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남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은 친척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어서, 친척의 영지가 있는 시골에 오게 됩니다. 이 곳에서 오네긴은 나름대로 마음이 맞는 친구 렌스키를 만나고, 렌스키의 약혼녀 올가와 올가의 여동생 타티아나와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오페라 2막의 타티아나의 영명 축일에서, 마침 기분이 좋지 않았던 오네긴은 홧김에 렌스키의 눈앞에서 올가에게 연달아 신청하고, 이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렌스키는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어디로 가 버렸는가, 내 청춘의 나날들은?'은 오네긴과의 결투를 앞두고, 렌스키가 부르는 아리아이지요. 결투에서 오네긴의 총이 렌스키에게 명중해 렌스키가 사망하면서 결투는 마무리되고 2막이 끝납니다.
표트르 베찰라가 2013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에서 '어디로 가 버렸는가, 내 청춘의 나날들은? 을 부릅니다. 영어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어디로 가 버렸는가, 내 청춘의 나날들은?'의 러시아어-한국어 번역 대역 대본입니다. 번역 출처는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입니다.
2막에서 타티아나의 영명 축일을 기념해 연회가 열리는데, 오페라 내에서는 매일같이 변함없는 일상만 계속되던 시골에서는 나름대로 성대한 행사처럼 묘사됩니다. 손님들을 대거 초청하며, 축시를 낭송하고 무도회를 여는 등 갖가지 축하 행사가 다채롭게 진행되지요. 시골에서 변변한 사교행사도 없는 것처럼 묘사되던 집안에서, 딸의 영명 축일이라는 기념일을 위해 대대적으로 연회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근대 러시아에서, 이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영명 축일은 명명 축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중세 이래 기독교에서 사실상 개인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로 여기던 연례행사였습니다. 중세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탄생일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기념일을 예로 들면,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은 별달리 의식하지 않았으며,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등을 훨씬 중요한 행사로 여겼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생일을 별반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사람이 태어난 날보다 죽은 날과 장례식 날짜에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생일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 연례행사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영명 축일입니다.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기독교 성인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 자기 이름의 유래가 된 성인의 기념일을 개인이 따로 기념하게 되는데, 이것이 개인의 영명 축일이 됩니다. 영명 축일을 기념하는 것은 자연히 생일 축하에 비해서 종교적인 분위기가 훨씬 강했고, 영명 축일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은 중세 이래 영명 축일은 개인 기념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종교적 행사에 가깝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카톨릭계에서 생일 대신 영명 축일을 개인 행사로 기념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면서, 이 풍조가 일상생활로 더한층 정착됩니다.
근대 유럽에서 '개인'이라는 존재가 점차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탄생일을 기념하는 풍조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와 궤를 같이하여 '생일보다 중요한 개인 기념일이자 종교적 관습'이라는 영명 축일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종교색도 희석되어갔습니다. 20세기 이후 카톨릭 문화권에서 영명 축일은 더 이상 개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로 여겨지지 않고 있으며, 기념하는 경우에도 종교적인 면을 딱히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영명 축일이 20세기 초까지도 여전히 생일보다 중요한 기념일로 여겨졌습니다. 러시아도 일단은 기독교 계열 종교를 믿지만, 천여년 전에 카톨릭과 갈라진 그리스 정교가 원류인 러시아 정교를 믿습니다. 러시아 정교 문화에서는 이름을 짓는 것도 종교의식의 일환처럼 여겨졌는데, 러시아 관습을 따른 신생아 작명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톨릭 성인들이 그렇듯이 많은 러시아 정교의 성인들은 각자 기념 축일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의 탄생일을 전후한 날짜에 기념 축일을 가진 성인 중에서, 부모가 마음에 드는 성인의 이름을 택해서 아이의 이름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는 기존 러시아 정교의 성인과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고, 아이의 이름을 따온 성인의 축일을 기념하는 것이 바로 영명 축일 행사가 되는 것이지요.
<예브게니 오네긴> 오페라 2막의 타티아나 영명 축일 장면에서, 렌스키가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하면서 분위기가 난장판이 되면서 영명 축일 행사는 사실상 중단되는데, 영명 축일이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를 의식하면 이 장면의 무게감이 남다르게 보입니다. 일상적인 무도회 같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로 치면 생일 파티를 그런 식으로 망쳐버린 셈이 되었던 거지요. 설사 일상적인 스캐줄이었다고 해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경악할 일이기는 하지만, 1년 중에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기념일이었다면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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