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오페라 공연은 1598년 그리스 비극을 소재로 하여 피렌체에서 상연된 <다프네>이며, 악보가 남아있는 작품 중에서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작곡하여 1607년 만토바에서 초연된 <오르페오>가 최초입니다. 피렌체도, 만토바도 모두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문화가 꽃피웠던 도시지요. 꽃의 도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피렌체는 설명을 덧붙일 필요조차도 없을 정도이며, 만토바도 만테냐가 활동했던 도시이자 문화 후원자로 유명한 이사벨라 데스테의 도시입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수백년 동안, 이탈리아풍으로 화려한 아리아와 배경음악 연주를 곁들이는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작곡되고 공연되었습니다. 이탈리아와 연고 없이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 작곡되고 공연되는 오페라도, 이탈리아어로 불리는 것이 관례처럼 자리잡았을 정도였습니다. 아리아 '울게 하소서'로 유명한 헨델의 1711년작 오페라인 <리날도>를 예로 들면, 독일 태생의 작곡가가 영국에서 영국 관객들을 위해 창작된 작품이지만,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부릅니다.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서민 문화이던 오페라가 외국에서는 상류층 및 교양계층만이 향유하는 고급 문화로 통용된 것도, 언어 문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지요. 이탈리아어를 따로 배운 적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는 일반인이라면, 오페라를 감상하는 데 애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까요. 17-18세기 동안 이탈리아 외에 자국어로 된 오페라를 공연한 나라는 프랑스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http://blog.daum.net/ariesia/9 이 시기의 프랑스 오페라는 편의상 오늘날 오페라로 분류할 뿐, 당대 프랑스인들은 오페라라는 명칭을 쓰지도 않고 '서정 비극'이라고 불렀습니다. 이탈리아풍 오페라와는 분위기도 젼허 다르고요. 모차르트 이후 100여년 동안 수많은 오페라 작품이 나왔지만, 바그너 이전에 유명한 오페라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이탈리아풍 오페라 스타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로 작곡되는 것이 관례였다고 정리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 이탈리아어를 따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국어로 작곡된 극음악 작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후반부터입니다. 독일어로 된 징슈필이 태동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기지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요제프 2세는 서민들을 위한 자국어 극음악 작품을 정책적으로 후원하기도 했지요. http://blog.daum.net/ariesia/39 하지만 자국어 오페라는 오히려 '외국어도 모르는 천것들이나 즐기는 것'쯤으로 여겨졌고, 오페라가 아니라 오페라를 조잡하게 흉내낸 것쯤으로 무시하기 일쑤였습니다.
가장 유명할 사례는 아마 모차르트(1756~1791)일 텐데,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으로 독일어 문화권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오페라는 거의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작곡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7대 걸작이라 불리는 일곱 작품이 <이도메네오>, <후궁 탈출>,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티토 황제의 자비>, <마술피리>인데, 이 중 <후궁 탈출>과 <마술피리>만이 독일어로 작곡되었고, 다른 작품들은 모두 이탈리아어로 작곡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일화를 더 언급하자면, 사회성이 없고 말할 때 감정적으로 툭툭 내뱉듯이 말하는 바람에 오히려 적을 만드는 성품이었던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어 오페라를 작곡할 때마다 사교계 및 사교계의 후원을 받던 기존 인기 작곡가들에게서 극심한 견제를 받았는데, 독일어로 징슈필을 작곡할 때에는 그런 방해공작이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기준에서, 독일어로 작곡한 징슈필은 '오페라'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페라 작곡가들이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거지요.
하지만 19세기 들어서, 오페라를 자국어로 번역하고 공연하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이탈리아 이외의 나라에서 자국어로 번안해 공연하기도 하고,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 외국어로 작곡된 작품을 이탈리아에서 공연할 때에는 이탈리아어로 번안해 상연되기도 했습니다. 최초로 자국어로 번역한 오페라 공연이 언제 어디서 상연된 공연이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확실한 것은, 음반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하던 20세기 시점에서는, 오페라는 자국어로 부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레나타 테발디는 http://blog.daum.net/ariesia/11 독일어로 노래부른 적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작곡가별로 테발디가 공연한 횟수를 분류하면 바그너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바그너의 작품을 많이 불렀는데,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은 테발디가 이탈리아어로 번안된 바그너의 작품을 수십 차례 공연했던 결과였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 테발디는 칼 뵘이 지휘한 바그너 작품 <탄호이저>를 http://blog.daum.net/ariesia/103 무대에서 노래한 적이 있고, 이 공연은 실황 음반으로도 남아 있는데, 이 공연에서는 독일 태생의 성악가 한 명만이 독일어로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가수진은 전원 이탈리아어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도 바그너의 작품인 <파르지팔>을 이탈리아어로 공연한 실황 녹음이 전해지고 있으며, 프랑코 코렐리는 비제의 <카르멘>을 이탈리아어로 번안해 부른 영상물을 남겼습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어권에서도 번안 풍조가 일반적이었는데, 드보르자크의 체코어 오페라 <루살카>나, 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등 외국어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해 공연한 녹음 및 영상물이 여럿 현존합니다.
오페라는 19세기 중후반부 즈음부터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급속히 보급되고 대중화되었는데, 이런 번안 풍조도 오페라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외국어를 모르는 평범한 사람도,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오늘날 오페라는 원어로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며, 거의 대부분의 오페라는 외국어 원어로 공연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을 다시 이끌어낸 사람은, 20세기 음반산업에서 지휘자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인물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었습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30세이던 1938년에 찍은 사진입니다.
외국 오페라를 자국어로 번안해 부르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시절인 1956년, 카라얀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명성 높은 극장인 빈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합니다. 카라얀이 이 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한 기간은 8년에 불과했습니다만, 카라얀은 이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이후 세계 오페라 공연의 판도를 뒤바꾸는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독일어권인 빈 슈타츠오퍼의 극장에서, 이탈리아 작품을 공연할 때에는 이탈리아어로 공연하게 한 것입니다. 카라얀의 혁신적인 시도, 혹은 초연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복고적인 시도는 당대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고, 이후 오페라 작품은 작곡가가 작곡했던 언어로 공연하는 것이 관례가 됩니다. 그것이 작곡가의 본래 의도를 살리는 길이며, 무리하게 외국어로 번안하는 것은 원작의 작품성을 훼손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입니다.
오늘날 번안 오페라는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처럼 아동 대상으로 공연되는 오페라나, http://blog.daum.net/ariesia/66 극히 드물게 이벤트성처럼 자국어로 번안해 부르는 경우를 제외하면, 원어 공연이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작곡가가 의도했던 언어로 공연하는 것이, 작품의 감상을 해치지 않는 조치처럼 여겨지고 있지요. 여기에는 자막 스크린 기술이 발달하여, 자막만 있으면 외국어 공연도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환경적 요인도 크겠지만, 1차적으로는 원어 공연을 선호하거나 혹은 당연시하게 된 인식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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