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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려나간 그림들-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등

아리에시아 2016. 8. 27. 11:51

세상에서 가장 유명할 그림은 아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 리자>일 것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이 초상화는 이례적으로 단 한 점의 작품만을 위한 별도의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몇 중의 안전장치로 엄중하게 보호되어 있지요. 신비로운 미소와 몽환적인 풍경 묘사로 유명하며, '모나리자의 미소'는 거의 일반명사처럼 통용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모나리자> 특유의 신비한 이미지는, 이 작품에 대해 알려진 것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렸다는 것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죽을 때까지 소장하고 있었다는 외에는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조르조 바자리의 <르네상스 예술가 열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조콘도라는 피렌체인과 혼인한 리자라는 여성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해당 대목에서는 초상화의 모델인 리자 부인이 웃는 표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광대들을 불러 공연하는 장면을 모델에게 보여주었다는 등의 구체적인 일화도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인 <모나리자>는 '리자 부인'이라는 뜻이고, 작품이 소장된 프랑스에서는 '조콘다 부인'이라는 뜻의 <라 조콩드>라고 불리는데, 바자리의 기술에 근거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지만 바자리의 책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다룰 때 대리석 조각을 청동조각이라고 하는 등 오류가 너무 많았고, 바자리의 책 외에는 이 초상화가 조콘다의 아내인 리자 부인을 그린 작품이라는 당대 언급이 전무해서, 바자리의 설명을 온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는 평이 많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초상화라면, 주문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화가 본인이 죽을 때까지 소장했다는 것도 미심쩍은 부분이지요. 그래서 현재는 <모나리자>의 모델이 누군지는 불명으로 남아있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불린 이름이라서, 아직도 '조콘다의 아내 리자 부인'이라는 뜻의 <모나리자>나 <라 조콩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입니다. 


그런데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원작이 아니라, 후대의 모작이나 복사화일 것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예전에 그렸던 그림을 한 번 더 그렸거나, 아예 레오나르도 다 빈치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원작을 그대로 복제해 그린 그림이지, 원본은 아닐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이 제기된 결정적인 계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함께 르네상스 미술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산치오 라파엘로가 남긴 스케치였습니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고 이 작품을 모사한 간단한 스케치를 그렸는데, 이 스케치에서는 현존하는 <모나리자>와 작품의 구성에서 다른 부분이 보입니다.


라파엘로가 <모나리자>를 스케치로 모사한 작품입니다. 옷의 모습이나 전체적인 자세 등이 조금씩 다르며, 작품 배경에 한 쌍의 기둥이 그려져 있습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에는 기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라파엘로가 직접 본 <모나리자>와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다른 작품이라는 주장에 중요한 근거로 언급됩니다.



이에 대한 현재 정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본 작품과 모사 스케치에서 머리 모양과 옷 모습의 디테일이 다른 것은, 간략하게 모사하느라 변형시켰다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흔히 언급되는, 배경에 한 쌍의 기둥이 놓여 있다는 것은, <모나리자> 원작의 양옆이 잘려나가면서 기둥 부분이 잘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 배경에는 테라스 난간 같은 구조물이 그려져 있고, 그 뒤로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려진 몽환적인 자연 풍경이 배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테라스 난간 같은 그 구조물 위에, 작품 모서리 부분에 작고 검은 덩어리 같은 것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검은 덩어리가 원래 기둥의 받침으로 그려진 부분이고, 받침도 있었으니만큼 기둥도 원래 있었는데, 그림 양옆이 잘려나가면서 기둥 부분도 잘려나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해명은 이것대로 당혹스럽습니다. 그림을 자르다니,현대 관점에서는 작품을 훼손하는 것이잖아요.



화가의 작품을 '보존해야 할 예술작품'으로 여기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만 해도 일종의 장식품쯤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오래된 장식품을 취향대로 개조하듯이 작품에 손대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훼손되었을 경우 훼손된 부분을 잘라내거나, 작품을 전시할 공간에 맞추기 위해 전시공간의 규격에 맞춰 작품의 일부분을 잘라내기도 했습니다.


