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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어정쩡하게 번역한 오페라 아리아 이야기

아리에시아 2018. 11. 3. 11:58

푸치니의 <일 트리티코>의 아리아,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제목만 보면 오해하기 십상인 노래입니다.

http://blog.daum.net/ariesia/91


제목만 보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노래일 것 같고, 노래의 선율도 사랑 고백이라도 하듯이 감미롭습니다. 하지만 막상 노래가사는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그이와 결혼하고 싶어요.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이며, 아버지가 끝내 거절한다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는 대목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 가사만 보면, 결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마치 결혼 허락을 해 달라는 이야기로만 보이기 십상이지요. 적어도 전 그랬습니다. 오페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가사만 봤을 때, 아버지에게 딸이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노래인 줄 알았어요. 감미롭고 아름다운 선율만 들으면 그런 노래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하지만 앞선 포스트에서도 썼듯이, 저 노래의 원래 의미는 아버지더러 딸이 자기 애인 친척의 유언장을 위조해 달라고 부탁하는 노래입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리아 첫줄은 제대로 번역했고, 가사도 제대로 번역했는데도 이런 오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제목과 노래 가사만 놓고 보면 오해할 수밖에 없을 노래지요.


그런데 가사 첫줄을 제대로 번역하기만 해도 이런 오해 사태를 막을 수 있는데, 노래 제목 및 가사 첫줄을 제대로 번역하지 않는 사례가 은근히 있습니다. 제가 겪고 알고 있는 사례만 해도 포스트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는 되네요.


제목을 아예 오역하다시피 한 사례도 여럿 있는데, 이게 차라리 나아 보일 정도로 어정쩡하게 번역한 사례들입니다.

제목을 아예 오역하다시피 한 아리아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 역시 <투란토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겠지요.



원제인 'Nessun Dorma'는 직역하면 '아무도 잠들지 못하리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한국에서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번역으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지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평범해 보이는 원제 직역보다 훨씬 시적이고 멋져 보인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습니다. 노래 의미를 굳이 따지자면 아무도 잠들지 못할 것이고, 공주도 같이 잠자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라서, 오역이라고만 하기에는 애매하기는 합니다. 그게 다음에 말할 사례들에 비하면,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번역이 그나마 약과로 보인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1> 구노의 <로미오의 줄리엣>, 줄리엣의 왈츠- 나는 꿈 속에서 살고 싶어요.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오페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서 줄리엣이 초반에 '나는 꿈 속에서 살고 싶어요 Ah! Je veux vivre dans ce rêve' 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꽃같은 청춘을 더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내용의 노래로, 줄리엣의 왈츠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하며, 콘서트 등에서 종종 불리며 사랑받는 노래지요.

...왈츠는 19세기에 등장했으며,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왈츠가 없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갑시다. 그런 고증을 오페라에서는 별로 따지지 않는걸요. 여기서의 왈츠라는 별명은 경쾌한 음악이라는 뜻의 별칭에 가깝기도 하고요.


이 아리아의 가사 첫줄을 직역하면 '나는 살고 싶어라, 나를 취하게 만든 이 꿈 속에서'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전 이 노래를 앞부분만 번역해서, '나는 살고 싶어라'로 번역한 곳을 본 적 있습니다.....

정말 황당했지요. 제목만 보면 살려달라고 처절하게 말하는 노래라도 될 것 같습니다. 원제를 알고 있어서 황당했지만, 전혀 모르고 저 제목 번역과 노래만 들었어도 역시 황당했을 것 같습니다. 살고 싶다는 제목의 노래인데 저렇게 경쾌하고 아름답다니.



소프라노 장윤성이 '줄리엣의 왈츠'를 부릅니다. 화희오페라단 3회 평화음악회에서의 공연으로,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2>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사랑을 주소서'


'나는 살고 싶어라'라는 번역은 그나마 대중적으로 퍼지지라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저런 식으로 어정쩡하게 끊어서 오역이 된 번역이 대중적으로 정착된 사례가 있습니다.

로 백작부인이 부르는 '사랑을 주소서 Porgi amor' 입니다. 이 부분의 가사를 직역하면 '사랑이여, 위안을 주소서' 혹은 '사랑의 신이시여, 위안을 주소서' 정도가 됩니다. 남편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지만 남편의 사랑이 어느새 식어버린 것을 한탄하는 노래지요. 그런데 위안이라는 단어가 빠지는 바람에, 사랑받고 싶다는 노래가 되어버렸습니다.....



소프라노 임청화가 30주년 기념 독창회에서 '사랑의 신이여, 위안을 주소서'를 부릅니다.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영상에서는 아리아 제목이 '신이여 사랑을 주오'라고 되어 있지만,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대중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오역 번역입니다.




앞으로는 매달 첫번째 토요일에는 글을 올려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