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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낙제생설, 배경을 명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성

아리에시아 2016. 5. 28. 11:57

아인슈타인이 한때 낙제생이었다는 이야기는 은근히 널리 퍼져 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이전 중고등학교 과정에 다닐 무렵에, 아인슈타인은 대부분 과목에서 낙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릴 때에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사람이 오히려 진정한 천재일 수도 있다는 식의 편견이 언급될 때, 근거처럼 언급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진상부터 정리하자면, 이 소문은 사실과 다릅니다. 아인슈타인은 한국 교육과정으로 비유하면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미적분 과정에 통달했고,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무작정 외국 대학교 입학시험을 쳤는데 조건부 입학허가를 받았을 정도의 수재였습니다. 오히려 낙제와 인연이 있었던 시기는 대학교 때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교 3학년 과정 즈음부터 자신이 스스로 자습하는 것보다 실속없다고 판단한 강의에는 결석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실기 강의를 빼먹기도 했습니다. 이론 계열 강의는 아인슈타인이 친구 노트를 빌려 벼락치기 공부하는 것으로 떄웠지만, 실기 계열 수업은 그럴 수도 없었고, 결국 실기 계열에서는 거의 낙제점수를 받기도 했지요. 아인슈타인은 대학교 졸업시험을 통과했을 때에도, 통과자 중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대학 재학 후반기에 아인슈타인의 성적이 나빴다는 것을 언급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최소한 '아인슈타인은 낙제생이었다'라는 소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요.



기묘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낙제생이었다는 것은 정리하자면 사실무근이지만, 그렇게 여길 만한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겁니다.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것보다, 근거를 정반대로 해석하고 오해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요.



아인슈타인은 중고등학교(김나지움) 과정은 독일에서, 대학은 스위스의 취리히 연방공대애 다녔습니다. 그런데 독일과 스위스의 점수 체계가 달랐습니다. 당시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점수를 1에서 5까지의 숫자로 나타냈는데, 독일에서는 1이 가장 높은 성적이며, 숫자가 클수록 성적이 낮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반대로 점수 1-5중 5점이 만점 성적이고, 숫자가 작을수록 낮은 성적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독일 중고등학교 과정에 재학하던 시절, 대부분의 과목 성적이 1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뜻했지만, 스위스 기준에서는 낙제에 가까운 성적으로만 보였을 겁니다. 한국으로 치면 수, 우, 미, 양, 가의 5등급 성적시스템에 익숙한 사람이, 가, 나, 다 3등급 성적시스템에서 '가'가 많이 나온 성적표를 보고, 성적이 안 좋다고 오해하는 경우에 비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에 머무르던 시절에는, 아인슈타인이 독일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받았던 성적표를 보고 아인슈타인이 낙제생이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실제로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의 시스템을 아무런 시전지식 없이 자국 잣대에 맞춰서 대충 넘겨짚다가, 오히려 실제와 정반대의 결론을 도출하게 된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비단 아인슈타인 낙제생설에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문화적 배경 등을 이해하면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배경지식 없이 주관적인 잣대로 정리하다가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이것이 소문이 되어 퍼지는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그리고 한 번 소문이 퍼지면, 어느새 유명해졌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처럼 여겨지기도 하지요. 현재에도 아인슈타인이 한때 낙제생이었으며, 어릴 때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은 진정한 천재라는 의미일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