<모나 리자>는 나무판에 그려진 그림이었고, 오늘날에도 훼손이 심각해서 특수한 보존환경을 면밀하게 갖춘 전용 전시실에 사실상 밀폐 상태로 전시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무판 가장자리 즈음, 즉 작품 바깥쪽이 손상되자, 아예 가장자리 부분을 잘라내버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옆에서 기둥이 그려진 부분을 비롯해 가장자리 부분이 잘려나간 뒤에 남은 부분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나리자>라는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다른 작품 중에서도, 작품을 '잘라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지네브라 데 벤치라는 여인의 초상화입니다. 초상화 중에는 흔치 않게 정사각형 비율의 화폭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래 관례대로 직사각형의 화폭에 그려졌는데, 훗날 작품 아랫부분을 잘라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가슴 아래쪽 부분이 훼손되어서 잘라냈거나, 혹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흉부 쪽은 완성하지 않은 상태로 죽었기에 미완성된 부분은 잘라내고 완성된 부분만 남겼을 것이라는 추측이 거의 정설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추측의 첫번째 근거는 정사각형 비율의 화폭이 파격적일 정도로 독특하기에 당대의 일반인인 초상화 주문자에게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고, 두번째 근거는 이 초상화의 뒷부분에 그려진 그림 때문입니다.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의 뒷부분입니다. 두 줄기의 식물이 그려져 있는데, 식물이 그려진 아랫부분이 원래 따로 있었는데 훗날 잘라낸 것으로 보이는 구성으로 구려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저 위치로 식물을 그렸다고 생각하면, 지나치게 부자연스럽습니다. 글씨가 쓰여진 깃발도 너무 아랫쪽에 위치하게 되고, 두 줄기의 식물이 위쪽에서 맞닿게 그려져 있으면 아랫쪽에서도 서로 맞닿게 그리는 것이 대칭구도 등에서 훨씬 안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있으니까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또다른 작품인 <라 벨 페로니에르>도, 이런 면에서 비슷한 운명을 맞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입니다. 페로니에르는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한 머릿장식의 이름인데, <라 벨 페로니에르>는 '아름다운 페로니에르'라는 뜻입니다. 누구를 그린 초상화인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머릿장식을 작품 이름으로 삼아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림 아랫부분에 테라스 난간 같은 구조물이 가로지르고 있는데, 이 난간 같은 부분은 훗날 덧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랫부분이 훼손되었거나, 아니면 미완성된 부분인데 작품을 완성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무성의하게 구조물을 덧칠했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이 작품을 언급할 때, 레오나르도가 손 부분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미완성된 작품을 취득한 측에서 이 작품을 완성작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팔 때 유리하다고 생각해서, 미완성된 부분을 무성의하게 덧칠했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처럼 쓰여진 적도 있습니다. 가능성이 높은 현실적인 시나리오이기는 한데, 일단 문서 등으로 입증된 적은 없습니다. 



르네상스 초기 미술가인 파울로 우첼로의 대표작, <산 로마노의 전투>는 '전시공간의 규격에 맞추어 작품을 잘라낸' 사례입니다. <산 로마노의 전투>는 원근법을 본격적으로 시험해보기 시작한 거의 첫번째 작품으로, 미술사적인 의의가 큰 그림입니다.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의 자연스러운 원근법에 익숙한 눈에는, 원근법을 너무 강조하느라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구도로 그려진 그림으로만 보이기 쉽지만, 당시로는 엄청나게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원래 아치형 천장을 가진 공간에 설치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었고, 따라서 직사각형 화폭이 아니라, 세 면은 직선이지만 윗면은 둥근 형태의 화폭에 그려진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메디치 가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이 작품을 취득한 이후, 메디치 가의 저택 구조에 맞게 작품을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윗부분은 잘라내 버립니다. 잘라낸 부분은 따로 보관하지 않고 버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늘날에는 파편이나 모사 스케치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한동안 이런 경향은 계속되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최고 화가인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간순찰대>도, 그림이 잘려나가는 비극을 겪은 적 있지요. <야간순찰대>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그림이라 주문자에게 계약이 파기당하시피 했는데, http://blog.daum.net/ariesia/104 나중에 다른 장소에 전시되기로 결정된 뒤에는 전시장소의 규모에 비해 그림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모서리 부분이 잘려나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야간순찰대>는, 양옆이 잘려나가고 작가의 의도와 구성이 훼손된 상태의 작품입니다.


<야간순찰대>의 현재 모습입니다.


<야간순찰대>의 원래 모습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가장자리 부분에 흰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 선 바깥 부분이 잘려나간 부분이고, 흰 선 안의 부분이 현존하는 <야간순찰대>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