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가 로코코 시대 기준으로는, 화려함이 덜하고 나름대로 소박한 디자인의 옷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꽤 유명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좋아한 옷은 당시 기준으로는, 목가적이라는 말을 듣던 스타일이 맞기는 합니다. 특히 로코코 시대의 드레스는 레이스, 리본 등이 굉장히 화려하게 장식된 스타일이기에, 상대적으로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다만 저 글만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마냥 소박한 옷을 좋아했다고만 하기에는 여러 모로 애매합니다.
18세기 로코코 시대에 목가적인 분위기란, 오늘날 떠올리는 목가적인 분위기와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대신 목가적인 별장에 가까운 트리아농 궁전을 좋아했다는 것이, 사치스러움을 싫어했다는 의미일지언정 현대적 의미에서 소박했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말입니다.
우선, 로코코 시대에 꽤 유행했던 파스토랄이라는 테마부터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파스토랄이란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목가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림 속에서는 전원을 배경으로 양치기와 양치기 소녀 등이 등장하고는 합니다. 로코코 시대의 향략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화가인 부셰도 파스토랄 주제의 작품을 많이 남겼지요.
그런데 그 시절, 양치기와 양치기 소녀를 그린 그림이란... 대개 이런 식입니다.
부셰의 작품으로, 부셰가 그린 양치기와 양치기 소녀가 등장하는 목가적 그림은 하나같이 이런 분위기입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실크 재질 의상에, 공을 많이 들인 옷입니다. 궁정 드레스에 비해 화려한 레이스나 리본 등의 장식은 적지만, 단순한 디자인일지언정 빈말로도 소박한 옷이라는 말은 안 나올 그림입니다.
이쯤 되면 실제 양치기는 저렇게 느긋하게 놀 수 있는 여유 같은 게 없다는 고증은, 따질 기력도 안 날 지경입니다.
로코코 시대에 양치기 소녀라는 테마는 목가적인 테마로 꽤 유행했고, 당시 귀부인들이 양치기 소녀풍 드레스를 자주 입거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입은 드레스도 거의 저런 식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른바 시골 처녀풍 드레스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좋아한 스타일의 드레스가, 당시에는 그런 이름으로 불리던 옷인 것도 맞기는 합니다.
로브 아 라 폴로네이즈. 번역하면 폴란드 시골 아가씨풍 스타일의 드레스 정도가 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저런 스타일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폴란드 시골 아가씨풍 드레스란, 이런 식의 옷입니다.
로코코 시대 폴로네이즈 스타일의 드레스를 보면, 시골 아가씨가 저런 화려한 실크 옷을 입을 리가 있냐는 말이, 저절로 나올 디자인이 쏟아집니다.
시골 아가씨풍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계기는 이렇습니다. 시골 아가씨들이 일을 하기 위해서 긴 치마를 입을 때 옷자락을 걷는다는데, 그 이야기처럼 로코코 드레스에서 옷자락을 걷어올린 스타일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서양 의상에서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발목조차 노출하는 일이 드물 정도로, 발목 노출을 금기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폴로네이즈 드레스는 살짝 발목이 드러나는 패션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서양 복식사에서 의미를 가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시골 아가씨풍의 디자인이라서, 상대적으로 소박하다는 말을 하기에는 여러 모로 애매한 옷이지요.
넓게 보면 새삼스럽지도 않은 것이, 당시 부유층에서 유행한 목가적 스타일이란 목가적인 시골풍에 대해 딱 저 정도로만 얄팍한 이미지 차원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트리아농 궁전에서 젖 짜는 소녀 흉내를 냈지만, 그 때 최고급 도자기로 젖을 짜는 흉내를 냈던 것처럼요.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가적인 스타일을 좋아한 것 자체는 맞습니다.
당시 기준에서 소박하고 값싼 옷이 아니었을 뿐이지요.
이게 특히 잘 드러나는 게, 일명 슈미즈 드레스 초상화입니다. 비제 르브룅이 그린 유명한 초상화로도 남아 있는 모습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저런 식의 소박한 옷을 좋아했지만, 당시 귀족들은 오히려 왕비로서 체통이 없어 보여서 비난했다는 식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요.
18세기 프랑스 궁정은 화려한 사치를 하는 것이 상류층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처럼 여기는 문화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드레스 초상화가 비난받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준에서는 그저 소박한 옷을 입었다고 오히려 권위 없어 보인다는 비난을 받은 것처럼만 보입니다.
당시에는 저런 슈미즈 드레스는 잠옷이나 속옷에나 쓰이던 디자인이어서 논란이 되었다는 배경지식을 더해도, 그런 느낌이 딱히 덜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저 초상화로 비난받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저 드레스는 당시 산업혁명 직후 영국에서 만들기 시작한 공장제 면직물인 모슬린으로 만들었습니다. 모슬린은 가볍고 얇아서, 저런 단순하고 목가적인 디자인의 옷을 만들기에 적합했습니다. 그래서 저런 드레스를 영국풍이라는 식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저 모슬린 드레스는 프랑스제 옷감이 아니라, 영국에서 수입한 영국제 옷감으로 만든 옷이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제 옷감으로 옷을 만들었다는 것은,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 왕비로서 무책임한 일로 비난받을 일로 여겨졌습니다. 영국에서 수입한 모슬린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서 왕궁에 납품하는 프랑스제 실크보다 가격이 싼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현대인의 눈에는 소박함과 검소함 그 자체인 옷인데, 저 옷 때문에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비난받은 데에는 그런 명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대 비판받은 점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만은 현대인 감성에도 평판이 안 좋은 게 이해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한 나라의 국모가 되도록 국산품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니까요. 왕비의 드레스가 상류층에서 유행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당시 기준에서 소박한 스타일의 옷을 좋아했고, 사치스러운 디자인은 오히려 싫어했는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소박한 사람이었는가?
비용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하기에 애매합니다. 당대 기준에서도, 현대 감성에서도요.
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해 보이는 스타일이 오히려 돈은 더 많이 드는 현상은, 그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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