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il Torovatore>는 대본에 따르면 15세기 에스파냐의 비스케이 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집시 남주인공 테너와 지체높은 귀족 여주인공 소프라노, 그리고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귀족 바리톤의 삼각관계... 처럼 보입니다. 초반에는요.
<일 트로바토레>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1막 3장부터입니다. 1막 1장에서는 바리톤 귀족인 루나 백작의 군인들이 무서운 이야기가 들려달라고 하자 부관이 옛날에 일어났던 범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금 루나 백작의 아버지가 옛날에 웬 집시를 미신적인 이유로 죽이자, 그 집시의 딸이 당시 백작의 작은아들이자 현재 백작의 동생을 유괴했는데, 얼마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병사들은 이 이야기를 듣자, 바람 소리만 들려도 유령이라는 식으로 공포에 떨릴 지경이 됩니다.
1막 2장에서는 여주인공 레오노라가 자신이 한 음유시인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요. 그리고 1막 3장에서, 여주인공 레오노라를 짝사랑하는 루나 백작은 레오노라가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으며, 그 사람이 순간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두 명이 서로 결투하면서 1막이 끝납니다.
1막 3장. 루나 백작은 레오노라 방의 발코니 쪽에 있는데, 그 순간 레오노라가 나타나 사랑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레오노라는 거기 있던 사람이 남주인공 만리코라고 착각해서 그런 것이었지요. 그 순간 만리코가 나타나고, 루나 백작은 레오노라가 사랑하는 사람이 만리코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결투합니다.
<일 트로바토레> 2002년 코벤트가든 공연에서의 1막 마지막 장면입니다. 만리코 역에 테너 호세 쿠라, 루나 백작 역에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레오노라 역에 소프라노 베로니카 비야로엘입니다. 자막은 없습니다.
원작에서는 1400년경인 배경을 1900년경으로 옮긴 연출로, 주인공들이 1900년 전후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결투 장면이랍시고 두 남성 성악가가 정말로 칼싸움하면서 노래부릅니다.
위 장면의 이탈리아어-한국어 번역 대역본입니다. 번역 출처는 고클래식 대본자료실입니다. 클릭하면 새창으로 뜹니다.
위 장면에서, 레오노라는 만리코가 자기 이름을 밝히려고 하자 말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만리코는 자기 이름을 밝히고, 루나 백작은 그 이름을 듣고 "사형 선고를 받은 우르겔의 반역자"라고 말하지요. 오페라는 이탈리아어라서 우르겔이라고 발음합니다만, 에스파냐어 발음은 '우르헬'입니다.
<일 트로바토레>의 시대적 배경은 1410-1412년 사이입니다. 바로 아라곤 왕국의 공위 시대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여왕으로 손꼽히는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는 헨리 8세인데, 결혼을 여섯 번 하고 여섯 왕비 중 두 명은 처형시킨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첫번째 왕비가 아라곤의 카탈리나, 영어식으로는 아라곤의 캐서린이지요. 이 아라곤의 카탈리나는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의 딸입니다. 어머니인 이사벨라 1세는 콜럼버스의 항해를 적극 후원했다는 미담으로 유명하며, 아라곤 국왕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라 1세가 결혼하면서 현재 통합 에스파냐 왕국의 초석이 되었지요.
페르난도 2세가 아라곤 국왕이 되기 60여년 전, 1410년경에 아라곤 국왕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국왕인 마르티노 1세(재위 1396~1410)이 적자 없이 죽어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후보가 2년여 동안 경합을 벌였는데, 알폰소 4세(1327~1336)의 증손자인 하이메와 페드로 4세(1336~1387)의 외손자인 페르난도의 경합은 특히 치열하여, 흡사 내전을 방불케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치열한 경합 끝에 페르난도가 이겨서, 트라스타마라 왕조를 열고 페르난도 1세가 됩니다. 이사벨라 여왕과 결혼한 페르난도 2세는 페르난도 1세의 증손자입니다.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하이메는 우르헬 백작이라는 작위도 있었는데, 오페라에서 말하는 '우르겔'이 바로 이 우르헬입니다. 오페라 내에서 현재 루나 백작과 레오노라가 있는 쪽은 페르난도 쪽이고, 만리코가 우르헬 백작 하이메 쪽입니다. 서로 자신이 아라곤 왕국의 후계자라고 싸우는 입장이지요. 그래서 레오노라와 만리코가 졸지에 로미오와 줄리엣 신세가 되고, 루나 백작은 만리코를 연적이자 정적으로서 적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이 오페라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려면, 1410년을 전후한 아라곤 왕국 공위 시대에 대해 미리 알아야 하는 걸까요?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대해 전혀 몰라도, 오페라를 감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고 있으면, 역사와 작품 속 묘사의 괴리감 때문에 몰입 못 하는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 겁니다. 막상 이 오페라 안에서, 아라곤 왕국 공위 시대와 왕좌 경합은 말 그대로 '한 커플이 졸지에 로미오와 줄리엣 신세가 된 장치' 이상의 의미는 없기 때문입니다.
