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각/블로그 외 주제

왕족에게 인정받은 적 있는 왕족 사칭자들

아리에시아 2019. 5. 4. 17:54

역사를 통틀어서, 왕족이 행적이 묘연해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거의 매번 사칭자가 나타나고는 했습니다. 또한 왕족이 행방불명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왕족이 미심쩍게 죽었어도 사실은 적당한 사람으로 바꿔치기해서 도망가 살아남았다는 식의 사칭 레퍼토리가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더욱이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아들'이라는 식의 레퍼토리까지 들고 나오면, 그 숫자는 더욱 많아지지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수많은 사칭자의 거의 대다수는 진짜 왕족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대외적 요인 등이 겹쳐서, 사칭자가 진짜 왕족인 몇몇 명에게 잠시나마 인정받은 사례도 존재하기는 하지요. 이 경우에는 적대국의 왕실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그 사칭자가 진짜 왕족이 맞다는 식으로 맞장구는 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그 중에는 진짜 왕족의 가족에게 인정받은 사례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왕좌에 앉는 데 성공한 사례도 있지요.

 

 

<러시아의 가짜 드미트리>

 

가짜 드미트리는 러시아에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서기 직전, 일명 '혼란 시대'에 등장한 사칭자입니다. 혼란 시대를 아주아주 간단하게 정의하면, 러시아 황제에게 막내동생 드미트리 한 명만 남기고 사실상 후손이 끊겼는데, 그 막내동생이 갑자기 죽는 사람이 왕족이 모두 사라지고, 그 뒤에 한바탕 혼란이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으레 그렇듯이, 황제의 친인척과 여러 측근들이 서로 자기가 황제가 되겠다고 권력 다툼이 일어난 거지요.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황제의 처남이 대충 후계자로 정해졌습니다만, 그것으로 모든 혼란이 가라앉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자신이 예전에 죽은 황제의 막내동생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역사에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라는 이름으로 남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죽었다고 알려진 것은 거짓이며, 사실은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주장을 믿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드미트리의 죽음이 상당히 미심쩍었다는 이유도 컸던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미트리는 열 살 때쯤 얼굴에 칼을 맞은 시체로 발견이 되었는데, 공식 조사 결과 병사라는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칼을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간질 발작을 일으켜 스스로 칼로 자기 얼굴을 찔러 죽었는데, 간질 때문에 죽었으니 병사라는 논리였습니다.

 

러시아와 대립하는 관계이던 폴란드에서는 이 가짜 드미트리를 주목했습니다. 진짜 드미트리로 인정하고, 폴란드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면서 군대까지 마련해 주었지요. 그리고 가짜 드미트리는 러시아가 한창 혼란한 틈을 타서, 전투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의 권좌를 차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드미트리의 생모와 대면하지요. 드미트리의 생모는 한동안 수녀원에 유폐되어 있었는데, 새롭게 드미트리랍시고 나타난 사람을 자기 아들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황제의 모후다운 대우를 받게 되지요.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는 폴란드 귀족과 결혼하고, 자신을 도와주었던 폴란드인들을 후대합니다. 이것은 러시아에서 가짜 드미트리의 평판이 나빠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리고 드미트리에 반대하는 세력이 군대를 일으키고 드미트리 세력을 상대로 이기면서, 그의 치세도 끝이 납니다. 드미트리의 생모는 그 사람이 드미트리가 아니라고 말을 번복했으며,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는 왕족 사칭자이자 패배자로서 죽습니다.

 

굳이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 이미 짐작하실 분이 많겠습니다만..... 가짜 드미트리는 이후로도 나타납니다. 일명 두 번째 가짜 드미트리지요.

 

이 두 번째 가짜의 양상은 어처구니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두 번째 가짜는 첫 번째 가짜와 외모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이자 진짜 드미트리라고 주장하면서,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의 남은 세력을 흡수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 잔당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합니다. 이 와중에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의 아내는 두번째 가짜 드미트리가 자신의 남편, 즉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가짜 드미트리는 자신이 첫번째 가짜 드미트리라는 주장의 일환으로, 그 아들을 자기 아들이라고 선언하고 후계자로 삼습니다. 또한 드미트리의 생모가 또다시 나타나서, 두번째 가짜 드미트리가 자신의 아들이 맞다고 증언합니다.

