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속의 문화사

벨리니의 <텐다의 베아트리체>와 중근세 유럽의 영주 미망인 재혼 제도

아리에시아 2017. 1. 14. 11:58

빈첸초 벨리니의 1833년작 오페라인 <텐다의 베아트리체>의 배경은 1418년 밀라노로, 실화를 각색한 작품입니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필리포 마리아 비스콘티는 현재 밀라노의 영주로서, 오로지 여주인공 텐다의 베아트리체와 결혼한 덕에 밀라노의 영주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략결혼이었기에 비스콘티는 베아트리체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었고, 오히려 결혼 이전부터 사랑했던 애첩인 아녜세를 결혼 후에도 대놓고 총애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오롬벨로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오롬벨로는 베아트리체를 비스콘티의 아내 자리에서 내쫓아내면 아네셰가 비스콘티와 결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 입장에서도 득이 되리라는 계산을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 계산을 실행에 옮기지요. 베아트리체에게 급한 일이 있다는 핑계로 만남을 가지고는, 시간을 질질 끌다가, 비스콘티가 둘이 함께 있는 광경을 목격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비스콘티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상황을 목격한 격이 되었기에 격분하고, 오롬벨로는 자신과 베아트리체 부인이 외도하는 관계였다는 거짓 자백을 합니다. 베아트리체도 자백하라는 미명 하에 고문받다가, 결국 비스콘티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게 됩니다. 베아트리체는 간통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죽기 직전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말하며, 평온한 죽음을 맞습니다.


2010년 마시노 벨리니 극장에서 공연된 <텐다의 베아트리체> 영상입니다.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베아트리체 역에 소프라노 디미트라 테도오슈, 비스콘티 역에 바리톤 미켈레 칼만디, 오롬벨로 역에 테너 알레얀드로 로이, 지휘는 안토니오 피롤리입니다.



동양식 상속법과 계승원칙에 익숙한 입장이면, <텐다의 베아트리체>의 인물관계도가 꽤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현재 밀라노 공작, 그러니까 밀라노의 영주는 여주인공 베아트리체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밀라노의 영주가 되었는데, 막상 베아트리체 본인은 밀라노와 혈연이 없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밀라노 지배계층의 상속녀가 아니고, 비스콘티도 사위 자격으로 밀라노의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텐다의 베아트리체라는 이름부터가, 베아트리체가 밀라노와 혈연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요. 작품 내내 여주인공 베아트리체를 수식할 때 외에는 언급되지 않는 텐다라는 단어는 베아트리체의 출생지로, 베아트리체는 텐다 사람이지 말라노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밀라노 지배계층과 아무런 혈연이 없는 베아트리체와 결혼한 남편이, 밀라노의 합법적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였을까요? 이 이야기가 실화에 바탕했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상황 자체는 실존했던 것이지 창작이 아닌데도요.


베아트리체는 비스콘티 이전에 밀라노를 다스렸던 공작의 아내였고, 이전 공작이 죽은 뒤에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는 영주가 아이 없이 죽으면 과부가 된 영주부인이 새로운 영주가 되고, 그 과부와 혼인한 남자가 합법적으로 그 지역의 영주가 될 수 있는 제도를 채택한 곳이 많았는데, <텐다의 베아트리체>의 무대가 되는 밀라노도 그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아트리체는 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밀라노를 다스리던 남편이 죽은 이후 밀라노를 다스릴 수 있는 입장이었으며, 베아트리체와 혼인한 남자 역시 그 지배권을 합법적으로 획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중세 이래 수백 년간 유럽 여성들이 흔히 그랬듯이, 통치권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여성에게 오히려 제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고,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 아들 등의 남성 대리자를 통해서만 자신의 권리를 쓸 수 있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성 대리자는 자신이 대리하는 여성 측의 권리를 관리하며, 사실상 소유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밀라노에 별다른 연고도 없고 별다른 통치능력도 없는 자신이 밀라노를 다스리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 생각하여, 밀라노 지배자감으로 물망에 오른 비스콘티와 재혼하여 그에게 밀라노의 통치자 자리를 합법적으로 가져다주는 길을 택하는데, 이런 일은 당시 유럽에서 굉장히 흔했습니다. 여성은 통치권을 물려받아도 스스로는 활용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았고요. 다만 오페라와 현실이 다른 게 있다면, 오페라 내에서 베아트리체는 나름대로 자신이 결단해서 비스콘티와 결혼한 것임에 반해, 그런 입장에 있었던 실제 여성들은 주변 가신이나 외부 권력자가 내정한 통치자 후보와 선택의 여지 없이 정략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겠지요. 때로는 군사를 이끌고 타인의 영지를 무력점령한 뒤, 그 영주의 딸이나 옛 영주의 과부와 혼인함으로써 침탈을 무마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습니다. 이런 경우 여자에게는 선택권도 가정적 행복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친정 부모에게서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딸, 특히 영주 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는 딸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중세 이래 수백 년 동안 이런 상속녀와 결혼하면 상속녀의 통치권과 재산권 등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정략결혼 및 치열한 정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심지어 상속녀를 납치하다시피 데려가서 결혼식을 올린 뒤 남편 자격으로 아내의 권리를 탈취하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경향이 잦아든 것은 빨라도 17세기 즈음은 되어서입니다. 그 이전에 재산을 가진 여성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경우는 단 하나, 남편이 죽고 남편의 재산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을 때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물려준 재산만큼은, 남편 가문이나 여성 쪽 가문의 소유가 아니라 온전히 여성 쪽의 소유로 인정되었으니까요. 그나마도 남편에게 후계자가 있었을 때에나 온전한 평온과 자유를 찾을 수 있었고, 남편에게 후계자가 없었을 때에는 과부가 그 후계자가 되어 또다시 쟁탈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혼해도,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되는 시대였기에 아내가 아무리 많은 권리를 남편에게 가져다줬어도 별다른 대우를 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내를 통해 통치권을 획득한 남성의 경우에는, 아내가 아이 없이 죽어도 그 통치권을 유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오페라 내에서 비스콘티 공작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베아트리체를 간통한 여자라고 공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습니다. 오히려 더했다는 말이 맞겠군요. 오페라 내에서는 앞뒤 상황이야 어쨌건 비스콘티 공작이 베아트리체가 다른 남자와 단둘이 있는 모습을 목격하기라도 했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그런 기록은 딱히 없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아트리체가 죽는다면 비스콘티는 온전히 밀라노의 공작이 되면서 다른 여자와 재혼할 수 있는 입장이었고, 그래서 베아트리체가 죽기를 바랐으며, 마침내 추진했다는 설이 정설로 통용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텐다의 베아트리체의 비극은, 남편이 죽었는데 그 남편의 권리를 상속해줄 매개물로서 새로운 남편감을 찾아야만 했고, 그 새로운 남편감에 온전히 종속되어야 했던 여성들이 얼마든지 처할 수 있었던 운명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