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만큼 원본이라는 것이 중시되는 분야도 드물 겁니다. 발상이나 텍스트가 중요한 영역이라면, 원전의 내용이 훼손되지 않는 한 사본도 인정받을 수 있지요. 문학, 논문 등등. 친필 원고나 첫 출판본이 남아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원작의 글을 그대로 담고 있다면 사본으로도 충분한 겁니다.
하지만 미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작품을 그대로 옮긴 사진마저도, 사진으로만 보는 것은 원작의 위광을 손상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풍조마저 있으니까요. 게다가 미술은 발상, 창조력 등의 오리지널리티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은 개인 작품마저도 홀대받는 경향마저 있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의 작품을 그대로 보고 따라 그린 모사화란, 습작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사가 그렇듯이, 미술사도 걸작으로 칭송받는 고전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하지만 아주 드물게, 모사화가 미술사에서 언급되는 경우도 있기는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예외없이 이런 부류에 속하지요. 원작이 사라져서, 모사화로 대강의 윤곽만 살펴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모사화 중에서 특히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라면, 역시 루벤스의 <앙기아리 전투>를 우선 꼽게 되겠습니다.
앙기아리 전투 자체는 전쟁사나 역사에서 딱히 언급되는 사건은 아닙니다. 피렌체의 관점에서는 애향심을 불러일으키고,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낸 전투였지만, 유럽 역사는 고사하고 이탈리아 역사의 관점에서도 국지전 이상은 아니었으니까요. 어쩌면 이 전투는 전쟁사보다 미술사 쪽에서 훨씬 더 자주 언급되고 기억되는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앙기아리 전투를 소재로 벽화를 그렸다는 일화가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가 유난히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제로가 그 장소의 다른 벽에 카시나 전투를 소재로 한 다른 벽화를 그렸기 때문이지요. 르네상스 미술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중에서 무려 두 명이 같은 공간에 그림을 그리다니! 상상만 해도 엄청나게 멋진 기획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획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은 스케치 단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만,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물감을 사용했다가 물감이 흘러내리는 바람에 벽화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벽화도 얼마 후 중단되고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는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 앙기라이 전투 벽화의 전체적인 모습을 따로 그린 그림은 없습니다. 하지만 루벤스가 그린 모사도가 전해지고 있고, 이 모사도는 저 일화를 언급할 때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주 인용됩니다. 여담으로 루벤스는 <플랜더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명작을 그린 화가이기도 합니다. 바로크 미술의 대가로 역동적인 그림에 엄청나게 능했으며, 스케치에서도 그 필치가 전해오는 듯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카시나 전투>의 모사도도 일단은 있기는 합니다. 루벤스처럼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서 별로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루벤스의 <앙기아리 전투> 모사도를 언급할 때면 세트처럼 같이 언급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군인들이 목욕하다가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가서 싸워서 이겼다는 일화를 그린 그림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림보다 조각을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만, 역동적인 누드와 동세 표현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미켈란젤로에게 관심을 줄 만한 주제였을 듯합니다. 모사도만으로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을 정도입니다. 어차피 완성되지 못했고 벽화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 이제는 별로 의미가 없겠지만요.
모사도는 비단 사라진 작품들을 후대에 추론할 때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미술작품 중에는 후대에 이런저런 이유로 훼손된 작품이 많은데, 그런 작품을 후대에 연구할 때에도 훼손되기 전의 모사도는 많은 도움을 줍니다. 원작의 완성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훼손되기 전의 구도 등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미술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모사도라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모사도, 브뢰헬의 <영아 학살> 모사도,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대> 모사도 등을 들 수 있을 듯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누드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성당에 누드 그림은 상스럽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훗날 천자락 등을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덧그려져서 수정되었지요. 이 덧칠을 맡은 화가는 볼테라였는데, 볼테라에게는 기저귀 채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브라게토네'라는 별명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은 딱히 남기지 못했으며, <최후의 심판>에 천을 덧칠했다는 일화로만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화가 베누스티가 이 작품에 덧칠되기 전 누드 모습을 모사한 그림이 전해집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원작으로, 볼테라가 천을 덧칠한 상태입니다. 수백년간 이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했지요.
마르첼로 베누스티가 덧칠 전 <최후의 심판>을 모사한 작품입니다. 덧칠 전의 모습을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모사도입니다.
종교화를 세속적인 윤리 기준으로 검열하고 탄압한 사례로는, 브뢰헬의 <영아 학살>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무고한 자들의 학살>이라는 제목으로도 번역되는 작품입니다. 성경에서 헤롯 왕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갓난아이들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그린 그림입니다.
브뢰헬의 원작에는 병사들이 짐꾸러미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서 빼앗으려 하며, 사람들은 자루 같은 것을 얼싸안으며 슬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림만 보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수확물을 뺴앗으려 해서, 농민들이 빼앗기면 굶어 죽을 상황이라 저항하기라도 하는 걸까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처절해서, 뜬금 없게까지 느껴집니다.
이 다소 뜬금없는 상황은 모사도를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모사도는 소장처였던 빈 미술관에서 오랫동안 브뢰헬의 작품으로 여겨졌을 정도로, 다행스럽게도 원작의 필치를 잘 살려낸 그림이기도 합니다.
짐꾸러미 같이 보이던 것들은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뺴앗아 죽이는 모습이 너무 잔혹하다는 이유로 후대에 수정했다는 것이 거의 정설이며, 이 때 작품을 수정한 사람은 누구인지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그나마 최소한 덧칠만 한 수준이라 기술만 있다면 덧칠을 걷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복원하기에도 힘든 상태라는군요.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대>는 당대에는 혹평받은 작품이었습니다. http://blog.daum.net/ariesia/104
이 작품을 주문한 측에서는 작품에 대놓고 불쾌감을 표하는 수준이었고, 이후 렘브란트의 인기와 명성이 하락하는 계기로 작용하기까지 하지요. 그런 작품이니만큼 만들어진 뒤에도 수난을 겪었는데, 그림이 너무 크고 가장자리가 좀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가장자리를 잘라내버린 겁니다. 그것도 한쪽 가장자리만 큼직하게 잘라내는 바람에, 그림의 균형마저 깨져버렸습니다. 렘브란트가 정중앙으로 의도한 부분이 옆으로밀려나버린 것이지요. 만약 균형을 맞춘답시고 다른 쪽 가장자리까지 같은 폭으로 잘라냈다면, 그건 그것대로 렘브란트의 그림이 더욱 크게 훼손되는 비극이었겠지만 말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장자리를 잘라내기 전의 <야간순찰대>를 그린 모사도가 있기에, 렘브란트가 원래 의도했던 그림 구도를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야간순찰대>가 소장된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는 숫제 이 모사도를 렘브란트의 작품과 나란히 배치해서, 원작의 구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대> 원작입니다. 두꺼운 니스가 덧칠되고 변색되었기에, 원작과는 색감이 좀 달라진 상태의 사진입니다.
<야간순찰대> 가장자리가 잘리기 전 모습을 모사한 모사도입니다. 흰 선 부분이 바로 현재 남은 부분입니다. 렘브란트가 어떤 구도를 의도했는지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원본이 사라져 복사본으로나마 대체하는 경우는 많지만, 복사본이 원본을 대체할 수 없는 상황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조차도, 복사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일도 종종 있고요. 그리고 이런 일은 비단 미술사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조각조각 흩어진 파편으로 전체를 복원하는 일은 다른 분야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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