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유명한 푸슈킨은 시, 소설 등 여러 분야의 문학작품을 남긴 러시아 작가입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1836년에 발표한 <대위의 딸>로, 푸슈킨의 소설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작품입니다.
<대위의 딸>의 주인공 그리뇨프는 귀족 집안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덜컥 군대 장교로 임명된 청년입니다. 딱히 거창한 포부나 인생계획 등은 없는 평범한 인물로, 무슨 일이 생기면 소시민 사고에서는 상식적일 행동으로 대처합니다. 그리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고지식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행동방식 자체는 공감가고 이해되지요.
<대위의 딸>에서 주인공 그리뇨프가 보인 행적은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뇨프는 장교에 임관되어 새 부임지로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주자 보답으로 털코트를 줍니다. 얼마 후 반란이 일어나 반란군에게 요새가 함락되는데, 그리뇨프는 처형되기 직전에 천운으로 풀려납니다. 반란군 수장이 예전에 그리뇨프가 길을 잃었을 때 도와주고, 그리뇨프가 보답으로 털코트를 준 그 행인이었으며, 털코트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뇨프를 풀어준 것입니다. 한편 그리뇨프는 반란군 점령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군인의 소명이라면서 사령부에 복귀하러 가고, 반란군이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고 풀어준 것을 보니 반란군과 내통한 것이 틀림없다는 식으로 모함을 받아도 자신은 결백하니 도망칠 이유가 없다면서 얌전히 재판을 기다립니다. 군사재판에 회부될 때조차, 자신은 결백하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행동을 하지 않지요. 주인공 혼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먼치킨 활극 같은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대위의 딸>은 실망스러운 작품일 겁니다. 주인공이야 당대 행동규범을 철저하게 따르며, 그 규범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돌발적인 자선을 베푸는 정도의 행동만 하는 것이지만요.
오히려 여주인공인 마리야, 애칭 마샤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일 정도지요. 그리뇨프 부임한 임지에 있던 대위의 딸인 마샤는 싹싹한 아가씨로,
그리뇨프는 활달한 마샤에게 반하고 마샤와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됩니다. 마샤는 그리뇨프가 군사재판에서 누명을 쓰고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러시아 황제에게 진실을 알리고 탄원하겠다며 무작정 황궁으로 갑니다. 그리고 황궁 정원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무작정 상황을 설명하며 러시아 황제를 만나야겠다며 이야기하자, 그 여인은 자신이 러시아를 다스리는 여제 폐하를 만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직후, 정말로 지방 요새에 근무하던 대위의 딸에 불과한 마샤에게, 여제가 접견을 허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마샤는 여제 폐하를 뵈러 알현실로 들어가는데, 자신이 정원에서 만났던 그 여인이 옥좌에 앉아서 자신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여인이 바로 러시아 여제였고, 진실을 알게 된 여제는 마샤를 알현하며 그리뇨프를 무죄 방면합니다. 그리고 그리뇨프와 마샤는 서로 맺어지며, 얼마 후 반란도 완전히 진압됩니다.
<대위의 딸>에서 주인공 그리뇨프와 주변 인물들은, 자기 맡은 소임을 다하는 사이에 졸지에 반란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 반란은 실제 역사에서 일어났던 사건인데, 바로 1773년 일어났던 '푸가초프의 난'입니다. 작품 말이메 마샤가 만났던 '여제 폐하'는 예카테리나 대체로도 불리는 예카테리나 2세 여제입니다.
러시아 화가 표도르 로고코프가 그린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화입니다. 푸가초프의 난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770년 그려진 그림입니다. <대위의 딸>에서 그리뇨프의 연인인 마샤가 '여제 폐하'를 만나뵈었을 때는, 이런 모습이었겠지요.
예카테리나 2세는 원래 독일 공국의 공녀로, 러시아와는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와 러시아 쪽의 인연이라고는, 외삼촌이 한때 러시아 황녀와 약혼했었다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으며, 그 외삼촌이 결혼 전에 천연두로 죽으면서 그 인연마저 사실상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14살 때 러시아 황태자비로 간택되면서, 자신과 아무 연고도 없는 러시아로 오게 됩니다. 남편이었던 황태자는 훗날 표트르 3세로 즉위하지만, 표트르 3세는 러시아에서 민심을 잃을 조치를 거듭 시행하며 신망을 잃습니다. 심지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를 좋아한답시고, 프로이센을 상대로 전쟁에서 거의 이겨놓고는 조건 없이 강화하기도 했지요. 프로이센에게서 점령했던 땅을 모두 조건 없이 돌려주었으며, 심지어 배상금조차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표트르 3세는 7년 전쟁의 막바지에 즉위했는데, 7년 전쟁은 프로이센을 상대로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이 연합군을 결성해 맞선 전쟁이었습니다. 러시아 및 연합군 측이 거의 이겼으나, 그 시점에서 즉위한 표트르 3세는 연합군에서 이탈하고 프로이센과 무조건 강화를 제의하며, 사실상 프로이센 측에 합류하지요. 그리고 러시아가 이렇게 연합군 측에서 빠지면서,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웨덴이 승리하기 직전까지 갔던 7년 전쟁은 사실상 교착 상태로 종료됩니다. 다 이긴 전쟁을 이런 식으로 적군에 헌납하자 러시아, 특히 군대 측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그러자 황후였던 예카테리나가 궁정 쿠데타를 주도해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킨 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여제로 스스로 즉위하게 됩니다. 공식적으로 표트르 3세는 지병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아내에게 황위를 양위했으며, 요양지로 가다가 병으로 죽은 것으로 발표되었고요.
