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들어본 적은 있을 만큼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가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르멘>의 '하바네라',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 등이지요. 워낙 유명한데다 광고 등에서도 여러 번 쓰인 음악이거든요.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O, mio babbino caro'라는 아리아도, 유명한 아리아 중의 하나입니다. <잔니 스키키>라는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입니다. 작품 자체의 인기는 미묘하지만, 오페라 콘서트 등에서는 단골 레퍼토리로 사랑받는 곡이지요.
조수미가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부르는 영상입니다. 자막은 없습니다. 포스트 하단에 이 아리아를 부른 다른 영상 중, 한글 자막이 붙어 있는 영상을 첨부했습니다.
감미롭고 서정적인 선율이 인상적인 곡입니다. 아리아의 제목은 대부분의 오페라 아리아가 그렇듯이 가사 첫 줄에서 따 온 것입니다. 이 아리아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구절로 시작하지요.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내용의 제목과 감미롭기 그지없는 멜로디 때문에, 이 아리아가 딸이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노래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버이날 기념식 등의 행사에서 이 노래를 위촉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이 아리아의 가사는 막상 이렇습니다. 가사 출처는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이며, 원본 번역에서 두 군데를 수정한 번역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새창으로 뜹니다.
가사에 나오는 포르타 로사는 직역하면 문이라는 뜻이 되는데, 실제로는 당시 유명한 상점 이름이라고 합니다.
가사만 놓고 보면,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전 그이를 사랑해요, 그이와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노래인 겁니다. 노래만 알다가 처음 가사를 봤을 떄, 기겁할 정도로 놀랐지요.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노래가 아니라,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노래였단 말인가요? 게다가 자기 청원 안 들어주면, 다리에 빠져버리겠다는 말도 하네요. 그런데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내용처럼 알려져 있었다니.
조수미가 2005년 속초 페스티벌에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를 불렀을 때의 영상입니다. 영어 자막과 한글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제목만 아는 상태에서 노래 선율을 들었을 때와, 내용을 알고 자막과 함께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상이 많이 다를 곡이지요.
실제 오페라 내용에서 이 노래가 하는 역할은 한 술 더 뜹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아리아는 <잔니 스키키>라는 오페라에서 나오는 노래입니다. <잔니 스키키>는 <일 트리티코 Il Tritico>라는 3부작 오페라의 3부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일 트리티코>는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라는 단막 오페라 세 작품을 연달아 공연하는 작품이지요.
<잔니 스키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잔니 스키키에게는 라우레타라는 딸이 있는데, 이 딸은 리누치오라는 젊은이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오페라가 시작할 즈음, 리누치오의 부유한 친척이 죽었는데, 그 친척은 모든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한편 라우레타와 리누치오 커플은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버리는 바람에, 리누치오가 죽은 부자 친척의 재산을 물려받아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남자 집안에서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잔니 스키키가 손재주 좋기로 유명한 사람이라서, 리누치오의 친척들은 잔니 스키키에게 유언장을 위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원래 유언장은 전 재산을 수도원에 기증하기로 되어 있는데, 친척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내용의 가짜 유언장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저 이야기를 듣고, 딸 라우레타가 아버지에게 부르는 노래가 바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니까 저 아리아는, 딸이 아버지에게 가짜 유언장을 만드는 계획에 동참해달라면서 부르는 노래였던 겁니다... 그래놓고서 '제 부탁 안 들어주시면 다리에서 뛰어내릴래요' 같은 말을 했다는 거지요... 이런 노래가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유난히 자주 불린다니, 아리아의 가사는 안 보고 제목과 멜로디만 보는 사람이 정말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아리아의 가사는 안 보고 멜로디와 제목만 보면 아리아와 동떨어진 감상을 받고, 아리아의 가사만 볼 때와 작품 전체를 볼 떄의 분위기도 판이한 작품입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특히 극단적인 사례기는 하지만, 유일무이한 사례는 아닙니다. 작품 전체 중 특정 대목만 유난히 유명한데, 막상 그 유명한 특정 대목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동떨어지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오페라 내에서만 봐도, 비슷한 사례는 여럿 들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서도 http://blog.daum.net/ariesia/88 비슷한 감상을 받은 적 있습니다. 유명 아리아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차분하고 느릿한 노래인데, 이 아리아만 접한 상태로 오페라 전곡을 감상했다가 놀랐었지요. 이 오페라는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제외하면, 거의 전 시간 내내 발랄하고 유쾌한 선율이 연달아 이어지는 작품이었거든요.
이 정도는 그래도 해프닝 정도로 끝날 수 있는데, 유명한 부분이 작품 자체의 인상을 바꿔버리는 수준의 상황도 일어납니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가 http://blog.daum.net/ariesia/59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돈 키호테>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돌격하는 장면일 겁니다. 이 장면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돈 키호테는 잘해봐야 자기가 기사 소설 주인공인 줄 착각하며 다니다가 망상에 빠져 민폐를 잔뜩 끼치는 인간쯤으로나 여겨지고, 상황 파악을 못하고 냅다 돌격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하는 표현처럼 통용될 때가 많지요. 오죽하면 '돈 키호테형 인간' 운운하는 표현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돈 키호테>라는 작품 자체가,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돌격하는 식의 웃긴 소동만 가득하다는 식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막상 원작 완역본을 읽어보면, 돈 키호테는 가끔 기사 소설의 내용을 현실로 착각할 때 말고는, 논리적인 상식인다운 면모를 자주 보입니다. 막상 풍차 에피소드는 작품 내에서 별 비중도 없어요. 돈 키호테가 기사 흉내 내다가 민폐를 끼친 게 이런저런 소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그 때에도 풍차 에피소드는 거의 회자되지 않습니다. 풍차 에피소드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돈 키호테> 완역본을 읽으면, 그렇게 유명한 에피소드가 이렇게 비중이 없다는 데에 놀랄 정도지요.
한 작품에 대해서라면, 그나마 침소봉대의 해프닝 수준으로 끝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실존인물이나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해서도, 특히 유명한 한두 가지 에피소드만 널리 회자된 나머지,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지요. 이런 사례 중에는, 심지어 그 유명한 에피소드라는 것이 후대의 소설 등에서 창작된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잠깐 언급한 적 있던 갈릴레이 이야기가 http://blog.daum.net/ariesia/74 좋은 예시가 되겠네요.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유명하고, 동시에 과학연구를 하다가 교황청의 탄압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덩달아 유명해지게 되었는데, 실제 역사에서의 모습은 알려진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지요. 애초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탄압 같은 건 있지도 않았으니까요.
에피소드 등 널리 알려진 일부분 한두 개만 가지고, 전체를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손쉽고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게 실제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일부분은 반드시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전 그런 생각이야말로, 오히려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어떤 사람이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항상 화내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요. 유명한 것과 본질적인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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