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전통파와 혁신파

근대 유럽 무대의상의 경향

아리에시아 2016. 1. 2. 11:44

장 피에르 폰넬은 초연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고증한 고전적인 연출로 유명한 연출가입니다. 1980년 폰넬이 연출을 맡은 모차르트의 <티토 황제의 자비> http://blog.daum.net/ariesia/82  의 영상물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영상은 <티토 황제의 자비>에서 고전적인 레퍼런스로 꼽히는 공연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전지식 없이 폰넬이 연출한 <티토 황제의 자비>를 보면,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기 십상입니다. 2천년 전 로마를 배경으로 로마 황제와 로마 군인 등이 등장하는 오페라인데, 고대 로마 의상과는 완전히 다른 옷을 입고 나오니까요.

 

구글 검색으로 찾은 1980년 폰넬이 연출한 <티토 황제의 자비> 공연 영상의 스틸입니다. 작품 후반부에 감옥에 갇힌 세스토와 티토 황제가 만나는 장면입니다. 죄수복은 그나마 고대 로마의 평민 의상인 투니카와 비슷하게 생기기라도 했는데, 티토 황제의 의상은 기원후 1세기경 고대 로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옷입니다. 머리모양도 마찬가지고요. 기원후 1세기 경에는 저런 가발을 쓰지도 않았고, 저렇게 말아올린 머리모양도 하지 않았습니다.

 

폰넬처럼 초연 당시의 고증을 철저하게 지킨 연출로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티토 황제의 자비>의 공연 장면입니다. 폰넬의 영상에서는 여성 가수가 무대의상을 입은 장면의 고화질 스틸을 찾지 못해, 폰넬의 영상과 의상 및 분위기가 거의 비슷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이 스틸에서 갑옷풍 남성 복장에서는 그나마 고대 로마 갑옷과 비슷한 디테일이 있기는 하지만, 옷소매 등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고대 로마 복식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고대 로마 갑옷에서 차용한 부분이라도 있는 남자 의상과 달리, 여성 배역의 의상은 역시 고대 로마 시절 의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옷이고요.


 

고대 로마 시절에는 스톨라, 토가 등 천을 두른 형식의 옷을 주로 입었습니다. 저렇게 복잡한 재단의 의상은 그 시대에 만들지도 못했고요. 그런데 저 의상들에는 고대 로마 복식과는 무관하다는 것 외에도 또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갑옷풍 의상을 제외하면,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의상입니다. 티토 황제의 의상은 18세기경 남성 귀족과 왕족들이 입었던 쥐스토코르와 매우 비슷하고, 비텔리아의 드레스도 18세기 유럽 드레스를 그대로 가져온 디자인입니다. 18세기 유행했던 로코코 풍의 드레스로, 레이스와 리본 등의 장식이 잔뜩 달려 있는 풍성한 의상입니다. 이 의상들은 18세기 중후반 유럽 의상을 충실히 고증하고 재현했으며, 당장 18세기 사교계에 입고 나가도 위화감이 없을 옷들입니다. 그런데 이건 이것대로 문제지요. 도대체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1734년 만들어진 대본을 토대로 작곡한 작품에서, 왜 18세기 후반의 의상이 연달아 나오는지, 당위성이 없어 보이니까요. 작품 내 대사에서는 로마 운운하는 표현이 여러 번 나와서, 더욱 위화감이 듭니다.

 

 

폰넬은 비단 <티토 황제의 자비>에서만 이런 의상으로 공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다른 작품인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에서도 가수들에게 이런 의상을 입히고 노래부르게 했지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신동이라는 이미지로도 유명한 작곡가입니다. 처음 작곡한 때가 5살 때였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일화는 신빙성이 다소 의심되지만 7살 때에 작곡한 악보는 현존합니다. 그리고 오페라 형식의 작품을 처음 작곡한 것은 11살 때로, 일종의 학교 졸업공연용 작품을 주문받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대중에게 공연된 오페라를 처음 작곡한 것은 14살 때였지요. 14살 때 작곡한 모차르트 최초의 공연용 오페라가 1770년 초연된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 Mitrisate, re di Ponto>라는 작품입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1986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고 장 피에르 폰넬이 연출한 영상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는 기원전 63년, 폰투스 왕국의 왕이었던 미트리다테스 6세의 일화를 원전으로 삼은 작품으로, 폰토와 미트리다테는 각각 폰투스와 미트리다테스의 이탈리아어식 발음입니다.

 

폰넬은 1986년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의 공연 영상에서 연출을 담당했습니다. 이 공연 영상에서 가수들은 다음과 같은 옷을 입고 나옵니다.

 

이번에도 고대 로마 갑옷과 비슷한 디테일이 있기는 하지만, 2천년 전의 옷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고, 옷소매 등에서 18세기 남성 의상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이 많은 의상 디자인입니다. 머리 스타일도 18세기 중후반에 유행했던 가발을 쓰고 있지요. 그리고 갑옷풍 의상 외에 다른 의상들은 하나같이 18세기 중후반 유럽의 유행을 따른 옷입니다.

 

18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엄연히 고대 로마와 그 주변국을 무대로 한 작품의 공연의상입니다. 그것도 시대 배경을 바꾼 연출은 지양하고.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연출과 철저한 고증으로 유명한 연출가가 연출한 공연에서요.

 

 

고전적인 연출로 유명한 폰넬이 왜 2천년 전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에서 18세기풍의 의상을 입혔는지, 고대 로마가 배경인 오페라에서 왜 고대 로마 의상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지, 아예 시대설정이 중구난방인 것이면 모를까 왜 18세기경 의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인지, 당혹한 기분이 들기 쉬운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작품이 초연되었던 1770년 즈음의 무대의상은 저러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18세기풍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폰넬은 고대 로마 의상에 대해 전혀 몰라서가 절대 아니라, 초연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18세기풍 의상을 택한 것이지요.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옛날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에서도 당대의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공연이든, 고대 로마 역사를 소재로 한 공연이든, <광란의 오를란도> 등 기사 사서시를 소재로 한 공연이든, 18세기 의상을 입고 공연했던 겁니다.

