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예술/역사를 상기시킨 예술

괴테와 베토벤의 <에그몬트>와 에흐몬트 백작

아리에시아 2022. 4. 2. 13:54

1568년 오늘날의 벨기에 지역에서 에흐몬트 백작 라모랄 반 가베르가 죽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훗날 네덜란드 독립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봉기에 앞서다가, 봉기를 진압한 합스부르크 가문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이 블로그에서 오페라 <돈 카를로>와 함께 언급한 적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페라에서 주인공 돈 카를로와 친구 포사 후작은 네덜란드 독립전쟁을 정당한 민중봉기로 여기면서,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http://blog.daum.net/ariesia/25 

 

베르디의 <돈 카를로>, 에스파냐 종교재판소와 플랑드르 봉기

<돈 카를로> 3막에서는 종교재판 장면이 나옵니다. 종교재판소에서 불신자, 혹은 죄인이라고 판결난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화형시키지요. <돈 카를로>의 종교재판 장면은 광신적인 인민재판 그

ariesia.tistory.com

 

실존인물 에흐몬트 백작, 라모랄 반 가베르의 초상화입니다.

 

그리고 이백여년 후, 독일어권에서 배출한 세계적인 예술가 두 명이 에흐몬트의 투쟁과 생애에 대한 작품을 발표합니다.

괴테는 에흐몬트를 주인공으로 삼아 <에그몬트> 희곡을 발표하고, 베토벤이 괴테의 작품에 음악을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에흐몬트의 이름은 독일식인 에그몬트로 널리 알려지고, 그의 투쟁에 대해서도 같이 알려지게 됩니다.

괴테의 작품은 한국어로 번역된 판본이 거의 없어서인지, 훨씬 더 유명한 괴테의 다른 작품이 많아서인지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입니다만, 베토벤의 작품은 오늘날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접근성도 높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거장 예술가가 쓴 <에그몬트> 작품 속에서, 에그몬트는 압제에 용감하고 당당하게 맞서 투쟁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처형당할 때조차 당당하며, 숭고함 그 자체인 모습으로요.

 

괴테의 <에그몬트>에서 에그몬트는 오늘날 네덜란드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스페인을 위해 큰 공도 세운 인물입니다. 스페인에서 특별한 훈장 중 하나인 황금 양모 훈장을 받았을 정도이지요. 이 작품에서 중반 즈음까지만 해도 에그몬트는 스페인에 딱히 봉기를 일으킬 생각도 없어 보일 정도로, 스페인에서 도리에 맞게 처신하면 모두들 행복하고 평온해질 것이며, 스페인에서는 마땅히 그렇게 행동할 거라는 식의 믿음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스페인 측에서는 그런 에그몬트를 분쟁분자 취급하고 경계하면서 부당하게 탄압하며 감옥에 가두고, 황금 양모 훈장을 받은 사람을 증거도 없이 죄수 취급하면서 죽이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이 얼마나 폭압적으로 네덜란드를 다스리려 했는지 뚜렷하게 부각되고 강조됩니다.  

그리고 에그몬트는 그 상황에서 숭고하고 당당하게 맞서며, 마지막까지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할 말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베토벤의 <에그몬트>는 풀버전은 중간에 독일어 가곡이 있고 길이도 좀 길지만, 서곡만은 따로 연주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음악이기도 합니다.

 

 

2020년 한경아르떼 필하모닉에서 연주한 에그몬트입니다. 이정길 배우가 에그몬트 작품의 주요 장면 및 줄거리와 내용을 나레이션처럼 이야기하는 대목이 같이 있어서, 괴테의 원작을 모르는 사람도 베토벤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공연입니다.

 

네덜란드 독립운동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만은 뇌리에 남게 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에흐몬트라는 인물이 네덜란드 독립전쟁 때 목숨까지 바치면서 싸웠다는 것을,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알게 되도록 이끄는 작품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