 

이들은 또다시 군사 행동에 나섰습니다만, 결국 실패합니다. 두번째 가짜 드미트리와 그 일당은 모두 죽음을 맞게 되지요. 그리고 이 사건은 아주 드물게도, 왕족 사칭자가 잠시나마 왕좌에 앉는 데 성공했으며, 진짜 왕족의 가족, 그것도 어머니에게 진짜라고 인정받았다는 희대의 사례를 남기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퍼킨 워벡>

 

잉글랜드의 내전, 장미 전쟁은 잉글랜드 왕실의 분가인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가 왕관을 둘러싸고 30년 동안 벌인 전쟁입니다. 랭커스터 가가 붉은 장미 문장을 사용하고, 요크 가가 흰 장미 문장을 사용했다는 데에서 장미 전쟁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실상은 조금 다르고, 후대의 창작에 가깝습니다만, 이 이야기가 워낙 유명해서 아예 역사 용어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http://blog.daum.net/ariesia/69

 

내전 자체는 사실상 요크 가문이 승리했습니다. 랭커스터 가문의 모든 왕족은 전쟁 중에 죽었고, 랭커스터 가문의 핏줄이라고는 친척뻘인 보퍼트 가의 마지막 상속녀 한 명과 그 외아들뿐이었지요. 보퍼트 가문은 랭커스터 가의 분가라고 하기에도 영 애매한 위치였는데, 랭커스터 가의 시조가 정략결혼한 둘째 아내가 죽은 이후, 둘째 아내와의 결혼생활 동안 애인이었던 여인과 세 번째 결혼을 하면서 생겨난 가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철저한 일부일처제이며, 공식적으로는 첩이나 서자 제도가 없고, 한 술 더 떠 결혼한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만 정식 자녀로 인정합니다. 왕실에서는 남녀가 결혼하기 전에 아이를 낳은 뒤 나중에 결혼하면, 결혼 전에 태어난 아이는 적출로 대우하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이 경우, 결혼 이후에 태어난 동생이 결혼 전에 태어난 손위형제보다 더욱 정통성 있는 후계자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아내로 정식으로 결혼했지만, 그 전에 태어난 아이들은 정식 왕족이 되지 못합니다. 보퍼트라는 가문 명을 받으면서, 왕위계승권은 없다고 천명받기까지 했지요. 하지만 랭커스터 가문의 모든 왕족들이 죽자, 일단은 정식 결혼에서 태어난 후손이라는 이유로 어영부영 후계자로 여겨지게 됩니다.

 

장미 전쟁에서는 사실상 요크 가문이 이겼습니다만, 최후의 승자는 보퍼트 가문의 마지막 상속녀의 외아들인 헨리 튜더였습니다. 헨리 튜더가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 리처드 3세를 전사시키고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헨리 튜더는 헨리 7세로서 잉글랜드의 왕이 되며, 그 손녀가 바로 엘리자베스 1세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 때 활동했던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3세를 갖가지 근거 없는 묘사를 집어넣어 극악무도한 괴물로 묘사했는데, 엘리자베스 1세의 할아버지가 리처드 3세에게 이겼다는 것 외에는 정통성이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필연적인 귀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리처드 3세에 대한 여러 논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게 되지요. http://blog.daum.net/ariesia/78

 

하지만 헨리 7세의 왕권은 상당히 취약했습니다. 적어도 왕좌에 오를 때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겼습니다. 헨리 7세가 에스파냐의 공주를 맏아들과 결혼시키려 했을 때, 에스파냐 측에서는 요크 가문의 왕족이 살아 있는 한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리처드 3세의 둘째 형의 아들이자 요크 가문의 마지막 남자 왕족이었던 워릭 백작 에드워드는 반역죄 명목으로 처형되고, 에스파냐와의 국혼이 성사됩니다. 이 정도로 정통성이 취약했으니, 헨리 7세에 대항하는 세력이 여럿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중에는 요크 가문의 생존자를 자칭한 사기꾼이 등장한 세력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두 명의 이름이 역사에 남았는데, 램버트 심널과 퍼킨 워벡입니다. 특히 퍼킨 워벡은 여러 의미에서 특이했는데, 여러 외국 왕실을 설득하는가 하면, 무려 외국 왕족과 결혼하여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램버트 심널의 사칭 사건은 금세 끝났고, 심널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헨리 7세는 심널에게 궁중 주방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내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퍼킨 워벡은 경우가 달랐습니다. 신성로마제국 등 여러 나라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고, 심지어 요크 가문의 공주였던 요크의 마거릿에게 진짜로 인정받으며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았습니다.

