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소녀문학전집 등으로 수십 편의 문학작품을 묶은 시리즈는 정말 많지만, 대부분은 아동용이나 청소년용으로 개작되고 축약된 버전이었습니다. 이런 책들이 완역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요. 일명 세계명작 중, 2000년 이전에 완역본이 출간된 적 있는 책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완역본으로 보면 개작본이나 축약본에서 생략된 부분이 많아서, 원작의 감동에는 못 미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데, 그런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나름대로 인상적인 인물이 확 축소되기도 하고, 선악구도를 강조하다 보니 원작에서는 악당이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 졸지에 악역을 맡게 된다거나, 이런 식의 사태가 비일비재하지요. 게다가 원작에서는 많은 사건이 일어나는데, 축약한답시고 원인과 결과만 덜렁 써 놓는 식으로 개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래서 아동용 판본을 본 후에 완역본을 보면, 거의 다른 이야기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지요.
예를 들어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가 장발장을 쫓아다니는 것은, 당시 법률상 전과자는 자신의 소재지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는데, 장발장은 후속보고를 하지 않고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장발장은 당시 사회 관점에서는 새로이 또 법을 어긴 셈이었고, 자베르 입장에서는 범법을 저지른 사람을 쫓는 게 됩니다. 하지만 개작본이나 축약본에서는 이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서, 개작본만 보면 자베르가 장발장을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쫓아다니는 것처럼 보여서, 오히려 자베르가 악역처럼 보이게 되지요. 탈옥한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출소했는데 전과자라고 자꾸 좇아다니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요. 2012년의 뮤지컬 영화에서는 원작에서 생략한 부분이 많았지만, 이 설정만은 여러 번 강조하는데, 덕분에 자베르가 장발장을 쫓는 당위성이 확연히 강조되지요.
<삼총사>의 리슐리외 추기경도 아동용 판본에서는 악당처럼 묘사될 때가 많고, 프랑스의 중흥을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 실존인물 리슐리외와 비교하면 역사왜곡 수준입니다. 하지만 원작 완역본을 읽으면, 리슐리외가 악당이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지요. 삼총사 일행의 상사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자기 할 일은 성심껏 하며 통찰력도 있는 멋진 인물로 그려지니까요. 삼총사 일행의 입장에서도 밀라디같은 인물을 굳이 부하로 두고 있다는 점 정도를 제외하면, 추기경 개인에게는 별다른 악감정은 없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돈 키호테>도 어린이용 판본에서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보고 거인이라며 달려드는 식의 '모험담'만 편집해 엮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원작 완역본과 다른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돈 키호테> 완역본에서 돈 키호테는 기사소설 이야기를 할 때를 제외하면 상식적인 지식인으로 등장하며, 사람들에게 유용하고 현실적인 충고도 많이 하는 인물입니다. 기사 행세 하는 부분도, 기사도 소설의 묘사에 나오는 것을 현실로 여기고 따라하려 하는 것인지라, 엉똥한 괴짜라기보다는 소설과 현실의 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쪽에 훨씬 가깝고요. 하지만 돈키호테의 기사 활동 이야기만 따로 놓고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지요.
