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중에는 19세기 즈음의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군인이 등장하는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작품만 꼽아도 군 장교가 삼각관계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도니제티 작곡의 <사랑의 묘약>, 여주인공이 군 부대에서 길러준 고아이며 남주인공은 여주인공과 함께 있기 위해 자진입대하는 도니제티 작곡의 <연대의 딸>, 남주인공이 촉망받던 군인이었는데 집시 여주인공에게 반해서 신세가 꼬여버리는 비제 작곡의 <카르멘> 등이 있습니다. 등장인물이 군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 오페라까지 계산하면, <피가로의 결혼>이나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도 들어가겠네요.
이런 작품들을 전통적으로 연출하는 경우, 당연히 해당 캐릭터는 군복을 입고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군복" 의상이, 현대 군복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습니다. 특히 군복 색은 말할 것도 없고, 군복의 계급장 색깔조차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저시인성 색상을 채택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군복이라는 것이 숫제 황당하기까지 할 디자인이지요.
2005년 빈에서 공연된 <사랑의 묘약>에서 장교 벨코레 역의 의상입니다. 이 공연은 <사랑의 묘약> 영상물 중 가장 인기가 많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글 자막의 번역도 상당히 괜찮아서, 오페라 입문용으로도 종종 추천되는 공연이기도 합니다. 장교의 군복 의상인데, 눈에 확 띄는 원색 계열 색상에 화려한 장식도 달려 있습니다. 혹시 장교라서 군복 디자인이 특별한 것이었을까요?
부하들과 같이 등장하는 이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 입니다. 금술 장식이 없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일반병들도 비슷한 디자인의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그냥 마을에 들른 것이기 때문에, 예장 같은 공식행사용 의상인 것도 아니고요.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여주인공 아디나 역을 맡았던, <연대의 딸> 취리히 공연의 스틸입니다. 시골에 주둔하는 군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인데, 역시 원색 계열에 눈에 띄는 장식이 달린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보닝이 지휘한 1968년<사랑의 묘약> 음반을 녹음했을 떄, 음반 재킷 사진입니다. 무대 의상인데, 갓 입대한 신병인데도, 역시 화려한 장식이 달린 원색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카라얀이 1967년 지휘한 <카르멘> 영상에서 남주인공 돈 호세 역을 맡은 존 비커스의 모습입니다. 오페라 첫등장 장면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을 때에도, 저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역시 원색 계열에 화려한 장식이 달린 디자인의 군복입니다.
주역 등장인물의 무대의상은 눈에 잘 띄도록 좀 과장된 비현실적 디자인을 채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서로 관계없는 여러 작품의 다채로운 공연에서 군복 디자인만큼은 일관되어 있지요. 군복 디자인은 원색 계열로 채도가 높고 눈에 확 띄는 색상이며, 이런저런 장식도 잔뜩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색상인 건 둘째치고, 전투할 때 입으라고 만든 복장인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움직이기도 은근히 불편하게 생겼고, 숫제 엎드리거나 엄폐하는 자세는 취하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습니다. 예식용 예장 제복 같은 것이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즈음을 배경으로 군인이 등장하는 오페라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저런 디자인의 군복이 등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즈음의 군복은 실제로 저랬기 때문입니다.
1600-1865년 사이의 유럽 군복을 정리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 나타나 있듯이, 1700-1800년대의 군복은 선명한 원색 색상의 옷감에, 금속 단추 등 번쩍이는 부속물도 잔뜩 달려 있는 형태였습니다.
왜 이렇게 눈에 띄는 디자인의 군복을 만들었던 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필이면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되도록 눈에 잘 띄라는 목적으로 일부러 디자인한 군복이었기 때문입니다.
1700-1800년대는 머스킷 총을 사용하는 전열보병의 시대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군인의 키보다 약간 짧을 정도로 총신이 긴 총을 들고 있는 그림 몇 점 있는데, 이것이 바로 머스킷 총입니다. 이 때의 전술이란 군인들이 대열을 맞춰 머스킷 총을 쓰는 것인데, 연기가 자욱할 때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끔 눈에 잘 띄도록 일부러 선명한 원색을 채용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 때는 멀리서도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있는 주요 지표 역할도 했습니다. 무전통신수단이 없어서 이동하면서 즉각적으로 연락을 교환할 수 없던 시대에, 멀리 보이는 군대가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군복 색으로 판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전투복-정복 개념이 따로 없었고, 저 디자인의 군복을 행사 때에도 실전에서도 착용했습니다. 그러니까 금속단추나 금술 어깨장식 등이 달린 군복을 입고 전투에서 싸웠다는 겁니다. 엎드리거나 엄폐하는 자세를 취하기에는 정말 불편한 디자인입니다만, 역시 상관없었습니다. 저 시대의 머스킷 총은 전장식으로, 총 입구에 탄환을 넣어서 발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 입구에 손이 닿을 수 있는 자세여야만 총을 사용할 수 있었고, 따라서 총을 쓸 때에는 서 있는 자세 아니면 무릎을 꿇은 자세, 두 가지 자세밖에 취할 수 없었습니다. 엎드린 자세를 취한다거나, 엄폐하면서 총을 쏘는 일은 없었지요. 그렇기에 저렇게 불필요한 화려한 장식이 잔뜩 달려 있고, 세탁하기에도 힘들게 생긴 군복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화려한 군복은 서민 계층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http://blog.daum.net/ariesia/88 19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군복 입은 군인을 보고 군복이 멋지다는 이유로 막연히 입대해 병사가 된 사례가 많았고, 시골 여성들 사이에서는 군인이 남편감으로 상당히 인기 있는 직업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효과는 눈에 띄고 멋진 디자인의 군복을 계속 사용하는 원인 중의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지요.
화려한 원색색상이 아예 군복의 상징처럼 된 사례도 있습니다. 영국군의 별칭인 "레드 코트(붉은 코드)"는 근대 시대 영국군이 붉은 군복을 입은 것에서 유래한 별명이며, 군청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은 파란색을 일컫는 '프러시안 블루(프러시아의 파란색)' 색상은 프로이센 군복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프러시아는 프로이센의 영어식 발음으로, 프로이센은 수백년동안 수많은 소국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의 통일을 주도했고 통일된 독일 제국의 주축이 되었던 나라입니다.
'레드 코트'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영국군의 군복입니다. 1800년 전후 약 백년 동안의 군복 모습인데, 전체적인 디자인 형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지지만, 눈에 띄는 선명한 붉은색은 백년 넘도록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프로이센 군복의 모습입니다. 선명하고 짙은 파란색이 특징입니다.
19세기 말 총 뒤쪽에 탄환을 집어넣어 장전하는 후장식 총이 등장하고, 대포 등의 화기가 발달하면서 은폐전술이 발달하기 시작하자, 화려한 원색 군복은 사라지고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색상의 군복이 주류가 됩니다. 예장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도 이 시기입니다. 평상시나 전투시에는 눈에 띄지 않는 색상의 군복을 입고, 근대 유럽 군복처럼 화려한 원색의 의상은 공식행사 등에서 따로 착용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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