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든 예술/역사를 상기시킨 예술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기사도 문학

아리에시아 2014. 12. 6. 11:00

유행이란 시간이 지나면 바뀌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인기 있었던 유행도 언젠가는 사그러지기 마련이고, 일단 인기가 꺾인 뒤에는 옛날엔 그런 게 인기 있었지- 정도로만 기억되는 게 고작이고, 아예 그런 게 인기 있었다는 것조차 잊히는 경우가 훨씬 많지요.

 

문학계 역시 그랬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멋진 기사가 나오는 기사도 문학이 대유행했지만,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간 기사도 문학은 망각의 늪에 잠겼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요즘은 아서왕 이야기가 드라마, 영화, 동화책 등으로 유명해서, 중세 배경의 기사 이야기가 꽤 익숙합니다만, 아서왕 이야기가 재조명된 것은 19세기 말 이후입니다. 그 전 수백 년 동안은 아서 왕이라는 이름조차 잊혀졌었지요.

 

비단 중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옛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어떤 연극이 인기 있었는지, 관심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르네상스 시대에는 셰익스피어만 알지, 다른 연극이나 소설에서 어떤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는지 관심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당장 빅토리아 시대에 흥성했던 각종 연재소설만 해도, 오늘날 남아있는 이름은 찰스 디킨스와 셜록 홈즈 시리즈 정도입니다. 그 작품을 소개할 때 잡지 연재했다는 설명이 따라붙지 않았다면, 빅토리아 시절 소설이 연재된 잡지가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도, 오늘날 아는 사람이 전무했을 거예요. 중세 기사 문학도, 자연스럽게 흘러갔다면 그런 운명을 맞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묘하게도, 중세 시대에 기사도 문학이 유행했었다는 사실 하나만은 망각되지 않고 꾸준히 회자되게 됩니다. 중세에 대한 관심이 살아난 19세기 말 이전에도, 중세 이후의 르네상스와 근대 대중문학이 잊힐 동안에도요. 중세를 암흑의 시대 운운하면서 완전히 묻어버리려고 했던 수백 년 동안에 그것만은 살아남은 것이지요.

 

18세기 초의 오페라 유행과 비교해보면 이 묘한 점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18세기 초, 그러니까 헨델과 비발디의 시대에는 <광란의 오를란도>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가 수없이 나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 작품은 바로 이탈리아의 기사도 서사시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오페라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잊혀져 있었지요. 고음악 열풍으로 모차르트 이전 시대의 오페라가 다시 무대에 올려지기 전까지는, 18세기 초에 '광란의 오를란도'를 원작으로 한 오페라가 많이 있었다는 것도 거의 안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들 법하지요. 왜 유독 중세 기사도 문학만 살아남았을까요? 중세 기사도 문학을 고전으로 읽는 사람은 없었다 해도, 중세 시대에 기사도 문학이 유행했다는 사실 자체는 꾸준히 기억된 이유가 뭘까요?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보다 파급력이 강한 답변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중세 서사시가 무시당할지언정 그 존재는 망각되지는 않았다면, 그 공의 팔할은 아마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덕일 거예요. 불세출의 고전 <돈 키호테>가 아니었다면, 돈 키호테가 중세 기사 소설을 읽고 자기가 기사 노릇을 하겠다고 엉뚱한 소동을 자꾸 일으키는 이야기가 그토록 인기를 끌지 않았다면, 중세 시대에 기사 소설이 인기있었다는 사실은 진작에 묻혀버렸겠지요. 중세 이후 수백 년 동안의 대중문화가, 뒷 세대에서는 깨끗이 잊혔던 것처럼요.

 

 

<돈 키호테>의 1605년 초판 속표지입니다. 이 때 발표된 책을 일명 <돈 키호테 1부>라 하는데, 축약본 등의 돈 키호테는 대부분 1부만 다룹니다. 세르반테스는 10년 뒤인 1615년 정식 속편인 <돈 키호테 2부>를 출간하는데, 전편과 이어지는 사건이 은근히 많지요. 여담이지만, <돈 키호테>라는 제목의 발레가 있는데, 이것은 <돈 키호테> 1부가 아니라 2부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돈 키호테>는 우스꽝스럽고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하게 냅다 도전하는 사람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지요. 풍차더러 거인이라면서, 거인을 물리치겠다고 돌격하는 장면은 너무나도 유명하며, 우직하고 충직한 산초 판사와의 콤비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돈 키호테는 기사 소설을 읽다가 자신도 기사가 되겠다고 결심해서, 옛날 갑옷을 입고 소설에 나오는 모험을 하겠다고 떠나지요.

 

그런데 그 기사 노릇이라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건 둘째치고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길 가다가 여인숙이 보이니까 기사 소설에 등장하는 성이라고 생각해서 성에 숙박하는 심정으로 여인숙에 들어가는데, 여인숙 주인이 방값을 달라고 하니까 기사 소설에서 성주가 기사에게 방값을 요구하는 장면은 없으니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길 가는 사람에게 "이 근처에 혹시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녀나 괴물이 없소?"라고 묻고, 없다고 하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도 된다오."라면서 마녀나 괴물이 있는 게 틀림없으니 모험을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죠. 대략 이런 식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혹시 <돈 키호테>와 기사 문학을 같이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기사 문학 쪽을 먼저 읽고 <돈 키호테> 쪽을 읽기를 권합니다. 돈 키호테의 모험은 기사 문학의 클리셰에 바탕한 것이라, 기사 문학 원전을 읽고 보면 훨씬 더 웃깁니다. 그리고, <돈 키호테>를 먼저 보면, 진지한 기사 이야기를 봤을 때 돈 키호테가 떠올라 자꾸 폭소하고 집중 못 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돈 키호테>를 워낙 재미있게 읽어서, 기사 문학이 어떤 건지 알아보고 싶어서 <아발론 연대기>를 봤는데, 기사들이 진지하게 모험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돈 키호테가 떠올라 집중이 안 될 지경이었습니다. 엑스트라들이 지나가는 기사에게 자기들을 괴롭히는 마녀를 퇴치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보면, 돈 키호테가 지나가던 행인에게 혹시 근처에 마녀가 없냐고 묻는 장면이 떠오르고, 이런 식이었어요. <아발론 연대기>의 절반 능선을 넘을 때에야 비로소 돈키호테의 잔영을 지우고 책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현대 독자들에게 맞춘 개정판인 <아발론 연대기>니 그 정도라도 되었지, 곧바로 중세 원전 완역본을 읽었다가는 끝까지 집중 못 했을지도 몰라요.