 

모차르트 시대가 유별났던 것이 아니라, 근대 유럽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일반적이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삽화에서 옛날 사람을 묘사할 때에는 거의 예외없이 중세 시대의 옷을 입고 나왔습니다. 르네상스 시기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을 다룬 <줄리어스 시저>를 비롯해서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여럿 있는데, 당대 무대에서는 고대 로마 시대의 의상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옷을 입고 공연했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곁들인 연극이라는 아이디어로 출발했던 오페라에서도 이런 경향이 그대로 적용되었으며, 옛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공연할 때에도 공연되던 시기의 의상을 입고 공연했습니다.

 

중세 작가인 하인리히 폰 펠데케는 1175년 고대 로마의 시조 아이네이아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사문학 <에네아스 Eneas>를 썼는데, <에네아스>의 중세 필사본 삽화에서는 이처럼 사슬갑옷 등의 중세식 의상을 입고 등장합니다. 비단 삽화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세 시대 문학에서는 아이네이아스 등 옛날 사람이 나오는 대목에서도, 사슬갑옷 등의 중세식 의상을 입었다는 서술이 나오곤 합니다.

 

 

이런 경향이 바뀐 것은 근대 프랑스의 배우인 프랑수아 조제프 탈마(1763-1826) 때부터였습니다. 탈마는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연극에서 고대 로마의 남성 복장이었던 토가를 입었는데, 기록으로 남은 사례 중에서는 거의 최초였습니다. 탈마가 최초로 시대 고증을 따른 의상을 입었는지는 약간 논란이 있습니다만, 이런 경향을 최초로 정착시킨 사람이라는 것은 현재로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연극 <킨나>를 공연하면서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남성 의상인 토가를 착용한 탈마의 모습입니다.

 

연극에서는 이처럼 고증을 따른 의상이 정착된 계기가 명확합니다만, 오페라에서는 다소 불명확합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옛날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것이 정착된 것은 분명합니다. 1853년 초연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초연에서 배우들이 당대의 의상을 입고 등장하자, 관객들이 황당한 반응을 보이며 극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하니까요.

 

이 작품이 초연 때 환영받지 못했던 것에는,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http://blog.daum.net/ariesia/76 <라 트라비아타>가 당대의 폐습을 지적하는 작품이었다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는 것이 주요 원인이었을 공산이 크지만, 당시 극장에는 당대 의상을 입고 오페라 공연을 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낯설게 여겨졌다는 것을 실패 이유로 간주했던 듯합니다. 그리고 당대의 폐습을 직접 다루었다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는 것도, 이런 선상에서 이해했고요. 극장 측에서는 <라 트라비아타>를 재공연하면서, 초연 버전에서 몇 군데를 수정한 버전을 무대에 올렸으며, 시대 배경을 백 년 전으로 바꾸어 루이 15세 시절의 프랑스 의상을 입고 공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재공연이 큰 성공을 거두자, 19세기 중반을 배경으로 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할 때에는 18세기 이전의 이상을 입고 공연하는 것이 관례가 됩니다. 19세기 코르티잔 문화의 모순을 지적한 작품이 졸지에 18세기 베르사유 사교계 시대의 이야기로 둔갑했고, 원작의 사회고발적인 측면도 덩달아 희석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의상 버전이 열렬한 인기를 끌자,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할 때 18세기 중반 즈음의 의상을 입는 것이 표준사항처럼 되어버립니다. 더 이전 시대의 의상을 입는 경우는 있었으나, 베르디가 처음 의도했던 19세기 중반의 의상이 정착된 것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습니다.

 

1855년에 출판된 <라 트라비아타> 대본의 표지입니다. 오페라 맨 마지막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표지 삽화로 들어가 있습니다. 여성 의상은 조금 애매합니다만, 제르몽이 착용한 남성 의상은 명백히 18세기 중반의 의상입니다.

 

1755년 남자 귀족이 입던 의상의 모습입니다. 그림 출처는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1750-1775년 유럽 의상 1750–75 in Western fashion 항목입니다. 18세기 중후반은 화려한 프랑스 귀족 문화라는 이미지가 배경으로 하는 시대이기도 한데, 리본과 레이스 장식이 화려한 풍성한 로코코 드레스나 금실자수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총천연색 남성 의상인 쥐스토코르 등의 이미지로도 유명한 바로 그 시대입니다.

 

1909년 <라 트라비아타> 공연의 주요 장면을 담은 연작 석판화의 한 장면입니다. 2막에서 남주인공 알프레도의 아버지인 조르조 제르몽이 알프레도에게 <프로벤자 네 고향으로>를 부르는 장면인데, 17세기 초중반에 유행했던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뒤마의 <삼총사>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삼총사> 영화나 삽화의 의상과 비슷한 의상이지요.

 

 

오늘날에는 고전 오페라를 공연하면서 현대 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현대적 연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고증한 의상은 고전적 연출로 분류되고요. 시대배경이 어떻건 당대 의상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옛날이 무대면 옛날 옷을 입었던 것이 혁신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런 경향이 묘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요즘 현대적 연출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고증을 따른 고전적 연출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생길 지경입니다. 시대음악과 고음악 분야에서도 그랬듯이,  http://blog.daum.net/ariesia/33 당대 풍조에서 혁신적이었던 것이 결국에는 훨씬 더 이전의 복고풍과 맞닿아 있다는 것과, 그런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은, 예술계에서 여러 번 목격되는 일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