포스트 초반부에 동영상으로 첨부한 1막 마지막 장면에서 '우르겔'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 언급된 것 외에는, 아라곤 공위 시대라는 특징은 오페라 내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임의의 두 세력이 싸우는 이야기에 대강 갖다붙여도 저 한 단어 외에는 전혀 어색하지 않을 작품입니다.
'루나 백작'이라는 이름에서, 오페라가 역사적 사건에서 이름만 따왔다는 것이 특히 부각되지요. 아라곤 왕국 공위 시대에 루나 백작이라는 인물은 실존했습니다. 바로 후계자 없이 죽은 국왕 마르티노 1세의 사생아였던 파드리케입니다. 마르티노 1세는 자신의 아들인 파드리케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했지만, 왕비가 낳은 적자가 아니라 사생아라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친자가 아니라 적자 쪽의 두 친척인 페르난도와 하이메가 경합을 벌였고요. 루나 백작 파드리케는 1차 후보 다섯 명 안에는 올랐지만, 최종 후보 두 명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안에서, 루나 백작이 선대 국왕의 사생아에 차기 국왕 후보였다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유력한 군 장군으로만 나옵니다. 심지어 4막에서 만리코를 처형하라고 할 때는 "왕자에게 일임받는 권력을 남용한다"라고 자조하는 듯한 대사가 나오면서, 지금의 자리가 일종의 임명직이라는 뉘앙스를 주는 가사도 있지요. 게다가 오페라 초반부에서, 루나 백작은 선대 루나 백작의 아들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 작품은 1막 1장에서 루나 백작의 부관이 병사들에게 옛날에 일어났던 범죄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는 대목에서 시작합니다. 이 때 부르는 아리아의 첫 구절이 '선대의 백작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네.'입니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에서는 아라곤 왕국 공위 시대와 그 동안의 내전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저 두 세력이 서로 대립했고, 한쪽의 수장이 우르겔이고, 반대쪽에는 루나 백작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라는 것만 가져온 겁니다. 초연 대본에서도 시대적 배경은 그저 15세기라고만 언급되어 있으며, 1410년 즈음이라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일 트로바토레>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치열하게 결투하면서 1막이 저렇게 끝나고 난 뒤, 2막과 3막에서 만리코와 루나 백작은 몇 번씩 맞부딪치지만, 번번이 만리코가 이깁니다. 3막에서 만리코와 레오노라는 결혼식을 올릴 준비를 하지요. 그 순간, 만리코의 어머니인 아주체나가 루나 백작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루나 백작 군대에서 웬 집시가 배회하는 것이 수상해서 일단 취조하고 있는데, 취조 도중에 아주체나가 소싯적 루나 백작 동생을 유괴해 살해했던 그 집시라는 것과, 만리코의 어머니라는 것이 동시에 밝혀졌거든요.
어머니를 구하려던 만리코는 루나 백작에게 붙잡혀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레오노라는 자신이 백작의 여자가 될 테니 만리코를 풀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만리코에게로 가서 이제 풀려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독이 생각보다 빨리 퍼진다는 말을 남기고 만리코 품안에서 죽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여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보고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백작은 만리코를 처형하고, 아주체나에게 그 광경을 지켜보게 합니다. 아주체나는 만리코가 죽는 걸 본 순간, 루나 백작에게 말하죠. "저 아인 당신 동생이야! 어머니, 당신의 복수를 했어요!" 십수년 전 루나 백작의 동생이 유괴된 직후 발견된 아이 시체는 다른 아이 시체였고, 유괴했던 백작 동생은 아주체나가 자기 아들로 키워왔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말한 겁니다. 루나 백작이 아주체나의 폭로를 듣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것에 충격받은 대사를 하면서, 오페라가 끝납니다.
통속적이고 황당할 정도로 얄팍한 줄거리로 비판받는 동시에, 대본의 단점을 덮고도 남을 만큼 박진감 넘치고 다채로운 음악으로도 유명합니다. 작곡가 베르디는 한 평론가가 <일 트로바토레>를 두고 진정한 예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좋아할 작품이라는 식으로 혹평했더니, 대중을 위한 작품에는 최고의 찬사라면서 오히려 고마워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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