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블로그 외 주제

소설 이야기를 실제로 착각한다는 모티프

아리에시아 2020. 4. 4. 11:58

소설에서는 비현실적인 전개가 인기를 끌 때가 많습니다. 보고 싶은 이야기를 선호하는 분야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요. 영상 시대에는 영화나 드라마도 여기에 추가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이 인기를 끌면, 현실과 착각해서 망상에 빠지는 사람이 나올 거라는 식의 말도 종종 나오지요.


과연 그런 사람이 있기는 있을지, 있다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모티프는 이미 수백 년 전에 등장했다고요.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 <돈 키호테>겠지요. 기사소설을 좋아하던 돈 키호테는 자기도 기사소설 속의 기사처럼 행동하겠답시고, 다짜고짜 여기저기를 유랑하면서 갖가지 소동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사 행세라는 것이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 근처에 혹시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이 있소? 내가 기사이니, 그런 괴물을 퇴치하겠소."라고 말하는 식의 일이라서, 그야말로 한바탕 웃긴 촌극을 만들고는 하지요.



일명 소설이나 드라마 망상 운운하는 이야기에 단골로 나오는 레퍼토리가 "로맨스 소설,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는 현실에 없다. 그런 남자가 있어도 가진 것 없고 평범한 여자에게 냅다 모든 것을 바치는 행동 따위는 안 한다"라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로맨스 소설에 푹 빠져서, 현실에서 로맨스 소설 같은 사랑을 꿈꾸다가 스스로 불행해진다는 이야기는 19세기 소설 <보바리 부인>에서 중심 주제로 등장합니다. 여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재미는 없지만 신실한 남자와 결혼하지만, 로맨스 소설 같은 사랑을 꿈꾸다가 이내 실망한 뒤에, 로맨스같은 사랑을 꿈꾼답시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다가 파멸하게 되지요.



이 두 사례는 엄연히 소설 속의 이야기입니다만, 현실의 사람이 비슷한 이야기를 남긴 사례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례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례는 12세기의 <사라시나 일기>입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회고한 일기 내지 자서전 같은 책이지요.

그리고 이 책에서는 소설 <겐지 이야기>에 푹 빠져서, 그야말로 현실 일은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겐지 이야기>의 내용을 줄줄 외워 읊게 된 것을 뿌듯해했다거나, <겐지 이야기>를 읽을 생각만 하고 다른 일은 말 그대로 내팽개치는 식입니다. 그리고 <겐지 이야기>처럼 멋진 사람이 자기 앞아 나타날 거라는 식으로 상상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겐지 이야기>를 보고 궁 생활에 환상을 가졌다가, 막상 궁에 들어가게 되자 기겁했다는 식의 서술도 나오지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십 년 후, 소설에 빠져 있을 동안 공부라도 할 걸 그랬다면서 후회하는 내용으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