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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하늘을 나는 가방>과 터키 의상

아리에시아 2019. 9. 7. 11:58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수많은 동화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작품이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하늘을 나는 가방>이라는 작품이 있지요.


내용 자체는 한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도 있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주인공은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흥청망청 쓰는 바람에 실내복과 슬리퍼, 가방 하나만 남은 처지가 됩니다. 하지만 그 가방에는 하늘을 날며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주는 신비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 덕에 주인공은 터키라는 나라로 날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높은 탑 안에 있던 터키의 공주를 만난 뒤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축하 삼아서 가방을 타고 날아다니며 불꽃놀이를 하다가 불꽃의 불똥이 튀어서 가방은 타버립니다. 그래서 더 이상 탑 안에 갈 수도, 공주를 만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립니다.


어렸을 때 읽은 수많은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묘하게 기억에 남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에게 옷 한 벌만 덜렁 남아있고, 그 옷이 잠옷이라서 변변히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터키라는 나라에 갔더니 그 나라에서는 잠옷을 밖에 입고 다니는 바람에, 잠옷 한 벌만으로도 잘만 다닐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의미로 신기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보았던 책의 삽화에서는 잠옷이라고 아예 못박았고, 삽화에서도 무려 파자마 잠옷을 그려놓는 바람에 더욱 그랬고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에 다시 안데르센 동화 완역본으로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랍시고 터키를 야만스럽게 그리던 시대라서, 터키는 잠옷을 입고 밖에 다닌다는 식으로 희한하게 묘사한 모양이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실내복 내지 잠옷이 바로 터키의 의상에서 유래한 옷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세기 즈음 유럽에서는 튀르크리라는 이름으로 터키풍 문화가 한참 유행하고, 터번 등 터키풍 의상을 걸치는 유행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터키식 의상은 아예 유럽 남성 실내복으로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9세기 유럽 기준으로 실내복 한 벌만 있다면, 터키에서는 그럭저럭 무난한 외출복이 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림 자체는 안데르센의 작품보다 수십 년 뒤인 1890년대에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만, 실내복의 디자인은 수십 년간 별 차이가 없었기에 안데르센이 의도한 옷도 이 옷과 거의 비슷했을 것입니다.



19세기 유럽 남성들은 외출복은 검박한 디자인을 선호했습니다. 장신구라고 해 봐야 넥타이핀이나 단추, 스카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집에서 있는 실내용 가운은 고급 옷감으로 화려하게 지은 경우가 많아서, 외출복보다 실내복이 더 비싼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