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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오페라 <악마 로베르>

아리에시아 2019. 6. 1. 22:45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몰락한 사람이 나중에 단단히 복수한다는 복수극을 사실상 창시한 작품이자 대표적인 고전입니다. 이 작품을 완역본으로 읽어보면, 1830년경 파리의 호화로운 생활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유명한 문학작품 등을 패러디하듯이 인용한 대목도 많지요. 안타깝게도 제가 읽은 완역본 판본에서는 이런 부분에 변변한 해설이 없어서, 책만 보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겠더군요. 무슨 뜻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막상 무슨 뜻인지는 모를 상황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을 특히 강하게 받았던 부분이 바로 '로베르 디 아블'이라는 오페라가 나오는 대목이었습니다. 완역본 판본으로 요약하면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로베르 디 아블'이라는 오페라를 인기리에 한참 공연하고 있는데, 상당수의 관람객들은 3막부터 보러 옵니다. 그런데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드물게 1막부터 보다가, 3막이 시작할 즈음 복수와 관련된 일이 생겨서 극장을 나갑니다. 그러자 남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3막부터 보러 오는 오페라에 1막부터 보더니 막상 3막은 안 본다면서, 몽테크리스토백작은 정말이지 특이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입방아를 찧지요.


저는 저 오페라에 대해 전혀 몰라서, 저게 무슨 의미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맥과 분위기만으로도 3막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장면이 나오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그런 명장면 따위는 미련 없이 포기할 정도로 복수를 중하게 여긴다고 묘사되었다는 것만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저 오페라의 3막에 무슨 명장면이 있기에 저렇게까지 난리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 그 때 이렇게 생각했더랬지요. "무슨 발레 군무 장면이라도 나오는 건가?" 19세기 프랑스 오페라에서는 스펙터클이랍시고 발레 장면을 끼워넣는 것이 유행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저거였습니다.


제가 읽은 판본에서는 <로베르 디 아블>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저 오페라는 마이어베어의 <악마 로베르>입니다. 그렇게까지 유명한 작품은 아닙니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목을 들어본 적은 있을 수도 있는 정도지요.


제가 몽테크리스토백작의 저 장면에 대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다소 엉뚱하게도 발레 서적을 읽으면서였습니다. <발레의 역사들:아폴로의 천사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저 오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 겁니다.


요약하면 <악마 로베르>라는 오페라에서 발레 군무를 도입했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신심이 없는 수녀들이 묻힌 무덤가에서 수녀들의 유령이 되살아나 단체로 춤을 춘다는 설정이라는데, 3막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대형 블록버스터 오페라에 발레 장면을 넣는 유행이 시작된 작품이기도 하다는군요. 그리고 초연에서 춤을 춘 발레리나는... 무려 마리 탈리오니였습니다!


20세기 이전 발레리나의 역사는 '마리 카마르고라는 발레리나가 최초로 발목을 드러내고 춤을 추었고, 마리 탈리오니라는 발레리나가 최초로 발끝만으로 서면서 발레를 추었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큰 족적을 남긴 유명한 발레리나지요. 전 마리 탈리오니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떠올리면서 "설마 마리 탈리오니의 발레를 표를 사 놓고 안 봤단 말이야?"라고 외쳤더랬습니다. 오죽하면 연표부터 찾아봤을 정도였지요. 다행이라면 다행하게도, 몽테 크리스토의 배경이 되는 1838년경에는 마리 탈리오니가 프랑스를 떠나서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마리 탈리오니가 공연하는데 기껏 관람권을 확보하고서는 막상 공연을 보지 않은 사태는 일으키지 않은 겁니다.


또한 소설의 저 장면에서는 오페라를 3막부터 보는 사람이 많다는 언급도 나오지요. 저 시대 프랑스에는 실제로 유명한 장면이 뒷부분에 나오면, 중간부터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중간부터 보러 오는 경우가 많으니, 1막에는 중요한 장면은 넣지 않는 관습이 생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베르디가 1867년 오페라 <돈 카를로스>를 프랑스에서 초연했을 때, 줄거리 흐름에는 뜬금없게도 대규모 발레 장면을 어떻게든 끼워넣으라느니, 늦게 오는 사람이 많으니 초반부에 중요하거나 멋진 장면을 넣으면 안 되며 1막을 안 봐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구성하라느니, 오페라가 너무 길어지면 막차 시간이 끊기니 시간을 조절하라느니 등의 요구를 받고 진저리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저런 문화가 있었던 곳이라 그랬던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찾은 <악마 로베르>의 '수녀들의 발레' 장면입니다. 발레단이나 무용수의 정보는 없는 영상이라 아쉽습니다만, 발레 공연이 잘 나온 영상이기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