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과학의 만남/역사를 밝힌 과학

윤두서 자화상의 본래 모습, 적외선 촬영이 밝혀내다

아리에시아 2014. 11. 15. 11:27

한국의 미술 문화재 중에서 영정으로 대표되는 초상회화나 실존인물을 직접 그린 그림은 많습니다만, 자화상은 극히 적습니다. 그 극히 적은 자화상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 회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문화재가 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국보 240호로 지정된 공재 윤두서 자화상입니다.

 

 

수염 한올까지 세밀하게 일일이 그린 필치가 인상적이며, 감상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자화상에서 독특한 점으로 손꼽힌 것이 있으니, 위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널찍한 화폭에 사람의 얼굴만 덜렁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큼 더 강렬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요.

 

조선 시대 그림 중 사람의 얼굴만 그린 작품은 이 자화상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래서 윤두서가 어떤 의도로 이런 구도의 그림을 그렸는지 많은 추론이 있었으며, 심지어 미완성이라는 의견까지 나왔을 정도였습니다. 미술사 책에서는 대개 '얼굴만 그림으로써, 초월적인 심상을 뚜렷하게 표현했다'는 쪽으로 정리하고는 했지요.

 

그런데.... 이 자화상을 적외선으로 촬영했더니, 우리가 보는 것과 다른 화상을 보여주게 됩니다.

 

뚜렷한 먹선으로 옷이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윤두서는 초월적 심상을 표현하고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만 그린 것이 아니라, 멀쩡히 옷을 그렸던 것이지요.

 

 

태양 빛의 스펙트럼입니다. 빛의 파장(단위 nm, 나노미터, 0.000000001m)400이하는 자외선, 400-700 사이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 700 이상은 적외선입니다. 적외선은 보시다시피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훨씬 길기 때문에, 적외선 촬영을 하면 가시광선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것도 찍을 수 있습니다.

 

온도를 찍는 적외선 사진이 너무나도 유명해서인지, 적외선 촬영은 체온 등 온도를 감지할 때에만 쓸모가 있을 거라고 넘겨짚는 경우가 은근히 많습니다. 하지만 적외선 촬영은 온도 외에 다른 많은 것들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습니다. 윤두서 자화상처럼 그림을 촬영하면 묻힌 붓선이 드러나는 사례도 있고, 적외선을 감지하는 동물들이 사물을 어떤 상으로 인식하는지도 알아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무궁무진합니다. 과학 분야에서도 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고, 과학 바깥 분야에서는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적외선 촬영은 현재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윤두서 자화상의 본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일제시대 촬영된 윤두서 자화상의 사진을 보면, 적외선 사진보다는 훨씬 흐릿하지만 옷을 그린 선이 나타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두서 자화상에는 옷을 그린 선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들 보시다시피, 현재는 얼굴만 남아 있지요.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표구를 서툴게 하면서 그림 일부가 배접지에 묻혀버렸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적외선 촬영기술이 발명된 덕에, 우리는 윤두서 자화상의 본래 모습은 우리가 현재 보는 모습과 달랐으며,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외선 촬영기술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윤두서 자화상이 처음부터 얼굴만 그린 그림이라고 알고 있거나, 일제시대 사진이 진짜 사진인지 나중에 사진에 선을 덧그린 것인지 갑론을박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