 

장미 전쟁 막바지에 요크 가문에는 3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에드워드 4세, 둘째 클라렌스 공작 조지, 셋째 리처드 3세입니다. 에드워드 4세는 두 아들을 남겼지만, 사후에 왕비와의 결혼 여부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두 아들은 왕자 신분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그 두 아들은 런던탑에 유폐된 후 행적이 묘연해집니다. 그리고 헨리 7세가 즉위하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이 때 실종된 두 조카 중 동생인 요크 공 리처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이 사람이 퍼킨 워벡입니다. 당대의 여러 기록은 퍼킨 워벡이 에드워드 4세를 닮은 외모였다고 기록합니다.

 

특히 요크의 마거릿은 퍼킨 워벡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요크의 마거릿은 요크 왕조가 건재하던 시절 부르고뉴 공작과 결론해서 부르고뉴 공작부인이 되었는데, 부르고뉴의 수많은 자원을 퍼킨 워벡을 위해 지원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와 대립하던 관계의 여러 나라들도 퍼킨 워벡을 인정하거나, 지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는 국왕의 친척을 퍼킨 워벡과 결혼시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퍼킨 워벡의 군사 봉기는 실패합니다. 퍼킨 워벡은 스스로 사칭자라고 인정한다면 고통이 덜한 처형방법으로 사형된다는 제안을 받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퍼킨 워벡은 도대체 누구였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소수지만 진짜 요크 공 리처드가 맞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현재로서 유력한 추측은 에드워드 4세가 정부에게서 낳은 사생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크 공 마거릿이 엉뚱한 사람을 조카라고 인정하고 지지한 것에 대해서는, 마거릿이 속았다기보다, 요크 가문의 공주였던 마거릿이 튜더 가문에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추측이 많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요크의 마거릿이 적당한 사람을 찾아낸 후, 요크 공 리처드 왕자로 꾸민 주도자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며, 확실한 것은 퍼킨 워벡이 요크 가문의 국왕인 에드워드 4세를 닮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과, 요크의 마거릿 등 튜더 가문에 적대적인 외국 왕실 사람들이 퍼킨 워벡을 지지했다는 것뿐입니다.

 

 

<가짜 아나스타샤 황녀, 안나 앤더슨>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가족들과 함께 학살당했습니다. 하지만 시신이 암매장되어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기에, 오랫동안 생존설이 떠돕니다. 이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답시고, 자신이 황족이라며 사칭하는 사람도 무수히 많이 등장했습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유명할 왕족 사칭자, 가짜 아나스타샤 황녀인 안나 앤더슨도 바로 이때 등장했습니다. 생존한 황실 친척과 관계자들은 안나 앤더슨이 황녀가 아니라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대중들 사이에서는 진짜 황녀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돌게 됩니다. http://blog.daum.net/ariesia/53

 

니콜라이 2세 일가 전원의 시신이 발견되고 DNA 친자 검사 기술이 발명되자, 안나 앤더슨의 정체도 밝혀졌습니다. 니콜라이 2세 일가가 학살당한 뒤 2년여 후에 실종된 폴란드 여성, 프란치스카였습니다. 하지만 안나 앤더슨, 즉 프란치스카는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시신이 발견되고 DNA 검사 기술이 발명되기 전, 1984년 죽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러 지지자가 나타나서, 안나 앤더슨이 아나스타샤 황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중에는 러시아 황족도 한 명 있었습니다. 아나스타샤 황녀의 7촌 친척인 크세니아 공녀였지요. 크세니아 공녀는 어릴 때 아나스타샤 황녀를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안나 앤더슨이 나타난 이후, 안나 앤더슨의 모습에 기품이 있으니 황족이라는 직감이 든다는 이유로 아나스타샤 황녀라고 지지했습니다. 크세니아 공녀는 미국 부호와 혼인한 덕분에 재산이 많았는데, 자신의 재산을 안나 앤더슨을 위해 쓰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안나 앤더슨은 진짜 황족에게서 황녀라는 인정을 받았다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고, 더한층 기세등등해지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