 

 

정말 묘한 건, 돈 키호테는 기사 이야기가 안 나올 때는 상식적인 지식인 그 자체라는 겁니다. 미코미코나 공주 에피소드에서는 연인에게 배신당했다고 우는 여성에게, 가까운 길을 가면서도 동행을 신중하게 고르면서 일생의 동반자를 택하는 일을 순간적이고 충동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 건 도저히 이해 안 된다는 촌평을 한 적 있습니다. 학업 문제에 대해서, 부모가 보내고 싶은 학교에 무턱대고 보내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안 될 일이라고 충고한 적도 있고요. 이런 부분을 보면, 산초가 돈 키호테를 어르신으로 따르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입니다. 다만 기사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가 기사 소설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갖가지 엉뚱한 일을 벌이지요.

 

 

작중에서 돈 키호테는 입만 알면 <광란의 오를란도>라는 작품에서는 이러저런 모험 이야기가 나왔으며, 자기도 그런 모험을 하겠다는 식으로 언급합니다. 돈 키호테가 아니어도 중세 기사 문학은 기억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돈 키호테가 아니었다면 <광란의 오를란도>라는 작품이 옛날 서사시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알게 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18세기 초 <광란의 오를란도>를 주제로 수많은 오페라가 나왔지만, 그 많은 오페라들이 수십 년 사이에 완전히 잊혀버린 것만 봐도요.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다비드와 함께, 신고전주의의 쌍벽으로 꼽히는 앵그르가 그린 그림입니다. 제목은 <안젤리카를 구하는 루지에로>로, <광란의 오를란도>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지요. 이 작품은 기사도 문학을 다룬 회화로서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이야기와 같이 언급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 아가씨를 용감한 전사가 구한다는 상황 구도가 거의 판박이이기도 하고, 애초에 <광란의 오를란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요.

 

 

<광란의 오를란도 Orlando Furioso>는 루도비코 아리오스토의 서사시입니다. 기사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작품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지요. 당대에는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나, 시대가 바뀐 뒤에는 잊혀버렸습니다. 18세기 초 <광란의 오를란도>를 각색한 오페라가 수없이 나왔을 때에도, 작품 자체를 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작품 등장인물을 끌어와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이 있었던 듯 합니다. 비발디의 오페라 중 악보가 남은 것은 스무 편 남짓인데, 그 중 제목에 오를란도가 들어가는 작품이 셋이나 되고(<광란의 올란도/올란도 퓨리오소 Orlando Furioso>를 두 번 작곡했고, <미친 척한 올란도/올란도 핀토 파초 Orlando finto Pazzio>라는 제목의 오페라가 있으며, 다른 오페라에서도 기사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헨델도 <알치나>, <올란도>, <아리오단테> 등 <광란의 오를란도>에 나온 이야기를 원전으로 삼아 각색한 오페라를 대거 발표했고요. 그런데도 <광란의 오를란도> 원전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다른 시대야 오죽하겠습니까. 아서왕 전설이 소생하고 대중문화의 인기 레퍼토리가 된 뒤에도, 아서왕이 등장하지 않는 기사 이야기인 <광란의 오를란도>는 관심 밖이었고요.

 

형편없는 작품은 아닙니다. 지극히 개인적 감상입니다만,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고, 대중적으로는 인지도가 없을지언정 학계에서는 당대의 대표작으로 서슴없이 꼽는 작품에 걸맞는 저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사시의 호흡과 스타일에 익숙하다면 얼마든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고,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장면도 많습니다. 특히 패러디라고 할 수 있는 <돈 키호테>와 같이 읽으면, 재미가 곱절이 되지요. 돈 키호테가 어떤 이야기를 보고 그런 엉뚱한 모험을 현실에서 꿈꾸게 된 건지,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게 되니까요. 서사시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다면, 툭하면 삼천포로 빠지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많이 하고 이야기가 축축 늘어지다가 막상 중요한 장면에서는 휙휙 지나가고, 툭하면 후원자 칭송하는 구절을 집어넣느라 이야기 호흡을 끊는 이야기로 비칠 가능성도 많겠지만요.  다른 유명한 서사문학에 비해서 <광란의 오를란도>는 그런 경향이 적은 축에 들지만, 없는 건 아니니까요. 오늘날의 날렵하고 호흡 빠른 작품들에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고요.

 

 

돈 키호테 덕에 기사도 문학이 인기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기억되게 되었고, <광란의 오를란도>는 돈 키호테가 애독하던 작품으로서라도 덩달아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아마 <광란의 오를란도>라는 작품을 들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돈 키호테>를 읽었거나, 헨델이나 18세기 초반 오페라를 굉장히 좋아하거나, 옛날 서사문학에 굉장히 관심이 많거나, 셋 중 하나일 겁니다. 다른 경로로는 접할 일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첫 번쨰의 확률이 두 번째와 세 번째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높을 테지요.