예카테리나 2세는 계몽주의 및 개혁 군주를 표방했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었던 서유럽 문물을 적극 도입했습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설립해 유럽의 많은 문화재를 들여왔고, 유럽식 교육제도도 본격적으로 도입합니다.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하는 동맹을 유럽 국가와 체결하고, 오스만 투르크에게서 여러 지역을 점령하여 영토로 넓혔습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 2세는 아무런 연고나 명분 없이 쿠데타로 즉위했기에 정당성이 취약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는 이 부분을 러시아 귀족들을 포섭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고, 러시아 귀족 계층에게 온갖 특권을 보장했는데, 이는 귀족들이 농민 계층을 더욱 착취하기 쉬운 사회를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 때, 자신이 은밀히 종적을 감추었던 표트르 3세라고 주장하면서 러시아 농민들을 규합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푸가초프입니다. 푸가초프틑 1773년 반란을 일으켰으며, 한때 수도 상트페르트부르크를 제외한 러시아 주요 지역을 손에 넣을 정도로 세력이 팽창됩니다. 이 반란은 1775년까지 이어졌고, 근 2년 동안의 봉기 끝에 진압되지요.
1774-1775년경 그려진 푸가초프의 초상화라고 추정되는 그림입니다. 화가는 불명이며, 푸가초프를 그렸다는 것도 추정이지 확실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1875년 러시아 화가 바실리 페로프가 그린 '푸가초프의 재판'입니다. 푸가초프는 점령한 지역에서 귀족이나 지주들을 체포한 뒤, 자신이 재판하는 형식으로 처단한 적이 많았습니다.
푸가초프의 난은 러시아 역사에서는 꽤 중요하게 언급되며, 특히 예카테리나 2세의 치세를 논할 때에는 중요한 분수령으로 언급되는 합니다. 러시아의 가혹한 농노제 및 농민 수탈 체제를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이지요.러시아에서는 중세 유럽에나 존재하던 농노제가 19세기까지도 버젓이 존속했으며, 19세기 기준으로 러시아 농노제가 중세 유럽 농노제보다도 더 가혹한 수준이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는 계몽주의 개혁군주를 표방했지만, 오히려 농노제는 강화시켰고, 종국에는 푸가초프의 난이 대폭 지지를 얻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 2세는 푸가초프의 난을 진압한 후, 훨씬 가혹하고 철저하게 농노제를 시행합니다.
하지만 푸가초프의 난은 러시아 밖에서는 지명도가 낮습니다. 러시아 이외의 나라에는 딱히 영향력을 미친 사건이 아니었으니까요. 푸가초프가 카자크 세력과 연계했기 때문에 카자크 역사를 다룰 때에는 종종 언급됩니다만, 카자크 역사에서는 푸가초프의 난보다 더욱 중요한 사건들도 많고요.
<대위의 딸>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나름대로 일상적인 스케일 내에서 결심하고 행동하지만, 실제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면서 큰 스케일로 생생하게 펼쳐지는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놓이게 됩니다. 군대 스케줄에서 벗어난 행동이라고는 길 찾는 거 도와준 나그네에게 고맙다며 마침 갖고 있던 걸 건네준 것밖에 없는 주인공은, 반란군에게 잡혔다가 아슬아슬하게 살아났다가, 그 때문에 덕분에 반란군과 내통했다는 모함을 받는 일련의 상황에 휘말린 것이지요.
오늘날에는 이런 작품이 많아서 식상해 보이지만, <대위의 딸> 때만 해도 일반인도 충분히 이입할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공인물이 평소대로 판단하고 행동했을 뿐인데 역사적 사건과 얽힌다는 발상은 실로 혁신적이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을 정도로 토속적인 묘사와 캐릭터가 잔뜩 등장해서, 현장감과 친숙함은 더해졌고요. <대위의 딸>에서 이제 역사적 사건은 영웅들의 드라마일뿐만 아니라, 소시민도 얼마든지 감정이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간드라마가 된 것입니다. 고전문학으로 남은 작품 중에서 이런 설정이 깔린 작품은 많지만, <대위의 딸>이 거의 최초의 사례이지요. 문학사에서는 <대위의 딸>보다 16년 앞선 1820년 출간된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가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가상인물 주인공을 내세운 역사 배경 소설의 시초로 꼽힙니다만, <아이반호>는 오늘날에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기에 '고전으로 남은 작품 중에서 최초'라고 말하기에 애매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위의 딸>이 기억되는 한, 러시아 역사나 농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푸가초프의 난이 완전히 잊힐 일도 없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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