이 이 정도입니다. <피델리오> 초연이 실패했던 데에는, 오페라에 극적 재미가 전무하다는 점도 아마 한몫했을 거예요. 물론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나폴레옹 전쟁 때 나폴레옹이 점령했던 독일권 지역에서 첫 공연되었다는 혼란스러운 배경이었겠지만요. 프랑스군이 독일 지역을 점령한 상황에서, 독일어로 공연되는 오페라를 보러 극장을 찾을 수 있는 관객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하지만 베토벤의 <피델리오>는, 주로 공연되는 인기 레퍼토리로 남았습니다. 작곡가 베토벤이 유명하기도 하고, 음악 자체의 완성도는 높으니까요. 치밀한 극적 구성을 원한다면 연극이나 다른 극작품을 보면 됩니다. 오페라는 음악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줄거리는 작품 감상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만 되어도 무방한 장르입니다. 적어도 인기 작품으로 남은 오페라 작품의 세계에서는 그렇습니다. <트리스탄 코드>라는 책에서는 이런 경향을 두고, 음악만은 좋지만 다른 모든 것은 형편없다는 평을 들은 작품은 살아남아도, 음악은 별로지만 다른 모든 것은 훌륭하다는 평을 들은 작품은 사장된다고 표현한 바 있지요.
그런데 <피델리오>의 인기에는 좀 독특한 측면이 있습니다. 고난스러운 시절일 때, 특히 외부세력 때문에 고생하고 있거나 사람들이 그리 여기는 장소에서 <피델리오>의 인기가 유난히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억울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피델리오>에 특히 감정이입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런 경향은 독일어권에서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피델리오>는 세 번이나 개정되어 네 가지의 버전이 있는데, 최종결정판인 네 번째 버전이 초연된 것은 1815년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독일 연방이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직후였지요. <피델리오>는 이 때의 공연에서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듯한 인기를 구가했는데, 이에 대해 당시 독일 관객들이 플로레스탄=독일, 피차로=나폴레옹으로 감정이입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피차로가 체포되고 플로레스탄이 풀려나는 대목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독일이 "해방"되었다는 주제를 읽어냈다는 거였지요.
그 후에도 전쟁이 일어나거나 국가적 고난에 직면했을 때에는,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피델리오>의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겪는 고결한 피해자가 마침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는, 막연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음악과 어우러져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관객으로 들어왔을 때, 특히 더 그러했던 것이지요. 주인공의 처지에 감정이입하고, 주인공이 해방되는 결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요.
막상 베토벤은 <피델리오>를 말 그대로 '억울하게 고통받는 주인공이 정의롭게 구원받다'라는 메시지로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정치적으로 해석한 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관객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19세기 초 <피델리오>가 처음 상연되었을 때에는, 이 이야기에서 "혁명이랍시고 귀족이 핍박받다가, 결국 귀족을 핍박하던 자는 파멸하고 귀족은 구원받는" 스토리로 감정이입한 귀족 관객도 꽤 많았다고 합니다. 막상 오페라에서는 악역이 고관 귀족으로 나오고, 전체적인 극 구성은 귀족 악역이 핍박하던 신실한 서민이 마침내 구원받는 줄거리인데다, 베토벤은 휴머니즘을 추구하며 작곡했는데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내어 재조립해버린 겁니다. 그나마 바그너의 작품처럼, 대놓고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악용된 사례는 전무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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