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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 역사의 미화와 상기 사이에서

아리에시아 2015. 11. 28. 11:46

역사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은 셀 수 없이 많으며, 실제 역사에서는 비중이 미미한 역사적 사건이 그 사건을 소재로 담은 예술작품 덕에 대대로 회자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 중에는, 실제 역사 기록과 세부묘사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보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세부묘사를 변형시킨 경우도 있고, 특정한 메시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실제 역사를 변형한 예술품이 높은 완성도를 지녔을 경우, 그리고 그 작품이 워낙 유명해져서 그 작품의 묘사가 실제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경우,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잊혀졌을 역사를 상기시키는 역할과 실제 역사를 특정한 의도에 따라 변형시키는 역할 중, 어느 쪽에 방점을 두어 정의해야 할까요?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은 이 딜레마를 더없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브레다의 항복>은 브레다라는 도시에서 공격군과 수비군이 교전을 벌여, 공격군이 승리하여 브레다의 새 주인이 되는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한 도시가 함락되어 주인이 바뀌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지만, 이 그림에는 살벌함은커녕 오히려 평온함에 가까운 차분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패장이 승장에게 도시의 열쇠를 건네주는 의식을 통해 항복하는 장면인데, 워낙 평화롭게 묘사되어서, 마치 은퇴자가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라도 하는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특히 중심의 두 인물만 놓고 본다면, 더더욱 그렇고요. 전경에 피어오르는 연기, 군복을 입고 창을 들고 주위를 둘러싸듯 있는 인물들이 그나마 전투 직후라는 것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을 제외하고 중심부의 두 인물만 남기면, 전투 직후 전투의 승자와 패자를 그렸다는 것을 눈치채기 힘들 정도입니다.

 

전투 직후에 항복식을 그린 그림이 이토록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에는, 전쟁의 승자가 패자에게 보일 법한 고압적인 분위기가 전무하다는 이유도 한몫할 것입니다. 승장이 일부러 말에서 내려 패장과 같은 눈높이에 섰을 뿐만 아니라, 패장에게 경의를 표하는 제스처까지 취하는 모습으로 연출하여, 승자가 패자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관용을 베푸는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전쟁의 승자라면 말 위에서 자신이 정복한 것들을 내리깔며 바라보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와 명확히 대비되지요. 이 작품에서 승자는 전투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패자에게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기까지 하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중세시대 기사소설의 "기사도"라는 것을 근대 유럽에 적용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지요.

 

 

<브레다의 항복>은 1635년 완성된 작품으로, 이 작품이 그려지기 불과 1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삼은 그림입니다. 1624년 에스파냐가 현재의 네덜란드 지역에서 전쟁을 벌여 무수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 중 브레다라는 도시를 함락하는 데 성공한 사례를 그림으로 그렸지요. 브레다의 이전 주인이었던 위스튀뉘스 판 나사우가, 승장인 암브리시오 스피놀라에게 상징적인 항복 의식으로서 도시의 열쇠를 건네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그림이 그려지기 불과 10년 전에 일어난 일인 만큼, 당시 활약했던 실존인물을 초상화처럼 그려넣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으로서, 17세기 유럽 회화를 논할 때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높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쟁에서 이긴 자가 패자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이미지처럼 통용되기도 하지요.

 

동시에 오늘날 1625년 에스파냐가 브레다를 함락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거의 유일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브레다 함락전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비중을 가진 전투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당대 기준에서도 그랬습니다. 에스파냐가 브레다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전투는 에스파냐 입장에서도 국지전의 작은 승리에 불과했으며, 다른 지역에서의 전투에서는 패한 경우가 훨씬 많았기에,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신사적이고 평온하게 진행된 항복 의식은, 실제 역사에서의 1625년 브레다에서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 벨라스케스는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였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궁정 화가로서, 에스파냐의 영광과 관대함이라는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그림을 그리라는 주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벨라스케스는 그 주문사항을 충실히 충족시킬뿐만 아니라, 미술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훌륭한 완성도까지 갖춘 그림을 그려냅니다. 이 작품이 바로 <브레다의 함락>입니다.

 

이 그림은 명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의 엄청난 작품입니다. 제작 배경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지요. 예술가의 역량에 따라, 프로파간다적 목적을 위해 만든 작품도 기념비적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역사적 배경과 이 작품을 연계해 생각하자면, 예술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많은 물음을 던지기도 합니다.

 

 

별 비중 없는 역사적 사건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 유명해진다면, 역사를 기억시킨 작품이라는 것과 역사를 변형한 작품이라는 것 중, 어느 쪽에 방점을 두어 평가해야 할까요?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 높은 예술성을 갖추었다면, 특정한 의도에 따른 역사적 왜곡과 예술적 성취 중 어느 쪽에 방점을 두어 평가해야 할까요? 역사적 사건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면, 그 완성도가 어떻건 간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역사를 왜곡했다고 비난해야 할까요? 아니면 예술성이 높다면, 역사적 왜곡이나 특정한 목적성 등보다 예술성을 우선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그리고 그런 목적성이 작품 자체에서 예술적 성취를 해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평해야 할까요?

 

<브레다의 항복>이 에스파냐 세력을 미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이, 이 작품을 평가할 때 고려되어야 할 요소인가요?

 

 

<브레다의 항복>만 놓고 보자면, 작품 자체만을 평가하는 관점이 대세인 듯합니다. 에스파냐를 미화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이니까요. 게다가 워낙 세련되게 미화했기 때문에, 오히려 승자가 패자에게 관대하게 대하며 평화롭게 전후처리하는 것을 상징하는 이미지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이 대세가 된 것에는, 역설적이게도 브레다 함락 자체가 역사적으로는 별 비중 없는 사건이라는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유명하고 역사적 의의가 큰 사건을 이토록 실제와 딴판으로 묘사했다면, 실제 사건의 유명세 때문에라도 논란이 될 수밖에 없고, 그 논란이 부담스러워서라도 묻히게 될 개연성이 없지는 않으니까요. 만약 성을 함락한 후 승자가 성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학살한 것으로 악명높은 사건을 저런 식으로 묘사한 작품이 있다면, 과연 작품 자체만을 평가할 수 있을지는, 아무래도 회의적이지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런 언급이 따라다니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