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 역사의 만남/오페라 밖의 역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

아리에시아 2015. 10. 31. 11:57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그림자 없는 여인 Die Frau Ohne Schatten>은 일종의 환상 세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없는 여인>은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작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페라 중에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 작품이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무삭제판은 연주 시간이 세 시간 반에 달한다는 것은 차라리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오페라의 이야기 흐름이 복잡하고, 캐릭터성을 대사로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대사나 음악으로 묘사하는 대목이 많으며, 오페라 도중에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지듯이 언급된 이야기의 파편을 모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뒷설정도 있습니다. 부담 없이 연주할 수 있는 작품도 아닙니다. 오케스트라는 100명이 넘어가며, 조금만 삐끗해도 곧바로 티가 나며 음악이 완전히 망가져버리는 대목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래저래 여러 모로 부담스러운 작품이지요. 일단 한 번 빠져들면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지만요.

 

<그림자 없는 여인>은 크게 두 세계의 이야기가 병치되어서 전개됩니다. 한 세계는 환상의 세계로, 황제와 황후가 등장합니다. 1막에서는 환상의 세계, 2막에서는 인간이 사는 현실 세계가 등장하며, 3막에서는 두 세계의 등장인물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드라마를 지니고 교차되다가, 마침내 한 점에서 만나 해피엔딩을 맞습니다.

 

<그림자 없는 여인>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황후는 사실 마법사 카이코바트의 딸인데, 황제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해 해로하고 있었지만, 날벼락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황후는 그림자가 없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인데, 기한 안에 그림자를 얻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되지 않는다면, 황제는 돌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황후의 유모는 황후에게 인간 세계에 가면 그림자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우선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인간 세계로 내려가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인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만 그림자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황후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는 한이 있어도 그림자를 얻겠다고 하고, 유모와 함께 인간 세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1막이 끝납니다.

 

2막에서는 염색장이 바라크와 그의 아내가 등장합니다. 바라크는 마음씨 넉넉해고 인격자에 가까운 캐릭터입니다. 한편 바라크의 아내는 바라크에게 돈으로 팔려 와서 아내가 된 처지에다 가난하기까지 한 것을 비관하고 있으며, 바라크에게 남편으로서의 애정은커녕 사사건건 별의별 구실로 불만을 터뜨리는데 여념이 없고, 바라크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해도 거부하기만 합니다. 황후와 유모는 이 바라크의 아내에게도 와서, 그림자를 팔면 갖가지 보물을 비롯해 바라크의 아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림자를 팔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다는 것도 덧붙입니다. 바라크의 아내는 그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황후는 이제 그림자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바라크의 아내는 바라크에게 있는 말 없는 말을 마구 내뱉으며, 그림자를 팔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대가로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며 과시하듯이 말합니다. 하지만 바라크는 아내가 그런 마술이 얽힌 계약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자 분개하며 아내더러 죽으라는 말을 꺼내며 죽이려는 동작까지 취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바라크, 바라크의 아내, 황후, 유모가 있던 그 곳이 이상한 기운 같은 것에 휩싸이며, 네 등장인물은 또다른 세계에 떨어집니다.

 

3막은 2막 마지막의 네 등장인물이, 환상 세계 같은 곳에 떨어진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유모를 제외한 세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바라크는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함부로 아내를 죽이려는 동작을 취했다는 것에, 바라크의 아내는 뒤늦게야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고 남편을 그런 식으로 속였다는 것에, 황후는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황후는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남편인 황제의 몸이 대부분 돌로 변한 모습을 보고, 그 근처에 연못이 있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못의 물을 마시면 바라크의 부인에게서 그림자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황후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다면서, 끝까지 물을 마시는 것과 그림자를 빼앗듯이 가져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자 황후의 마음씨가 기적을 일으켜, 황후에게는 스스로 그림자가 생기고, 돌이 된 황제는 원래 모습대로 돌아옵니다. 바라크와 바라크의 아내도 행복해지고요.

 

 

2011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그림자 없는 여인>의 피날레 장면입니다. 지휘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입니다. 원어인 독일어 자막이 달려 있습니다. 황제, 황후, 바라크, 바라크 아내의 4중창입니다. 왼쪽부터 황제 역에 스티븐 굴드, 황후 역에 안나 슈바네빌름스, 바라크의 아내 역에 에블린 헤를리치우스, 바라크 역에 볼프강 코흐입니다.

이 공연의 연출은 음반 녹음실을 모티브로 하여, 공연 내내 가수들이 일상복을 입고 대본을 들고 음반을 녹음하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장대한 피날레 장면은 크리스마스 공연 모습으로 연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상에서는, 대본 지시와 달리 가수들이 연미복과 드레스를 입고 연주회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동영상의 <그림자 없는 여인> 피날레 장면의 독일어 원어-한국어 번역 대역 대본입니다. 클릭하면 새창으로 뜹니다.

 

번역 출처는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입니다.

