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과학의 만남/역사를 밝힌 과학

충주고구려비와 레이저 판독 기술

아리에시아 2015. 7. 11. 11:52

1979년, 충청북도 충주시의 한 마을에 오랫동안 서 있던 비석 하나를 조사하면서, 이 비석이 고구려가 세운 비석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현재 휴전선 이남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석비입니다. 이 비석이 바로 총주고구려비이며, 오랫동안 중원고구려비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충주고구려비는 국보 205호로 지정되었으며, 이 비석만을 위해서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을 건립하기에 이릅니다.

 

 

충주고구려비 전시관 안의 충주고구려비 모습입니다. 사진 출처는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입니다. 비석 주위에 투명한 테두리 같은 것이 둘러져 있는데, 아크릴판 설치물입니다.

 

아크릴 판 설치물과 함께 보이도록 찍은 충주고구려비 사진입니다. 비석 네 면의 사방에 비석에서 판독된 한문 글자와, 그 해석을 새긴 아크릴판이 둘러져 있습니다. 사진 출처는 충주고구려비 전시관 개관을 알리는 충주일보의 기사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2055 입니다.

 

 

충주고구려비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뒤 세운 비석으로, 장수왕 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의 삼국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당대 자료이자, 대한민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충주고구려비는 오랫동안 야외에 있었기 때문에, 비바람에 노출되어 마멸이 심했습니다. 맨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글자의 흔적조차 희미할 정도였습니다.그래서 읽을 수 없는 글자가 많았지요.

 

전통적인 방법으로 탁본을 했지만, 탁본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탁본을 판독한 결과, 충주고구려비에서는 세 면에서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의 분류 호칭을 따르자면, 비석의 1면에는 아무런 글자가 없었고, 2면, 3면, 4면에는 비석 면적의 절반 정도에서 글자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석의 세 면에 새겨진 글자 중 판독할 수 있는 것은 180자 안팎이었으며, 글씨 크기와 간격 등으로 미루어 보아, 비석의 세 면에는 도합 400여자가 새겨져 있다고 추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레이저 기술이 도입되면서, 육안 판독과 탁본으로 연구하던 충주 고구려비 연구에 큰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레이저는 빛이 한 방향으로만 나가도록 조정하여,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세한 흔적 같은 것을 판명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충주고구려비를 레이저 판독한 결과, 이 고구려비 연구에 두 가지의 변화가 생깁니다.

 

하나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읽을 수 없던 글자 중 20여 자를 새로 판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연구자들이 충주고구려비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도합 200여 자로 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때까지 글씨가 없다고 여겨졌던 1면에서, 글자 하나를 판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巡이라는 글자가 레이저 판독 결과 비석 1면에서 드러나게 되었고, 충주고구려비에는 1면에도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레이저 판독 기술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400여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정했으나, 이제는 528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까지 명확하게 알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이저 판독 기술은 충주고구려비를 비롯해, 심하게 마멸된 비석에서 닳아 읽을 수 없게 된 글씨를 판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미래에 더욱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현재의 레이저 기술로도 판독할 수 없는 글씨도 읽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기술이 발명된다면, 이때까지 많은 과학기술이 역사 연구에 도움을 주었듯이, 또다시 많은 기록과 사실이 새롭게 밝혀질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