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마스카니의 1890년작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19세기 시칠리아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입니다. 오페라에서는 대개 왕족이나 귀족 혹은 상류층 사교계에서 인정받는 예술가가 등장하며, 못해도 유복한 유한계층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19세기 후반에는 평범한 민중 계층의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일상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오페라가 점차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경향을 가리켜 '베리스모 오페라'라고 하는데,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베리스모 오페라의 대표작입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칠리아의 청년 투리두는 마을 처녀 룰라와 연인 사이였지만, 투리두가 군대에 간 사이 룰라는 알피오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립니다. 절망한 투리두는 자신을 짝사랑하던 마을 처녀 산투차와 어영부영 맺어지지만, 룰라를 잊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부활 대축일 때 룰라가 투리두더러 함께 마을 광장으로 가 부활 대축일을 기념하자고 하자, 덜컥 승낙해버리지요. 산투차는 투리두에게 자신을 버리느냐는 식으로 애원하지만, 투리두는 마을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고 마을 축제에 같이 가는 걸 가지고 왜 트집잡고 난리를 피우냐는 식으로 대응하고는 룰라와 같이 가버립니다. 한편 아무 것도 모르는 알피오는 산투차를 만나자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산투나는 현재 알피오의 아내인 룰라와 투리두가 아직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버리지요. 알피오는 투리두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결투날 투리두와 알피오는 무대 뒤로 퇴장합니다. 그리고 무대는 투리두의 집으로 바뀌며, 투리두의 어머니가 집 밖에서 결투에서 투리두가 죽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오페라가 끝납니다.
노블아츠 오페라단에서 공연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공연으로,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박명숙, 황병나미, 김관현, 송윤진, 세르지오 올리바 등이 출현합니다.
이 오페라에서는 부활 대축일 축제가, 이미 쌓였던 갈등관계가 폭발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축제에 룰라와 투리두가 동행하여 가자, 산투차는 질투와 분노가 폭발해버립니다. 이 대목은 투리두와 룰라 쪽에서는 마을의 큰 행사에 이웃끼리 같이 가자는 것이라고 여기고, 산투차는 현재 연인이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한 옛 여자친구와 대놓고 놀아난다고 받아들이는 장면인데, 양쪽 다 당시 문화권에서는 가능한 해석이라는 것이 백미지요. 누구 한 명 완벽히 무결한 사람은 없고, 조금씩은 결함이 있는데, 약간씩의 불협화음이 서로 맞물리며 큰 갈등으로 폭발하고야 맙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도대체 투리두와 룰라는 왜 저렇게 당당하게 둘이서 마을 행사에 나가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되지요. 아무리 옛 연인이었다지만, 그리고 한때 연인이기에 더더욱,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와 현재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는 남자가 마을 행사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 당당하게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요. 하지만 그 마을 행사가 '부활 대축일'을 축하하는 행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부활 대축일 행사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모이는 큰 행사였기 때문에, 이웃끼리 동행하여 행사 장소에 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거든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관련된 한글 자료 중에는, 부활절 행사라고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기입니다. 부활절은 개신교식 명칭이고, 카톨릭에서는 부활 대축일이라는 명칭을 쓰는데, 이 작품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지역은 카톨릭교를 믿기 때문이지요. 부활절, 그러니까 부활절 달걀로 유명한 바로 그 기념일입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기독교에 관련된 축일 중 가장 유명하지만, 유럽권에서는 중세 이래 예수의 탄생보다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부활한 것을 더욱 성대하게 기념하고 중대한 기념일로 여겼습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이 모두 부활 대축일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웠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룰라와 투리두도 그런 분위기를 틈타 은근슬쩍 마을 이웃끼리 가는 것처럼 같이 행사 장소에 가려고 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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