 

 

전체적인 줄거리 흐름만 놓고 보면, 남편에게 불만을 가지며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아내가 불임이 되는 대가로 엄청난 부를 얻는 계약에 흔쾌히 동의했다가, 뒤늦게야 남편이 자길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 계약을 후회하다 여차저차 해피엔딩이 되었다더라- 정도의 이야기로 인식하기 딱 좋습니다. 바라크가 그림자 계약 이야기를 듣고 아내에게 죽일 기세로 분개하는 장면을 예로 들면, 인격자처럼 묘사되던 바라크는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점차 화를 내다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대가로 그림자를 팔았다는 대사가 나오자 폭발합니다. 이 장면에서 대사 타이밍만 놓고 보면 아내가 뭐라 하든 신경도 안 쓰다가 자기 아이 못 낳게 되었다니까 분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딱 좋습니다. 구태여 그 타이밍에 그런 대사와 동작을 집어넣은 걸 보면, 작가도 그걸 의도한 기색이 짙고요. 전 그쪽 해석을 따르면 너무 심란해져서, 최소한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아내가 요상한 힘과 계약했다는 것에 분개했다는 쪽으로 굳이 해석하면서 감상하지만, 작품 자체를 분석하자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대가로 지불햇다" 쪽에 분개했다는 쪽이 더 정석일 겁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변화 흐름, 세부적인 묘사 및 대사나 캐릭터성 등의 측면에서는, 여성성을 여성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입체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단순히 투덜대던 여자가 뒤늦게 후회하더라-라는 수준이 아니라, 남편이 진정으로 자신을 위하는 모습을 본 뒤에야 감동받아 감화되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으니까요. 그 외에도 겉으로 얼핏 보았을 때와, 다른 장면과 종합해 이해했을 때의 감상이 판이한 장면이 쏟아져 나오는 작품입니다.

 

 

 

<그림자 없는 여인>은 1919년 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초연 때의 관객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으며, 거의 묻히다시피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중적인 인기와는 거리가 먼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지만, 초연 때 실패에 가까운 싸늘한 반응은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정설합니다. 요컨대 이 작품이 초연된 1919년 빈의 상황이, 환상 세계를 다룬 대작 오페라를 감상하는 데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1919년 빈의 어수선한 상황은, 비단 빈이라는 도시 한 곳에서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1914-1918.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연도가 눈에 익을 겁니다.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이 작품이 초연되었던 빈은 오스트리아 제국, 보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당시 유럽에서 제일가는 대국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다스리는 합스부르크 가문은 수백 년에 걸쳐 각지의 상속녀와 혼인하여 영토를 넓혔고, 이렇게 새로 영토가 된 땅은 오스트리아 본국에서 총독을 파견하는 등 속국 형태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추가로 가지게 된 땅이 워낙 넓다 보니, 종국에는 오스트리아 본국의 인구보다 속국의 인구가 더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넓은 영토를 속국 형태로 거느린 대국이었지요.

 

세계 1차 대전의 도화선인 사라예보 사건은 바로 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처가 암살당한 사건이었습니다. 19세기 말 세르비아는 국왕이 암살당한 후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이 혼란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세르비아에 대한 영향력이 커져서, 사실상 속국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자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자신들을 압제하는 오스트리아를 응징한답시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처를 암살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당연히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는데, 여기에서 일이 복잡하게 꼬입니다. 러시아가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계 국가랍시고 세르비아를 돕는다며 참전하고, 독일 제국이 오스트리아 제국과 같은 게르만계 국가랍시고 오스트리아 편으로 참전하는가 하면, 이 다음으로는 독일의 우방국이라는 이유로 세르비아나 오스트리아와 별 이해관계도 없던 오스만 투르크가 오스트리아 편으로 전쟁에 뛰어들고, 러시아를 견제하던 영국이 러시아에 적대한답시고 참전하는 식의 일이 연달아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한 사건은, 유럽 전역이 전쟁에 뛰어드는 결과를 낳지요. 이것이 바로 세계 1차 대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계 1차 대전에서 패전합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918년이 끝나기도 전에 제위를 내놓았고, 승전국은 오스트리아 제국을 민족독립국가라는 명분으로 민족별로 수많은 나라로 분할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이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의 영토입니다.

 

 

현재의 오스트리아 영토입니다. 세계 1차 대전에서 패망한 후, 대부분의 속국이 독립하고 영토 분쟁이 있던 지역 대부분도 영토에서 빠져나간 뒤의 영토지요.

 

 

단순히 영토가 줄어든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속국이 독립하면서 곡창지대를 거의 잃어버려, 당장 식량 자급조차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지경이었습니다.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대형 전쟁을 4년간 치르고, 그 전쟁에서 끝내 패한 나라가 어떤 상황이었을지 상상해 보세요. 상상한 것이 실제보다는 오히려 덜할 겁니다. 거의 집집마다 전쟁에서 죽고 다친 가족이 있을 지경이었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물가는 하루마다 곱절이 되는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이 시기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지폐보다 휴지가 비싸서 돈을 아끼기 위해 지폐를 휴지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등의 전설적인 사례를 숱하게 남겼는데, 오스트리아의 상황도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이 시작된 지 1년 뒤에, <그림자 없는 여인>이 초연된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오케스트라 인원만 100명 단위인 대작 오페라가 초연될 수 있었다니,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왕실이 후원하는 공연이 아닌 민간 공연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형 공연을 초연할 수 있었던 나라로는, 어쩌면 유일한 사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00년을 전후한 빈은 세계 문화 혁신의 중심지같은 곳이었습니다. 현대 철학의 절반 이상은 이 시기 빈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등의 화가, 말러와 쇤베르크 등의 음악가 등 현대 예술에 이름을 남긴 예술가들도 이 시기 빈에서 활동했습니다. <세기말 비엔나(빈의 영어식 발음)>라는 책에서는 1900년을 전후한 빈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곳이었는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 많은 거장들이 한 도시에서 거의 동시에 활동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제게 1900년을 전후한 빈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 도시였는지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만 꼽으라면, 1918년에서 1년 지난 시점에서 <그림자 없는 여인> 같은 작품이 초연될 수 있었다는 것을 들겠습니다. 파국적일 정도로 극단적이면서 극명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