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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품으로 오인받았던 진품들

아리에시아 2019. 4. 6. 11:54

우선 미술계에서 이른바 위조 범죄와 모사품의 경계는 오랫동안 희미했다는 것부터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유럽 미술계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요, 대가의 작품을 모작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대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거나,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 연습쯤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특히 19세기 이전에만 해도 미술계에서는 기술적, 기교적인 측면을 굉장히 중시했기에, 모사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실력의 척도 같은 성격도 띠고 있었지요.


또한 그 시대에는 사진이 없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미술품이 소장된 곳 외에 다른 곳에서 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란, 판화로 복제한 인쇄물을 보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작품을 활발하게 모사해서 여기저기에서 소장했습니다.


그래서 대가의 원작은 사라졌는데, 다른 사람이 그린 모사품이 남아 있어서 사라진 작품의 흔적이나마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http://blog.daum.net/ariesia/266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며 독창적인 작품세계가 중시되고, 무엇보다 미술품이 값비싼 수집품이 되자, 위작과 모사품의 경계는 예전과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옛 시절에 만들어진 모사품은 위작 취급이 아니라, 나름대로 가치 있는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대가의 작품으로 여겨지던 작품이 20세기 이후 미술범죄로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던 시대, 모사품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이따금 일어나고는 했습니다. 요컨대 후대 화가의 모사품이라 여겨지던 작품이, 대가의 진품이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사례지요.



가장 극적인 사례라면 역시 <모나리자>의 작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세상의 구세주(살바토르 문디 Salvator Mundi>겠지요.

이 작품은 청교도 혁명 내지 영국 내전으로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수집한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찰스 1세가 내전으로 처형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1900년 영국 귀족 수집가의 구매목록에서 수백년만에 다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이 작품은 그저 모사품으로만 여겨졌습니다. 어설픈 복원이 이런 오인에 한몫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최근에 후대에 덧칠한 물감을 걷어내고 복원하기 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얼굴 쪽 묘사는 딱딱하고 경직되다 못해 조야한 인상까지 줍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할 정도지요. 이런 특징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필치를 복원한 이후의 사진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지요. <세상의 구세주>는 1958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제자인 볼트라피오의 그림으로 추정된다며, 125달러에 판매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최신 과학 기술 연구 결과,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진품으로 증명됩니다. 가치는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듯이 치솟아올랐고, 2019년 현재 4억 달러를 넘은 가격에 매매된 유일한 미술품이자 가장 비싼 미술품으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는 <로스트 페인팅>이라는 책에서 한 권 분량을 통틀어 다루었을 정도로 극적입니다. 이 작품은 1930년경 수도회의 식당에 걸려 있다는 기록 후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데, 카라바조의 사라진 작품을 모사한 후대의 모사품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역시 최첨단 과학 기술을 동원한 연구에서 카라바조의 진작,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바로 그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지지요. 




<로스트 페인팅>에서는 이 장면을 극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혼토르스트의 작품이라 여기던 관계자가 그 작품이 혼토르스트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을 듣자, 낭패라는 생각부터 들었다지요. 혼토르스트의 작품이 아니라는 말에, 혼토르스트다 못한 화가의 작품이라 더 격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겁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그 반대였던 거지요.


진품으로 여기던 작품이 위작이었다는 것 못지 않게, 진품이 아니라고 여겨지던 작품이 진품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는 이야기도 극적이고 흥미롭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새로운 검증 방법이 나타날수록, 예전에는 진작인지 아닌지 애매하던 작품의 진위가 늦게나마 밝혀지는 사례는 앞으로도 나타나겠지요. 그 중에는 또다시 새로운 대가의 진작이 나타나는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