이런 경향이 심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수준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본 것 중에서는 <파우스트>가 원작 개작이 가장 심한 사례였습니다. 제가 본 <파우스트> 청소년 판본 중에서는, <파우스트> 1부 후반부부터는 거의 새로 써낸 버전이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냐 하면, 파우스트가 그레첸의 오빠 발렌틴을 결투하다 죽인 뒤로, 파우스트는 그 마을에서 종적을 감추고 새로운 나라에 나타납니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텔레스의 도움을 받아 한 나라의 재상 같은 직위를 받아서 악마의 능력으로 나라를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었는데, 거기에 그레첸이 나타나 파우스트를 구한답시고 메피스토텔레스가 악마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그레첸이 오히려 마녀로 몰립니다. 그리고 그레첸이 마녀로 화형당하게 되자, 파우스트가 그걸 보고 그 "시간아 멈추어라"라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메피스토텔레스는 계약이 끝났다며 파우스트를 데리고 지옥으로 가려고 하지만, 천상에서 파우스트가 구원받았다면서 파우스트가 천국에 가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전 저 청소년용 판본만 보고 나중에 <파우스트> 원작 완역본을 봤다가, 얼마나 황당해했는지 모릅니다. 그레첸이 왜 발렌틴 죽은 직후에 죽지? "시간아 멈추어라"가 이런 상황에서 한 말이었어? 헬레네니 오이포리온이니 하는 캐릭터들은 왜 갑자기 나오는 거지? 이런 의문이 연달아 나왔더랬지요. 일단 <파우스트> 원작 완역본에 비하면 내용 자체는 이해하기 쉬웠고, 청소년 감성에는 <파우스트> 원작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감동적일 스토리이긴 했는데, 이럴 거면 괴테 이름을 왜 작가 이름에 표기했는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괴테 원작의 평역이라고만 해도 그나마 납득이 가겠는데, 저자 괴테에 번역가 누구누구라는 식으로 쓰여져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작품이 쓰여질 당시의 사회 정서나 문화를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 부분을, 개작본에서 현지화하듯이 바꾼 경우에는, 오히려 원작 완역보다 더 와닿기도 합니다. <소공녀> 원작에서는 세라가 인도인 하인을 '사히브'라는 인도식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라가 인도에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고, 이것이 세라의 신분이 밝혀지는 단초가 되지요. 그런데 제가 본 아동용 판본 중에는, 세라가 인도인 하인이 있는 곳에서 인도어를 쓰는 것을 보고, 세라가 인도에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사히브라는 인도식 용어가 등장하는 것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와닿는 디테일이지요.
엄밀히 따지자면 대체 인도어라는 것이 어떤 언어인지를 걸고 넘어져야 할 겁니다. 공용어만 15개에 지방 방언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인도어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요. 하지만 10대의 눈에는 이게 훨씬 와닿았지요. 여담이지만 그런데 막상 이 <소공녀> 번역본에서는, 민친 선생이 세라가 몇 살만 더 먹으면 무급 프랑스어 교사로 부려먹기 위해서 내쫓지 않았다는 원작 묘사는 생략했더랬습니다. 교사 고용할 돈은 돈대로 아끼고, 갈 곳 없어진 아이를 거두어줬다는 것을 미담처럼 포장해서 홍보요소로 써먹을 게획이었지요. 그래서 전 <소공녀> 완역본을 읽을 때까지, 민친 선생이 세라를 내쫓지 않은 것은 어쨌든 최소한의 호의를 베풀어준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더랬지요.
원작에서는 교훈조, 훈계조, 설교조의 서술이 잔뜩 나오는데, 이 부분을 편집하면 훨씬 매끄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요. <하이디>나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읽는데, 툭하면 신께 기도하면 신이 소망을 들어주실 거라는 식의 서술이 나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엄청 깨졌더랬습니다. <작은 아씨들>도 알콩달콩한 네 자매 이야기는 좋았지만,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어머니가 설교나 훈계를 덧붙이는 바람에 분위기가 깨졌고요. 그 자매들이 뭘 잘못했다고 저런 설교를 들어야 하는지, 따지고 싶을 정도였지요. 난데없고 뜬금없어요. <인어공주>의 결말을 안데르센이 개작한 버전도 뜬금없기는 했지만, 최소한 이렇게나마 인어공주가 해피엔딩을 맞았다는 의의라도 있는데 말이지요. <인어공주> 판본은 대부분 인어공주가 거품이 되는 결말로 끝나며, 안데르센이 처음 발표했을 떄의 초판 버전도 이 결말입니다만, 안데르센은 후에 인어공주가 공기의 정령이 되는 결말을 추가했습니다. 공기의 정령이 되어 300년을 보내면 영혼을 얻을 수 있으며, 착한 아이가 있으먼 그 기간이 줄어들고 나쁜 아이가 있으면 그 기간이 늘어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공기의 정령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는 건 둘째쳐도, 지나치게 교훈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는 듯한 분위기 때문에, 이 결말이 분위기 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개작이나 축약도 나름대로 좋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작 완역보다 독자에게는 더 와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려면 우선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첫번째로 원작을 이해해야 하고, 두 번째로는 대상 독자층의 정서나 문화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작 그대로 옮기면 독자층에게 와닿지 않을 부분을, 훨씬 호소력 있게끔 탈바꿈시킬 수가 있지요. 그렇지 않는다면, 그냥 가지를 쳐내서 엉성하게 일부분만 남긴 셈이 되어버립니다. 뼈대만 남겼다면 중심축이라도 남아있는 건데, 중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만 남겨둬서, 아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게 되지요. 그리고 이런 경향은, 비단 문학 번역에서만 해당되는 일도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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